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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Feb 22. 2024

I am 쌤

세상에 이런 화법이!


나는 요즘 부탁해요와 감사해요를 하루에 수십 개쯤 클립처럼 주머니에 넣고 퇴근한다. 지난 십수 년간 직장생활에서 들어왔던 것보다 최근 두 달 이곳에서 들은 횟수가 더 많다. 좀 더 정확히는, 이런 화법을 쓰는 사람들이 일하는 직장을 다녀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사람 나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곳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지녔다.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이며, 일방향이기보다는 쌍방향 다회선적인 이들의 소통을 듣고 배우는 것이 나는 꽤 즐겁고 유익하다.    

 

나는 ‘좋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좀 ‘괜찮은’ 직장 사수를 만나는 것이 소망이었을 정도로 제대로 일을 배우거나 인수인계를 받아본 적이 없다. 대부분 알아서 터득하고 개척해 왔다. 이곳에 온 처음 며칠은 여기저기 여러 팀에서 한두 명씩 와서 인사를 건네며 내게 아주 간단한 일들을 부탁했다. 나중에서야 그분들이 어느 팀의 팀장님, 어느 자리에 대리님이라는 것을 오고 가며 눈치껏 파악했다. 그리고 내게 일부러 찾아와 가벼운 일을 시켜 본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탐색전이었다는 것도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여기저기서 “여운쌤!”, “여운쌤!”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선생님’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쌤’으로 불리는 것이 더 반갑고 기뻤다. 물론 워낙 다들 서로 그 호칭이 익숙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나를 격 없이 친근하게 쌤이라고 불러주다니 열 살쯤 어려진 기분이다. 솔직히 내 기준에서는 아직 매번 자주 업무를 주고받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내가 감히 그들을 먼저 쌤이라고 막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 때는 아직은 좀 더 정중하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 역시 그들을 선생님보다는 쌤이라고 부르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일에 테이핑할 때 끝을 이렇게 마무리하면 자주 펼치고 접어도 찢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요. 얼굴도 예쁘고 말씨도 마음씨도 예쁜, 내게 비스켓을 건넸던 쌤이 알려주었다


2월에는 회계감사가 있어 모두가 분주했고 내가 속한 팀이 경영팀이라 특히 업무가 꽤 많았다.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을 만한 서류들을 처리하고 나니 팀 전체에 여유와 웃음이 꽃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다른 팀들의 업무도 도와주는 빈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중에서도 처음부터 나를 자주 찾는 팀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그 팀이 있는 제2사무실로 차출되어 가는 날들도 늘었다. 나로서는 좋은 기회였다. 그쪽에 계신 분들의 분위기도 익히고 무엇보다 그곳에 상담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무엇을 배우고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나는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종종 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엄연히 다르겠지만, 가족상담이나 아동상담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양하고도 복잡해진 가족 형태에 맞춰 어떤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기획되고 운영되는지, 어떤 케이스들이 있는지,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나가는지 그 과정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었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목적일 것이다.  

   

하루는 그곳 2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내 바로 맞은편이 사회복무요원의 자리였다. 기골이 장대한 그 젊은 친구는 자주 종종 내내 무료해 보이기도 한다. 며칠 전 꽤 무거운 물건을 높은 선반 위에 올릴 일이 있어 그 친구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후 나도 모르게 자꾸만 뭐라도 좀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날은 마침 뒤편의 상담팀 팀장님께서 그 친구에게 다가와 일을 부탁하는 모습을 듣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입과 귀는 폐관 수련 중이고 바삐 움직이는 손이 그 공간 속에서 들려오는 대로 들을 뿐이다.   

  

“선생님, 혹시 제가 뭐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간단한 일인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와! 처음엔 좀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세상에 저런 화법이 있구나! 들려오는 그 대화가 내게 놀라웠던 까닭은 아마도 그분의 직급이 팀장이고, 상대가 어린(?) 사회복무요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직상하 상명하복 관계의 조직 문화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몹시도 낯설고 놀라웠다. 내 안에도 이미 꼰대 같은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스스로 들켜서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겪어본 적 없는 직장상사였다. 과거 직장 내 폭력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나는 아직 관계에 있어 두려움과 망설임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분이 차근차근 일의 과정을 설명해 주며 마지막 마무리하는 멘트에 나는 한번 더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이렇게만 해주시면 제게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내게 한 말도 아닌데 나는 마치 내가 직접 들은 것마냥 옆자리에서 건네 들은 그 말 한마디가 온종일 메아리처럼 내 귓가를, 내 마음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토록 사려 깊은 분이라면 나도 가서 상담을 받고 싶다. 생채기 난 마음 자리에 살포시 촉촉하게 ○○폼 하이드로콜로이드 패치를 덮어주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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