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사실을 요즘 더 크게 느낀다. 아마도 그냥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딸만 셋이라는 싱글파파, 작년에 얻은 세 쌍둥이에 위로 큰 애들까지 있어 돌봄의 손길을 아무리 보태도 모자란 맞벌이부부,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CCTV화면 한 순간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돌보미 선생님, 그리고 그 일로 중간에서 상담을 맡으며 계속 통화하고 보고서를 쓰고 상사에게 불려 다니는 사회복지사 선생님,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너무 휴대폰만 하며 사적인 휴식시간처럼 보내버려서 클레임이 들어온 돌보미 선생님, 심한 감기몸살로 약을 한 움큼씩 먹으며 링거투혼까지 발휘하는 내 바로 뒷자리 선생님, 용기 내어 시니어 키오스크 교육을 참여하고 싶으시다는 어르신.
하루 겨우 다섯 시간 곁에 있었을 뿐인데도 당장 떠오르는 것만 적어봐도 벌써 이만큼이다. 들려오는 대로 나는 말없이 곁에서 듣기만 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 "아이고, 어떡해! 딱해라. 좋은 분 만나 재혼하시면 좋겠구먼. 부디 좋은 돌보미 선생님을 만나야 할 텐데." "오해 없이 잘 풀려야 할 텐데." "아이고, 왜 그러셨을까?" "약이 독할 텐데, 좀 쉬시면 좋으련만." "이제 점점 더 인간 대신 키오스크와 터치로 대화할 일이 많아지니 저도 당황스럽고 어려울 때가 있답니다, 어르신." 아무도 모르게 연신 소리 없는 맞장구를 치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처럼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그 상황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게 된다. 그러니 일을 마치고 나면 '기가 빨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구나 또 혼자서 맞장구를 치고 있다. 가만히 듣기만 하는 내가 이 정도인데 매일 매 순간 쉼 없이 직접 대면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호응하고 공감해 주는 실무자들은 오죽할까. 아무리 익숙해지고 노련해진다고 해도 나는 못 할 것 같다. 몇 달도 못 가서 자아소진해서 먼지처럼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마음을 접어두고 AI처럼 응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구하고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면 또 진심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라도 힘들어도 다시 마음을 일으키고 더 마음을 내어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도 쓰면 쓸수록 늘고 그러니 자꾸 써야 더 는다.
그래서일까? 이 공간 안에서 함께 일하면서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선생님들이 나에게 다가와 업무를 부탁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사소한 소통 속에서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굳이 나라는 존재한테까지 에너지를 소모할 순간이나 상황을 만들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보이는 업무뿐 만 아니라 한 공간 안에 곁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왕이면 보탬이 되는 존재이고 싶다. 그것이 나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나의 자리는 원래 그 일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고 누구나 당연히 언제든 얼마든지 일을 부탁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 나는 보통 10분에서 15분 정도 일찍 출근한다. 어플에 출퇴근 기록을 찍어야 하고 총 근무시간이 오버되면 안 되기 때문에 너무 일찍도 안 된다. 하루는 출근해서 정각까지 아직 10분 정도 남았을까? 내 바로 옆자리 선생님이 내게 일을 부탁하려고 다가왔다. 그때 파티션 저 넘어 대각선 끝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직접 담당하고 계시는 직속 상사분께서 곧바로 그 선생님을 불렀다. 소곤소곤 뭐라고 말을 건네는데 그 내용인즉슨 아직 정각이 안 되었으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일을 부탁하라는 속삭임이었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고 온 선생님은 시간이 아직 안 된 줄 미처 몰랐다면서 내게 가볍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더 크게 미소로 화답하며 전혀 아니라고 얼마든지 괜찮다고 했다. 고작 10분 정도라도 나는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고 싶다.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느라 이미 바쁜 와중에도 단 10분이라도 나의 시간을 챙겨주는, 오히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서로 민망하지 않게 넌지시 건너 건너 건네는 그 속삭임이라서 더 고마웠다. 물론 그것이 지켜야 할 원칙이고 인사관리업무의 한 부분이기도 하겠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하는지는 사람 나름이다. 평소에도 오며 가며 가볍게 건네는 한 마디의 챙김에서도 친근한 다정함이 느껴졌다. 업무가 조금 많이 몰릴 때에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인사 한 마디를 꼭 건네주고, 아직 점심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때 내가 서류를 보고 있으면 옆에 살포시 다가와 아직 시간 안 됐는데 왜 일을 하고 계시느냐고 웃으며 속삭이듯 건네는 그 사소한 챙김들이 흐뭇해서 또 웃음이 났다. 한 공간 안에서 의식 한 가닥 마음 한 가닥을 그래도 내게 걸쳐두고 펼쳐두고 있다는 증표 같아서 소중하다. 그럼 나는 또 사이사이 작은 틈에라도 뭐라도 하나 더 거들어주고 싶다. 계산이 들어가지 않은 마음이다.
나는 시급이고 계약된 시간만큼만 일해야 한다. 더 해주고 싶어도 칼출근 칼퇴근이다. 오히려 그 점이 나는 홀가분하다. 나머지는 순전히 덤이다. 그냥 내가 좋아서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기분 좋게 건네는 순수한 손길 말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다섯 건을 처리하든 열 건을 처리하든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는 똑같다. 천천히 세월아 네월아 누워서 잔디 뽑듯이 느긋하게 하든 콩나물시루에 콩나물 자라듯 빽빽하게 밀도 높게 하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아니까. 내 마음은 아니까. 내 마음 가는 대로 해줄 수 있으니까. 기꺼이 마음을 내어서.
잊지 마! 너무 열심히는 말고, 어디까지나 즐거운 마음으로 적당하게. 때로는 내가 너무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적으로 누군가에게는 배려가 아닌 민폐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