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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Mar 08. 2024

갓성비 작업실 드디어 완성?

공간에도 핑크빛 립스틱을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가장 불편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전등 스위치의 위치!


보통은 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가는 초입에 손이 닿기 쉬운 위치에 있는 것이 정상인데, 문에서 떨어진 맨 안쪽 벽면에 있었다. 짐이 쌓여있으니 어두울 때 위험하기도 했고 들어오거나 나갈 때마다 불을 켜고 끄기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두말하면 이제 입 아프지만, 기본 인테리어 공사도 그렇고 전기 공사를 왜 그렇게 해놓은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도저히 불편해서 벼르고 벼르다 늦은 저녁 시간을 내어 스위치를 옮기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미관상 보기 좋게 하려면 벽을 뚫거나 천장 안을 열어서 배선을 보이지 않게 숨기는 작업을 해야 했지만, 우리는 그냥 있는 재료들로 활용해서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이것까지 들이지 않아도 될 시간과 공력과 비용을 이미 많이 들였고, 다른 일들도 충분히 바쁘고 고단해서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스위치 하나 옮겼을 뿐인데 이렇게 편할 수가! 덕분에 안쪽에 공간을 활용해서 짐을 좀 더 정리할 수도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스위치 위치 Switch!!


이다음 단계는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꼭 하고 싶은 과정이 남아 있다. 나만의 취향을 입히는 작업이다.


이건 얼마짜리 공사인가요?


먼저는 셀프 레일 조명 재료, LED 전구 및 펜던트 조명 갓 3개 모두 포함 4만 5천 원!


- 정말 마음에 드는 예쁜 조명 갓을 물론 하고 싶었지만, 전등갓 하나만 해도 전체 재료비를 훌쩍 뛰어넘는다. 예쁠수록 비싸다. 공간의 완성은 조명이라는 말도 알고, 욕심도 나지만 이 지하 공간에 맞는 주제와 분수를 잊지 않는다. 선을 지킨다. (지름신이 속삭인다. 선은 넘으라고 있는 거야!) 월세를 생각해. 배보다 배꼽이 클 수는 없어.


다음은 딸기우유 핑크 의자 1+1 세트 3만 5천 원!


-  선택과 집중! 이 정도는 해도 괜찮아. 핑크는 언제나 옳다.


필수항목이 아닌 "예쁘게"의 영역에 쓴 돈은 이게 전부다. 봄이니까 괜찮아. 나를 위해 립스틱 하나(?) 샀다고 생각하자. (아직 2만 원 정도는 더 써도 되지 않을까?) 나머지는 정말 다 있던 거에 얻어 온 거!


블링블링 공간 뽀샵! 핑크 코랄 깔맞춤! 전등갓은 65% 세일 상품이었다. 진정한 갓성비!!


사무실로서의 역할을 위한 꼭 필요한 기본 공사는 여기까지였다. 누가 오면 앉을자리는 있어야지. 그런데 의자도 얻어 와서 예상보다 더 넉넉해졌다. 지난 화요일에는 그동안 쌓아놓은 폐자재와 재활용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해서 싹 비우고 쓸고 닦고 청소를 했다. 이곳을 얻은 지 아직 두 달도 안 되었는데 마치 2년은 더 된 것 같다.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보니 아주 익숙하고 오래된 기분이 든다.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쏟은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자리를 잡고 안정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매일매일 꾸준히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 사이에 다니는 곳에서마다 "가게가 어디예요?"하고 물으면 이제는 아주 당당하게 우리 가게 위치를 알려 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미 그 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다시 생각해도 가게를 얻은 일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처음 이야기했던 본 메뉴와는 다르게 전혀 다른 메뉴를 서비스로 요구하는 얼토당토않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돌발상황과 변수들까지도 이 일의 과정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도 좀 쌓게 되었다. - 우리는 정말 기꺼이 밑반찬도 추가로 줄 수 있고, 심지어 군만두 서비스에 공깃밥까지도 그냥 줄 마음까지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짜장면만 시켜놓고서 갑자기 짬뽕이나 잡채밥을 덤으로 달라고 너무 쉽고 당연한 듯이 요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 정말 초창기에는 만 원 정도 덤으로 얹어주시는 친절한 고객님들의 기분 좋은 융통성에 감동하고 감사했다면 지금은 우리가 먼저 만 원 정도는 기분 좋게 깎아드릴 수 있는 여유라면 여유, 사치라면 사치도 조금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여유는 남편이 부리고, 나는 만 원어치 잔소리를 남편에게 선사한다.) 이제는 매일 밤 오늘 하루 사고 없이 무사히 안전하게 마친 것만으로도 감사에 감사를 거듭하며 잠자리에 든다. 진심으로 범사에 감사한다.



처음 시작을 되돌아보며 마침표를 찍는다.


새로운 다음 문장을 시작하기 위해 이 이야기는 이만 여기서 마침표를 찍기로 한다. 우리는 이제 막 봄을 맞이했을 뿐이다. 여름과 장마철도 겪어 봐야 할 것이고 정말 추운 한겨울도 지나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보며 그때그때 조금씩 필요한 부분을 보수하고 보완해 가면서 이 공간은 좀 더 우리답게 완성을 향해 갈 것이다. 이곳에서 또 어떤 인연들과 어떤 이야기로 채워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하나의 문이 닫히니 새롭게 또 하나의 문이 어딘가에서 열리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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