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밤 열 시가 넘어서 귀가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이리저리 쫓아다니면서 어느덧 남편의 뒷모습도 익숙해져 가고 나도 이제는 남의 일, 남편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구나 하는 마음이 조금씩 체화되어 가는 모양이다. 가끔 생각한다. 목수의 아내도 괜찮네. (미쳤나 봐.) 몸으로 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할 때가 그래도 더 많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새삼 느낀다. 글은 몸으로 쓰는 거라는 걸. 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삶에 의해서 쓰여질 뿐이다. 삶이 나를 쓰게 한다. 글이 먼저가 아니라 삶이 먼저다. 글은 언제나 삶을 필요로 했다.
뒷모습 퍼레이드
높은 사다리 작업이 점점 더 많아진다. 사다리 작업을 보조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밑에서 사다리를 붙잡아주고 지켜주는 사람을 온전히 믿고 내맡길 수 있어야만 비로소 위에 올라서서 마음 놓고 안전하게 마음껏 자신의 재량과 기술을 펼칠 수 있겠구나. 누군가 나를 '사다리 아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가장 크게 배운 한 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하고 싶을 때, 한 번쯤 그 사람을 내가 딛고 올라설 사다리 밑에 세워두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기본적인 사무실의 형태만 갖춘 후 너무 바쁜 2월이어서 작업실로서의 '예쁘게' 단계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 점점 짐만 쌓여서 처음 의지와는 다르게 정말로 창고가 되어가는 지경이다. 이건 안돼! 샵인샵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지분도 있으니 도화지의 절반은 내 맘대로 나답게 꽃단장을 하고 싶은데 아직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공간에 꽃단장도 필요하고 볼터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먼저는 당연히 이름이다.
나만의 작업실의 이름은 시공차애!
사실 이미 오래전에 지어놓았다.
읽고 쓰고 (詩)
짓고 고치는 (工) 사람들과
차 한 잔 나누며 (茶)
사랑이 깃드는 공간! (愛)
여기서 '시공'은 한 가지 더 의미를 갖는다.
바로 시간과 공간(時空)!
당신과 나, 우리가 함께하는 시공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은 본업이 바빠져서 잠시 쉬고 있지만, 책과 종이와 펜과 온갖 문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읽고 쓰는 활동에 안성맞춤인 핸드메이드 소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온라인 스마트스토어이름을 <시공차애>로 먼저 사용하고 있기도 했다.
- 참고로 사업자등록증의 상호명과 온라인스토어에 간판으로 내거는 상호명은 달라도 상관없다. 내 경우엔 남편이 사업자를 낸 김에 공부 삼아 시범적으로 오픈해 본 의미도 있다. 입금계좌나 카드결제, 세금계산서 발행 등 필요한 서류처리는 등록한 사업자로 하고, 보여지는 상표나 BI(Brand Identity)는 자신의 색깔을 입혀서 만들면 된다. 요즘은 당근마켓에서 개별 직거래도 많이 하지만, 자영업자로서 꾸준히 뭔가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고, 세금이나 수수료를 감당할 마음만 어느 정도 있다면 스마트스토어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간편하긴 하다. -
읽고 쓰는 이들의 필수품!
참으로 어여쁘지 아니한가!
이 어여쁜 아이의 이름은 바로 책벗 펜갈피! 그러고 보니 나는 이름 짓기를 참 좋아한다. 지금은 글벗의 동네책방에서만 굿즈로 꾸준히 판매하고 있다. 내가 쓰려고 만들었다가, 예쁜 데다가 쓸모 있기까지 해서 주변에 선물했다가, 선물 받은 글벗 책벗들이 주변에도 선물하고 싶다고 판매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얼떨결에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어디까지나 골방에서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조금씩 해내는 가내수공업이다. 매우 느리고 소량 생산이며, 체력과 장비의 한계로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배보다 배꼽이다. 판매 수익은 R&D에 넘치게 재투자하고 - 세상에 예쁜 원단은 무궁무진하다 - QC 기준 또한 매우 높아서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불량품이 되어 '내꺼'가 되거나 책방지기에게 홍보용 비매품으로 쓰라며 덤으로 선물한다.
어제는 친구가 이사를 하면서 커다란 테이블을 나눔해주었다. 가로 95 세로 180 센티미터에 제법 크다. 우리 차에 실릴까? 우리의 산타에게는 불가능이란 없다. 무사히 안전하게 싣고 왔다. 유리까지 완벽하고 서랍도 있다. 아주 튼튼하고 좋다. 디자인도 예쁘고. 테이블을 중간에 놓고 둘러앉으면 여섯 명 정도는 거뜬할 듯하다. (자! 이제 어서 앉아서 글을 쓰시오.) 어제 너무 늦어서 밤에 와서 겨우 조립만 해놓았다. 아직 미완성이다. 공간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을 더해줄 예쁜 펜던트 조명도 달고 싶다. 나는 참 핑크 코랄을 좋아하는군요. 공간을 채우고 꾸미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취향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그나저나 직업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글쓰는 사람,
봄비 같은 복지를 펼치는 일을 돕는 사람,
목수의 아내,
가내수공업자!
게다가 얼마 전에는 총무 원장님으로부터 상가건물 청소와 관리를 맡아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까지 받았다. 글쓰는 청소부까지 추가할 뻔 했다. 알바로 치면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 한참 고민했으나 그것까지 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서 감사하지만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 일이 힘들거나 지저분해서가 아니다. 어느 정도는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니 크게 새삼스러운 분야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뭔가를 맡으면 너무 과하게 마음과 에너지를 쓰는 나의 성향때문이었다. 나를 너무 잡다하게 여기저기 소모시키기에는 나의 배터리는 미약하다. 사실 나는 매일 오버페이스다. 그럼에도 예전과는 다르게 번아웃이 되지 않는 까닭은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도 방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