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먼저 틀린 그림 찾기 한 번 하고 가실까요?
새벽 6시, 드디어 최초의 무박 이틀 철야 작업!
아치(arch)로 아트하다! 그것도 미술학원에서.
인간의 손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가? 그 위대한 도전을 발견한 하루였답니다.
오늘의 작업 목표는 기존의 몰딩 사각틀을 제거하고 R 반지름 63.75 센티미터의 완벽한 반원형 아치 통로를 제작하는 것이지요. 순수 맨손 핸드메이드!
처음부터 새하얗게 빈 도화지였으면 훨씬 그리기가 수월했을텐데, 지저분하게 찢어놓은 도화지를 지우고 다듬고 다시 하얗고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이 더 오래 걸렸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신세계 목격!
쨔잔~!
진정한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아는 인간! 호모 스티쿠스? 호모 파베르!
다들 그냥 보통은 CNC가공이라고 해서 기계로 절삭하는 작업을 맡겨서 제작한다고 하는데,
이게 맨손으로 가능한 작업인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 도구의 이름을 <각목칼못컴퍼스>라고 명명하기로? 아, 마지막 자르는 게 주용도이니까 <각목못컴퍼스칼>로 불러야겠군요. 저도 처음 보는데 솔직히 놀라움을 갱신했습니다. 문과와 이과의 차이일까요?
몇 번 해봤던 익숙한 작업이냐고요? 설마요! 처음이랍니다. 해보고 싶었답니다.
같은 모양으로 두겹씩 양면! 총 네 장 완성! 그의 집념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요.
지칠 줄 모르고 멈출 줄 모르고 손댄 자리에서 끝장을 보는 이 사람의 집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재미! 바로 재미였습니다.
가끔 조용히 잠시 멈추는 모습을 발견할 때는 그가 머릿속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그 과정을 그려보는 것이구나 알게 되었지요. 고민하고 구상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친 후에 그 모든 것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눈앞에서 직접 구현해 낼 때의 그 짜릿한 성취감!!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해나가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퍼티가 마른 후 고르게 사포질을 하고 페인트칠로 마무리 완성!
새벽 6시 반에 귀가해서 씻고 점심때까지 쉬었다가 다시 2차 작업을 하러 다녀왔답니다. 퍼티가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고르게 사포질로 경계와 표면을 다듬고 흰색 페인트를 겹겹이 발라 주었답니다.
예쁩니다. 예뻐요. 왜 아치형 인테리어를 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 공간이 미술학원이라서 훨씬 더 잘 어울리고 공간이 살아난 듯합니다. 혹시 남는 재료로 우리 공간에도 연습을?
그리고 다른 작업이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칸막이벽이 흔들린다고 하여 혹시나 아이들이 위험할까 봐서 최대한 튼튼하고 안전하게 고정시켜 달라는 의뢰였지요.
층고가 거의 4미터에 달하는데 중간에 철제 프레임이나 기둥이 없이 워낙 높게 설치된 가벽이었습니다. 워낙 심하게 흔들리고 지지할 힘이 약해서 사다리를 H형으로 펼쳐서 기댈 수가 없었어요. 작업하는 미술실에 있던 짱짱한 테이블을 이용해 받치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답니다. 가능한 가장 긴 못을 있는 대로 다 촘촘히 박아서 고정해 주는 작업을 했어요. 천장 안으로 들어갈 기세! 이제는 저 뒷모습을 보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사진첩에는 뒷모습 퍼레이드가 가득합니다.
혹시 실리콘 아트라고 들어보셨어요? 마무리도 역시 예술로 해야겠죠? 모든 공력을 다 갈아 넣고 녹여 놓었다고 생각했는데, 제발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고, 만사 귀찮고 그만하고 싶다고 여겨지는 순간에 멈추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다시 집중력을 높여 완성도를 높여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가히 존경할 만했습니다. 흐트러지지 않는 건 자세뿐만이 아니었어요. 한결같이 즐거운 기분을 유지했어요.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했어요. 그게 진정한 힘이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그 앞에서 저만 힘들다고 짜증을 낼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저는 차에 가서 잠을.....)
벽에 때 묻을까봐 사다리 끝에 장갑 씌워주는 세심한 센스!
이상으로 어느 깊은 밤 한 미술학원에서 혼자 몰래 예술하신 어느 이름 없는 장인의 스토리를 마칠까 합니다.
혼자 본 것이 못내 아쉽고 아까워서 기록으로 남겨 봅니다.
저는 밤새 사다리 붙잡고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봤더니 목이 안 돌아가는군요.
매 순간 느끼는 사실이지만, 인간은 참 대단합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 어느 쪽이든!
참으로 꽉찬 2월이었습니다.
* 호모 파베르 (Homo Faber )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