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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Feb 20. 2024

리듬과 쉼표

월월월월월월월

요즘 나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다.


기본적으로 주 7일 계속 대기 중인 상태로 퇴근이나 딱히 온전한 휴일이라고는 없는 자영업자의 일상은 어쩔 수 없다.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직장으로 출근해 5시간 근무를 하고 퇴근 후 곧바로 우리 가게에 와서 저녁까지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출장수리 중이면 혼자서 문을 잠가놓고서 청소도 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아직까지 직접 찾아와 문 두드리는 손님은 없다. 전화로 가게가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된 점이 역시나 가장 큰 효용이다.


집에서 쓰던 좋은 커피머신을 가져다 놓고 ‘세상에서 제일 작은 무인카페’도 만들어 놓았다. 그래야 게으름 안 피우고 방구석을 벗어나서 한 번이라도 더 오겠지 싶어서. 집에서 가게로 오는 길목에 통신사 포인트와 쿠폰을 활용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지하공간에서 몇 시간씩 혼자 있는 적막함과 두려움을 책과 라디오로 달래다가 그마저도 부족해질 쯤이면 창밖을 볼 수 있는 카페에 들르면 된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연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도 꾸준히 써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나와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남편은 새로 맡은 작업을 연구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보거나 소소한 목공작업을 시도 중이다. 이 부분에서는 벌써 인프제의 작업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가끔 도시락도 싸 다닌다. 매우 바람직하다. 아직 '예쁘게'는 미완성이지만, 혹시 작업실 필요하신 분 손? 공간대여를 해볼까? (지금에 와서 고백하자면 나의 꿈은 샵인샵이었나 봅니다.)


핸드메이드 유리문 틈새 받침목? 분실방지 고리까지 걸어서! 서비스도 예술하십니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왜 계속 쓰는 걸까? 시시콜콜 시렁의 즐거움 때문일까? 이곳에서만 만나는 내 편들에게 얼른 일러바치고 싶은 호들갑 때문일까? 누가 억지로 써야 한다고 떠미는 사람도 없고, 이제 그만 써도 될 것 같은데 아무튼 계속 쓴다. 그 이유를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움직이고 숨 쉬는 것처럼 그냥 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그냥 어떻게든 쓴다, 지금처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가능하면 독서모임과 공부에 마음을 많이 두고 시간을 할애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남편이 혼자서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업들에 함께 쫓아다니며 손발을 맞추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서. 아무래도 그런 작업이 더 많이 잡힌 주말 휴일에는 밖에서 온종일 돌아다닐 때가 대부분이다.


일요일 늦은 저녁시간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다음날 월요일 아침 또 출근을 하려고 하니 도저히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휴일이 없는 기분이 계속되었다. 휴일이 끼었거나 동료가 사정이 있어 근무일을 바꿔준 날은 다른 날 연속으로 근무하고 와서 주말까지 이어서 일하고 곧바로 다시 또 원래 근무일로 출근을 하고 보니 몹시 피로하기도 했다, 몸보다 마음이. 게다가 2월엔 열심히 봉사한 설연휴도 있지 않았는가?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출근하던 월요일 아침, 나는 남편에게 바람 좀 쐬고 싶다고 말했다. 길게도 아니고 멀리도 아니고 가벼운 드라이브 정도로 바다라도 좀 보고 오고 싶다고. - 2박 3일 제주도까지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당일치기가 가능한 동해라도? 안 되면 서해라도? - 이 기분을 털어낼 환기가 절실했다. 계속 숨찬 일상에서 아주 잠시만 벗어나고 싶었다. 바로 전날인 일요일 저녁, 상가건물에 쥐구멍을 찾아서 막아달라는 의뢰가 있어 여기저기 우레탄 폼을 채워 막는 작업을 하다가 머리카락이며 옷이며 손과 신발에까지 온통 사방에 우레탄 폭탄을 뒤집어쓰고 돌아왔다. 이건 함박눈이나 휘핑크림이 아니라고! 심지어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쥐구경까지 하고 온 참이었다. (심봤다?! 아니고 쥐 봤다!! 나는 지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글감을 버는 거야.) 하다 하다 이제는 바로 눈앞에서 살아 돌아다니는 쥐까지 봐야 하다니. 더 우울한 건 나의 반응이었다. 보통 여자들 같으면 기겁을 하며 소리라도 지르고 도망갈 텐데, 같이 많이 살아봤다고 익숙하다는 듯이 별로 놀라지도 않고 덤덤하게 그러려니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더 가관이었다.


사다리 작업은 2인1조가 기본이다. 밑에서 안전하게 잡아주고? 지켜봐주고! 우레탄 폼 세례는 덤!


그런데 남편은 수고했다고 말은 하면서도 이런 내 기분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오히려 나더러 대인기피증이 있다며 소심하고 수동적인 자세를 타박했다. 월월월월월월월인 남편의 입장에서는 내가 팔자 좋은 소리 하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남편의 노고를 모르지 않고, 남편 또한 나의 수고를 당연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항상 남편만큼 남편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려야 할 수도 없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도 않다. 무엇보다 나의 내향성을 성격의 약점으로 치부하며 바꾸려고 노력해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지점에서는 화가 치밀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일의 힘듦이나 많음보다 낯선 사람들을 일회성으로 계속 만나야 하는 불규칙한 개방성이 나를 방전시킨다는 걸, 인프제(INFJ)에게는 자발적인 고독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남편은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걸 왜 힘들어하는지 진정 마음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거 같다. 나는 다만 좀 더 오래 즐겁게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리듬과 쉼표가 필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걸 왜 모르느냐 말이다. (사실은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거 맞습니다.)


오늘 아침은 내가 일을 벌이는 것은 잘해도 항상 뒷수습은 못 한다며 잔소리를 해댄다. 나더러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많아서란다. 언제는 몸이 약하고 체력이 달려서 그렇다고 하더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맞는 말을 듣고 나면 더 화가 나는 법이다. - 남편한테 정혜신 님의 <당신이 옳다>를 권해야겠다. 이 사람아, 지금은 옳은 말이 아니라 공감의 말이 필요한 순간이야. 그것도 몰라? 충조평판은 아프다고! -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건 본래 나의 일이다 생각하면 될 것을, 여전히 남의 일을 마지못해 해주고 있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는 걸. 똑같이 힘들게 늦게까지 일하고 와서 내가 밥을 차렸는데 치우기까지 해야 돼? 왜 나만 해야 돼? 세상 가장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때 되면 스멀스멀 찾아오는 알아주길 바라는 바로 그 마음 말이다. 이때만큼은 이미 매일 받고 있는 사랑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지 오래다. 이봐, 이봐! 마음이 이 지경이 됐을 때는 쉬어야 한단 말이야. (듣고 있니? 아니, 읽고 있니?! 제대로 차근차근 똑바로 읽어요!)


늘 반복되는 패턴이다. 남편은 항상 내가 힘들어하는 극한의 순간에 더 몰아붙인다. 바로 그걸 뛰어넘어야 한다며 나를 단련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매일매일을 훨씬 더 치열하게 열심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이 정도로 힘들다고 투정이라니. 이렇듯 다시 마음이 옹졸해지고 흙탕물 범벅이 된 기분이 들 때는 내가 나의 한계를 제대로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 그릇의 가장자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만져지는 기분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참고 이겨내면 케케묵은 그 그릇을 깨트릴 수 있다. 하기 싫은 마음, 적당히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깨고 또 깨고를 반복하는 이 모든 과정이 내 그릇을, 나의 도량을 키워나가는 수련이자 공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공부에 멈춤이란 없다. 오늘도 그걸 몸소 깨닫는 하루였다.


  

-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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