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한 달이 일 년처럼 느껴질 만큼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새해 1월이었다. 그래도 나름 선방한 덕분에 무사히 첫 월세는 낼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설 연휴를 지내느라 평소보다 지출도 많았는데 혼자 계시는 아주버님 댁에 마침 세탁기도 새로 들여 드리느라 예상치 못한 목돈까지 쓰게 되었다. 설 연휴 동안 내내 시댁 식구들을 챙기면서 이런저런 마음이 올라왔다.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현실과 늘 남편 혼자서 계속 많은 부분을 감내하는 것이 못내 속상하다. 평소에는 그나마 묽었던 그 마음이 명절이 되어 식구가 모이면 아무래도 그 상황과 마음들이 압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굴절을 만들어내니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LED 전등을 교체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젊은 부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갓 돌이 지난 아기가 있는 집이었는데 마침 손 볼 곳이 바로 아기방이었다. 이사 직후 짐을 정리 중이라 아기는 친정집에 가 있다고 해서 아쉽게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사진과 물건들만 봐도 얼마나 애지중지 귀하게 키우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기의 방은 마치 백화점 유명 브랜드 유아복 매장에 와 있는 착각이 들 만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아기의 옷과 신발, 액세서리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니, 보기 좋게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아기방의 가구며 이불이나 쿠션, 소파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더욱 나의 눈길을 끌었던 건 그렇게 아기의 방을 꾸미고 채웠을 젊은 엄마였다. 어느 한구석에서도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엇보다 듬뿍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눈치라고는 본 적 없이 상대방에게 무엇이든 당연하게 요구하고 그것을 받고 누리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몸에 밴 태도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그렇게 당연히 내 것인 양 받으며 살아왔구나 하는 듯이 느껴졌다. 남편분이 뭔가를 묻는데 "응. 아빠가..."로 시작하는 자동응답기처럼 나오는 대답에서 또한 그랬다. 그리고 받았던 대로 고스란히 자신의 아기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과연 내가 그런 집안 그런 부모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다면 나는 어떤 모습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상상해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상상도 경험을 바탕으로 가능한 영역인가 보다. 직접 겪은 일 외에는 쓸 줄 모르는 나의 한계일지도. 어릴 적부터 늘 살아남기 위해 민감해지고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살피며 나 자신보다는 상대방에게 우선적으로 맞추느라 나를 낮추고 구겨 넣는 반사적 태도와 자주 쉽게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해지는 본능적인 습성, 생존을 위해 그렇게 진화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나의 자리매김은 결국 환경과 세월이 만들어낸 나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흔히들 '보통'이라고 말하는 범주 안에 드는 부모 형제의 역할과 돌봄을 받아본 적 없는 남편과 나는 이곳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집을 다니고 경험하다 보면 자주 드는 마음이 있다. 젊은 시기부터 일찍 어느 수준 이상의 기본적 안정을 갖추고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메꿔지지 않고 벗어나 지지가 않는 지하 암반수 같은 환경이 있다. 메꾸고 돌아서면 파헤쳐지고 또 파헤쳐져서 메꾸느라 허덕이는 삶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냥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탄한 땅 위에서 혹은 지상 십몇 층에서부터 시작해서 그곳의 공기만을 당연한 듯 흡입하며 살아온 삶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평범일까? 내가 피부로 느끼는 그 평범의 간극은 멀고도 깊다. ‘재력 있는’ 부모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때로는 그저 자신의 기본적인 역할과 앞가림을 할 줄 알며 보통 사람이라면 베풀 수 있는 측은지심과 인지상정을 품은 부모나 형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구나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단순히 비교나 부러움의 문제나 누군가의 잘잘못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그리고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고달픔은 있는 것이라고.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복이라고도 하고 운이라도고 일컫는 그것은 그냥 나의 노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랜덤으로 주어지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꽃이 떨어지는데 그저 때가 되어 떨어질 뿐 자리를 가려 정하고 떨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저명한 학자는 이를 두고 ‘자연의 복권(natural lottery)’이라고 부른다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그 선물을 어떤 마음으로 받고 어떻게 누릴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무슨 선물이 주어질지라도 말이다.
10대 때부터 시작된 우리의 황무지 개간은 40대, 5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황무지라고 쓰고 남편은 무주공산이라고 읽는다. 깃발 꽂는 사람이 임자란다. 과연 존경할 만한 정신력이다.
첫 월세를 내고, 가까운 곳에 있는 철물점과 단골도 맺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더니 부품 사러 들렀다가 싱크대에 물이 안 나온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말끔히 해결해주고 나니 그 후로 인근 아파트에서 들어오는 요청을 철물점 사장님이 우리에게 자주 연결시켜 주신다. 우리는 감사하다고 박카스도 한 상자 사다 드리고 이제 거의 매일 들르는 곳이 되었다. 상가 총무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커다란 테이블도 얻어 왔다. 예닐곱 명은 거뜬히 모여 앉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인데, 이참에 모임 자리를 한 번 만들어 볼까?
아직 명절 후유증이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어쨌든 본격적인 시작이다. 다시 밝은 마음을 일으켜 보자.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우리가 노력해서 일궈낸 현실에 감사하면서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