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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Feb 03. 2024

미션 인(人)파서블

화룡점정을 찍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이사를 여덟 번쯤 다녔다. 그중에서 목돈의 이사비용을 들여 남의 트럭과 인력을 빌려서 이사한 것은 서울에서 수원까지 나름 장거리일 때 딱 한 번에 불과하다. 목돈이라고 해도 몇십만 원 정도였다. 나머지는 남편과 함께 우리 차로, 우리 두 손 두 발로 직접 들고 날랐다. 어디까지 실어봤을까? 경차에 통돌이 세탁기가 실린다는 걸 알았고, SUV에 440리터 투-도어 냉장고까지 실어 봤다. 한두 번 지인의 트럭을 잠깐 빌려 쓸 때도 있었다. 지금껏 셀프 이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때까지만 해도 제대로 그렇다 할 살림이 많지 않은 덕분이었고, 물론 그만큼 경제적 여력이 없었던 까닭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냥 우리 몸으로 때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 유일한 선택지였고 최우선이었다. 늘 그게 최선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할 수 있다고는 해도 이제는 그만하고 싶은데 어쩌다 또 하고 있다. 이번에는 새로운 미션이다. 가게를 얻으면서 가구나 집기를 사지 않고 집에 있던 것으로 채우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서 거대한 소파를 셀프로 옮겨보기로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들어올 때 이전 주인이 남겨놓고 갔는데 우리 두 식구에게는 너무 크고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이기도 해서 과감하게 반을 뚝 떼서 옮기기로 했다.    

  

남편은 마치 소 한 마리의 뼈와 살을 가르는 발골 정형 기술사처럼 거침없이 소파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가구나 물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그럴싸하고 화려해 보이는 것들도 속을 뜯어보면 말이 아닐 때가 많다. 이번 소파도 그랬다. 속이 이렇게나 허접하다니! 살 때는 몇백이나 주고 샀을 텐데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겠다 싶다. 오랜 노하우와 노련함으로 마침내 조각조각 해체당한 소파는 우리 산타에 거뜬히 실렸다. 또 한 번 기록 경신이다.   



소파 속이 이렇게나 허접?! / 우리 산타! 고마워! 훌륭해! 수고했어요, 남편.
이러다 여기서 먹고 자고 하겠습니다.

  




실려온 소파를 다시 재조립해서 들여놓은 후, 새로 입주 인사도 드리고 관리비 문제도 물을 겸 메시지를 보냈더니 상가 총무를 맡고 계시는 2층 학원 원장님이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변기 좀 뚫어 주세요!!”     


얼마나 간절하셨으면 숨도 안 쉬고 곧바로 달려오셨을까? 어른들이 누런 똥 꿈을 꾸면 돈 들어온다고 하셨었는데, 2월의 시작을 꽉 차게 쌓인 황금 변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으니 좋은 징조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몇 날 며칠 꽉 막혀있던 변기를 시원하고 깔끔하게 단번에 뚫어 주니 얼마나 감격하셨던지 학원에서 쓰던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고 사무실에 혹시 필요하시면 언제든 가져가시라고 직접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오신다. 가장 먼저 주차 편하게 하는 방법과 주차장 출입 비번도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고, 짠돌이 건물주와는 다르게 자신의 사비로 곧바로 입금도 해주셨다. 안 그래도 공실로 비어있는 만큼 기본 관리비를 깎아달라고 건물주가 연락을 해온 모양이었다. 대기업 자동차 회사 다닌다면서 몇만 원도 채 안 되는 관리비를 깎아달라고 한다며 다른 상가 사장님들이 투표에서 다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이미 여기저기 소문이 자자한가 보다.  

   


아이가 볼펜을 빠뜨렸었나 보다. 이런 게 속에 걸려있으니 뚫어도 뚫어도 또 막히지! (남편이 청소한 후에 불러서 이 정도..)



가장 힘든 문제가 해결되어서 좀 더 총무를 맡으시겠다고 하신다! ^^ 명쾌하심! 저희가 많이 도와드릴게요~




생명의 기본이 숨과 물이듯이 공간에도 호흡을 불어넣는 마지막 공사가 남았다. 바로 환풍과 수도 연결이다. 고심 끝에 싱크대를 최소한으로 놓기로 결정했다. 매의 눈으로 폭풍 검색해서 싱크대 본체를 주문해 놓고, 막혀있던 배수구를 뚫고 자재를 사다가 수도 배관을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벌레나 악취가 올라오지 않도록 실리콘으로 꼼꼼하게 메꿨다. 지하 공간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환풍기는 나중에 복구 문제도 있을 수 있으니 천장을 새로 뚫는 것보다 기존에 있던 환풍구 구멍을 이용하기로 했다. 세 곳 중 한 곳은 바람이 들어오고 두 곳은 바람이 나가는 구멍이다. 우리는 바람이 나가는 구멍 중 맨 안쪽 자리를 골라 환풍기를 설치했다. 이 또한 다른 곳에서 새 환풍기를 설치해 주면서 떼어 온 꽤 상태가 좋은 중고를 활용했다. 동그라미에서 네모가 됐을 뿐 크기가 딱 맞춤이다. 켜고 끄기 편한 위치에 스위치를 달아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잘 작동하는지 수도에 누수는 없는지 몇 번 더 점검을 거쳐 구석구석 잘 메꾸고 마무리 지었다. 우리 공간은 이제 막 혈관이 생기고 호흡을 시작했다. 불가능이란 없는 사람의 힘이다. 우리의 힘이다.  

    


혈관 우회술?  
기술만 쓰라니깐 왜 자꾸 예술을 하고 그래요~



검은색 스위치가 옥에 티? 있던 거야! 진정한 화룡점정!


재미있었다. 과정 하나하나 힘듦보다는 재미가 앞섰다. 알록달록 예쁘게 꾸미는 품위유지비는 필수가 아니니 미뤄놓는 것으로 하고, 이것으로 기본은 갖추었다. 설 연휴가 지나면 이제 정식 오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가 외벽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눈높이에 빈자리가 있어 작은 광고판도 붙였다. 이마저도 차에 붙이고 다니던 대형 자석 스티커를 떼어다 재활용했다. 상가 바로 앞 동에 사는 아파트 주민이 아이 태권도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봤다며 벌써 의뢰가 왔다. 기쁜 소식이다.     


우리는 우리의 길로 올바르게 잘 나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 그것이 우리의 신념이자 신앙이다. 그 신념을 살아내며  움직이는 만큼 일궈내는 우리는 여전히 수행자이다. 언제나 그렇듯 길은 사람이 내는 것이다. 





디지털도어락 5만 원

싱크대 15만 원

수전 2만 원

수도배관 2만 원

유리문 손잡이 1만 원

기타 청소도구 및 부자재 3만 원      

환풍기는 중고 있던 걸로 해결      


합계 28만 원   

  

아참! + 다 있쏘~ 쇼핑!! 2만 원!     


합계 30만 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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