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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Jan 20. 2024

24만 원짜리 도화지 완성

공간 심폐소생술


꼬박 닷새가 걸렸다. 기본 도화지를 완성하는 데에만.  일을 하면서 틈틈이 왔다 갔다 하면서 하기도 했고 페인트가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덧칠하고를 반복하느라 좀 더 걸린 셈이다.  

    

퍼티 한 통, 흰색 페인트 4리터짜리 세 통 6만 원,

바닥 단열재와 장판 13만 원,

환풍구 커버, 전기 콘센트 커버 3만 원,

실리콘 여섯 통 2만 원     


퍼티가 마른 후 페인트칠을 세 번쯤 덧바르고 부족한 곳곳에 좀 더 덧칠을 했다. 바닥은 에폭시를 할까 하다가 기존 바닥에 얼룩이 너무 심해서 그냥 단열재를 깐 후 그 위에 가성비 좋은 창고용 장판을 덮었다. (가정집처럼 바닥 난방을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저렴한 장판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직육면체의 도화지 꼭짓점들을 깔끔하게 정돈한 후 모서리 모서리마다 실리콘으로 틈새를 메꾸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해서 바닥과 벽에 녹여 넣은 비용은 대략 24만 원이다. 두 사람의 인건비를 참작한다면 10분의 1 가격에 해낸 셈인가?      



페인트칠 대부분은 남편이 했다. 나는 벽에 바르는 것보다 바닥에 흘리는 게 더 많아서 조금 시늉만 하다가 얼른 다시 롤러를 넘겨주고 유리창을 닦는 것으로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한 번 더 했다가는 없던 거북목과 오십견도 절로 나을 것 같다. 그 여파로 하루는 꼼짝없이 온수매트와 합일한 채로 누워있어야만 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이게 다 체력을 길러나가는 과정이라며 수고했다고, 꾸준히 이렇게 계속 함께 따라다니면서 해야 한다고 나를 독려하는 남편을 이뻐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런데 또 함께 못 가고 혼자 보내놓고 나면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밤새 어깨며 손목이며 여기저기 조금이라도 피로가 풀리도록 안마를 해준다. 나는 꼴랑 요만큼 하고서도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쑤시는데 남편은 얼마나 고단하고 아플까.     



천장에 환풍구 커버를 교체하는 데 건물주가 옆에 비어있는 나머지 두 칸도 함께 공사를 해줄 수 없겠느냐며 서로서로 양보하고 도우면서 좀 하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상가 세 칸의 환풍구는 모두 열한 개였다. 구매한 재료비를 메모해서 메시지를 보냈더니 건물주는 정말로 끝자리 500원까지 딱 맞춰서 ‘정확하게’ 재료비만 이체해 왔다. 뭐지? ‘서로서로 양보하고 도우면서’의 의미가 이것이었구나! 새삼 놀라웠다. 처음엔 황당하고 놀라웠고 그다음엔 차츰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감공사를 그렇게 해놓고 넘겨줬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누군가는 몸으로 때우고 누군가는 돈으로라도 때우는데, 어떤 누군가는 말로만 때우거나 그마저도 쌩 까고날로 먹는다. (고운 말이 안 나온다.)    

 

적당한 자재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며 알아보고 구하는데에서부터 직접 손길을 더한 작업과 뒷마무리까지


정말 이걸로 끝? 끝!


그래도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기도 했고 몸은 고단했지만 그만큼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마음들이 얼룩덜룩 자꾸만 배어 나오기도 해서 그 위에 하얀 생각을 덧칠하고 또 덧칠하느라 남몰래 애쓰기도 했다. 일을 다시 구한 것도 가게를 얻은 것도, 이 모든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닌데 조금 우울했다고 해야 할까? 여전히 몸으로 때우고 있다는 현실이 서글픈 것인지, 이런 일과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또 다른 형태의 갑질에 화가 나고 이런 대우를 받는 것에 속상한 것인지. 괜히 여기저기 일을 벌였나 부담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몸으로 때우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싶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일해서 대출이자라도 벌면 그게 어디야 또 그랬다가, 마음이 뭐 프라이팬에 전 부치기도 아니고 뒤집개다, 뒤집개! 모든 번뇌는 언제나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고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기를 반복하는 데에서 온다. 그런 하찮은 마음을 가진 인간들 때문에 귀한 내 시간과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다. 상가 입주 기념 서비스하고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얼른 털어버리자.         


예술하지 말자고 하니깐! 나사못 색깔까지 맞춰 칠하며 세공하시는 세공업자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네이버 스마트 플레이스 등록도 완료되어 이제 검색하면 우리 가게가 지도에 뜬다. 인터넷 간판이다. 지난번 홍보물 제작 때 덤으로 얻었던 작은 시트지 간판도 출입문 앞에 붙였다. 이것으로 오늘의 작업을 마무리 짓고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컵라면으로 첫 개시를 했다. 이제 이 공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까 가장 행복한 고민이 남았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비포어! 에프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간 심폐소생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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