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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Jan 16. 2024

인생은 미완성

노가다가 체질

꽤 바빴고, 지금은 삭신이 쑤신다.  

   

면접을 보고 떨어졌던 일자리에 운좋게 추가합격을 했고 출근과 더불어 새롭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 업무는 예전에 오래 해왔던 일이고 말 그대로 보조업무라서 머리 쓰지 않고 주로 손과 몸을 쓰는 일이다. 단순하게 멍 때리며 집중하기에도 좋다. 숫자 멍~! 서류 멍~! 다행히 보조인력 두 명이 교대근무로 파트타임이다. 재미있는 건 우리 둘 다 착각하고 있다가 출근해서야 그걸 알았다는 사실! 그래도 일이 있어서 감을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서로 입을 모았다. 나로서는 오히려 시간을 벌어서 가늘고 길게 할 수 있으니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차 시간과 에너지를 잘 안배해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다시 균형을 잡아나가야지.     







상가 계약도 무사히 잔금을 치르고 첫날을 맞았다. 보증금 잔금을 치르기 전 주말에 건물주를 만나 마지막 확인 작업을 거쳤다. 그런데 ‘혹시나’하고 우려했던 대로 ‘역시나’였다.  

    



벽은 뜯다가 말았고, 뜯었으면 메꿔 놓아야 하지 않나? 뜯은 흔적은 그대로 남겨두고, 곰팡이 가득한 천장은 손도 안 대셨다. 전기 콘센트도 작업을 하다가 말았는데. 아무리 봐도 공사를 하다가 만 것처럼 보이는데 이게 정말로 다 된 건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건물주는 이미 예상보다 비용을 많이 썼다며 "어차피 창고로 쓸 건데" 이 정도에서 우리더러 보수해서 쓰면 안 되느냐고 요청해 왔다. 최소한 가장 기본적인 도화지를 바랐을 뿐인데 욕심이었나 보다. 우리의 보증금보다도 두 배에 달하는 비용을 썼다면서 그렇게 많이 들 줄 몰랐다고 한다. 그 돈을 다 주고도 공사를 이렇게밖에 못했으면 그걸 우리에게 생색낼 것이 아니라 돈을 받았으면 마무리까지 제대로 해달라고 그쪽에 요구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걸 우리한테 절반도 안 되는 값에 다 떠넘기려 하셨으니 아직도 현실이 인정이 잘 안 되시는가 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알겠다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거기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 이렇게 된 거 실습 삼아 재미있게 고생해 보자. 창의적으로!  

   



잔금을 입금하자마자 가장 먼저 사업자등록증 주소 변경을 신청했다. 요즘은 신규로 사업자를 내는 것도, 변경이나 수정도 홈택스에서 한 번에 다 해결된다. 처리도 빨라서 단 몇 분 만에 변경된 사업자등록증을 곧바로 인쇄할 수도 있다. 새로 받은 사업자등록증을 사진 파일로 저장해 놓고서 다음엔 네이버 스마트 플레이스 등록을 신청했다. 업종 등록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키워드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필수 항목들을 입력하고 준비해 둔 파일을 첨부하면 된다. 등록 검토하는 데에 5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추가 사항은 나중에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     




제일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처리했고, 남편과 함께 페인트 가게에 들러 퍼티(핸디코트)와 페인트 두 통을 샀다. 헤라와 롤러도 함께. 퇴근 후 곧바로 우리 가게에 들러 가장 먼저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닦으며 구석구석 첫 청소를 했다. 둘 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썼다. 천장의 곰팡이 잔해까지! 철거 후 바닥은 물걸레로 닦고 보니 예상보다도 심각한 민낯을 드러냈다. 바닥공사를 무엇으로 할지 좀 더 고민해서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페인트칠보다 급한 일은 번호키 도어록을 설치하는 일인 듯하다. 현재 아날로그 열쇠 딸랑 한 개뿐이다.     




기본적인 청소를 마친 후 우리는 곧바로 평탄화 작업에 돌입했다. 보통 퍼티 작업이라고 부른다. 핸디코트라고 불리는 촉촉한 돌가루 반죽으로 이곳저곳 움푹 팬 곳들을 메꾸고 매끈하고 평탄하게 마감을 한다. 잘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필요하면 샌딩이나 사포질을 좀 더 하고 다듬은 후 페인트를 칠할 예정이다. 우리 서로 예술에 세공까지는 하지 말자고 타협했다. 적당히 하자. 갈 길이 멀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먼지와 피로를 씻어내고 저녁은 주먹밥에 라면이다. 달걀도 하나 동동 띄워서. 그래, 이 맛이야! 노동의 참맛, 노동 후 꿀맛! 


오늘 오후엔 페인트칠이 기다리고 있다. 이 와중에 재미있는 걸 어떡해. 아무래도 노가다가 체질이다. 타고난 배터리가 하루짜리라서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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