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향 서권기, 만나지 않고도 스승이 될 수 있는 길

스승의 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by 햇살나무 여운


스승의 날이 되면 여전히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생님은 중학교 때 만난 국어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의 성함은 김 선! 이토록 세월이 흘렀어도 내가 그분의 존재를, 성함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그분 덕분에 국어 선생님이라는 꿈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말고는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기란 내게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의 존재는 빛이었고 울타리였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마다 교과서에는 만날 수 없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시고 노래도 가르쳐 주셨다. 가끔은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의 자취방에 초대되어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었던가? 정확한 메뉴는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시골 중학교로 부임해 오신 젊은 여선생님의 작은 자취방이 책으로 가득했던 것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분을 존경하고 동경했다.

스승의 날, 내가 여전히 기억하는 선생님들은 다행히 또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새해마다 엽서를 보내주셨던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조윤범 선생님.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숙제를 한 번도 제대로 해 간 적이 없어서 늘 나머지 공부를 시키셨다. 선생님은 몸이 약한 내게 한 번도 매를 드신 적은 없으셨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셨던 박남식 선생님. 나의 안전한 어른 동승객이 되어주셨던 선생님.


나는 이분들께 돌봄을 받는 기분을 느꼈고 지금도 떠올리면 따뜻한 안정감이 차오른다. 세밀한 기억은 다 사라졌지만 그분들이 내게 남겨주신 온기는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때 전학 가기 전까지 1, 2학년 연이어 나의 담임이셨던 오춘숙 선생님. 사회 과목을 가르치셨는데, 나는 선생님 덕분에 몰래 교사용 교재를 자주 훔쳐보았다. 교사용 교재 한쪽에는 역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덤으로 많이 숨어 있어서 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를 낳고 길러주신 꽃 같은 엄마, 김명자 님


그리고

나를 사랑으로 품어주고 치유해 준 나의 남편, 세공업자 안치권 님


그리고

거리 불문 세월 불문하고 한결같은 우정으로 내 곁을 함께해 주는 소중한 나의 벗들!


그리고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됨을 잃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주고 이끌어준 좋은 책들.


모두 내 영혼의 스승들이다.

이 존재들 덕분에 나는 망가지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늘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평범한 교사는 말하고(tell),
좋은 선생은 설명하고(explain),
훌륭한 선생은 모범을 보이고(demonstrate),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inspire)〉

-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영감은 스승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힘을 의미한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제자는 스승에게 배울 수 있다. 책을 통해 사숙의 형태로 스승을 만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훌륭한 책이 풍기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 즉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을 통해 제자는 스승의 존재를 느끼고 배울 수 있다.

- 《위대한 멈춤》 중에서

삶의 길 위에 있는 누구에게나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은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 바뀌고, 사람을 통해 성숙한다. 자신의 역할 모델을 찾아서 깊이 배워야 하는 이유다.

- 《위대한 멈춤》 중에서


내 안에 그 사람과 비슷한 뭔가가 있기에 끌리는 것이다.
두 사람 간의 끌림과 울림은 존재의 어울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승과 나는 공명하고, 그들의 삶은 내 안에서 울려 퍼진다.

- 《위대한 멈춤》 중에서






오랜 시간 무르익을수록 좋은 것은 벗과 술, 차(茶) 뿐만이 아니었네.

책이라는 스승 또한 그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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