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연 '생선 장수의 노래'
그러나
피 묻은 장화를 보려하는 이는
없어요
하지만 무엇으로도 씻기지 않는 것들이 끝내 나이겠지요.
지금껏 나는 수없이 나를 죽이고
토막난 자신을 마주해왔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생엔 부디
너 자신으로 태어나지 말아라
그런데 왜 꿈속에선
심해를 헤엄치게 될까요
나는 생선 장수의 딸이었지요
내 어미는 수없이 생선의 대가리를
칼로 자르며 나를 키웠지요
그러나 나의 어미는 그 손으로
날마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긁어내면서도
전혀 다른 기도를 드린 모양입니다
그 무자비한 시간 속에서도
결코 내 새끼한테는
피 한 방울 튀지 않게 해달라고
내 딸은 비린내라고는 모르게 크라고
나는 끝까지 영혼을 믿은
내 어미의 칼날 위에 선 기도 속에서
나 자신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내게 그리고 내 어미에게
유일한 자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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