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숨구멍
여름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입맛이 사라진다. 평소에 그나마도 잘 못 먹고 입이 짧은 데다가 틀고 앉아서 머리만 많이 쓰면 식욕이 거의 사라진다. 보통 남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먹는다는데 나는 정확히 그 반대다. 책 작업을 마무리짓느라 한동안 항진과 긴장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새벽에도 깊이 못 자고 자주 깨고는 했다. 입안도 헐어서 수박이나 오이가 그나마 제일 잘 먹힌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서리태 콩물과 미니 밤호박이 주식이 된다. 챙겨야 할 남편과 해야 할 일이 없었다면 삼시 세끼는커녕 하루 겨우 한 끼나 제대로 먹을까 싶다. 살기 위해서라도 몸을 쓰고 움직여야 한다.
통 못 먹으니 오랜만에 남편이 외곽에 있는 한정식 집에 데려가 주었다. 평일 점심 특선이라고는 해도 괜히 많이 먹지도 못하는 내게는 조금 망설여지는 가격이긴 하다. 그래도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인데 이 정도는 괜찮다고 남편이 말한다. 고된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먹는 쪽에는 통 관심이 없는 나 때문에 덩달아 잘 못 먹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모처럼 온 김에 남편이라도 내 몫까지 골고루 잘 먹었으면 좋겠다. 내가 못하는 나물 반찬도 다양하게 나와서 남편 쪽으로 접시를 슬며시 옮겨주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남기지 않고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면 좋아하는 누군가를 데리고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몇몇 사람을 떠올린다.
평일 낮시간이라 대부분이 나이가 좀 있으신 여성분들이다. 이분들도 우리처럼 모처럼 모임을 가지시는 거겠지? 옆테이블에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 자기야. 우울증 약 먹는 줄 몰랐어. 전혀 그렇게 안 보여서.”
“이런 걸 잘 먹으려면 이가 좋아야 하는데, 잇몸도 안 좋고.”
소머즈 귀가 발동했는지 그 부분만 유난히 잘 들린다. 안 그래도 나 역시 입안이 아파서 제대로 못 먹고 있어서 더욱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이 들어간다는 건 다 마찬가지구나 싶다.
새 대통령이 뽑히고 새 나라 새 날이 밝은 첫날, 백만 년 만에 쓸고 닦고 청소를 했다. 마침 날도 좋아서 내친김에 이불 빨래까지 하고. 그동안 나도 모르게 꽤나 우울하고 무기력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날이 더워지니 시원한 카페에 가서 얼음 가득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남편과 나는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살 거 다 사고, 할 거 다 하고, 다닐 거 다 다니고’를 해 본 적이 없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 싶겠지만, 우리는 심지어 데이트를 할 때도 단 둘이 호프집은커녕 고깃집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아주 가끔 혼자서 친구가 선물해 준 어여쁜 잔에 맥주 한 캔이면 충분하다. 별 것 아닌 점심값 하나에 잠시 망설이는 것도 그렇고 평소 삼가는 것이 몸에 배서 그런 까닭도 있지만, 살고 싶은 대로 살기 보다 항상 위기에 대응하듯이 ‘살기 위해’ 최소한으로 살아온 습성이 익숙해진 탓도 크지 싶다. 마음 좀 놓을 만하면 꼭 일이 생기고 사고가 터지고 구멍을 메워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에도 어김없이 싱크홀을 맞닥뜨려 목돈이 나갔다. 밑 빠진 독은 아예 절연을 하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좀처럼 메꿔지지 않을 듯싶다. 휴일도 없이 거의 매일 하루 종일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 안타까워 딱 한 마디만 했다.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마음은 알겠으나 2, 30대 때처럼 똑같이 일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그 와중에 그나마 스스로 좀 여유가 생겼다고 느끼는 건 최근에 ‘덜 삼가는’ 나를 발견했을 때다.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그나마 먹고 싶은 것 가벼운 마음으로 사 먹고, 커피도 그냥 편하게 사 먹기도 하고, 너무 가성비만 따지며 열 번 참기보다는 그래도 두세 번 덜 참고, 눈치 보느라 접어두고 구겨두었던 나를 아주 조금은 더 자유롭게 펼치게 된 것이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계속 머물러 있기보다는, 여행을 따로 못 가는 대신 일 때문에 방문하는 새로운 동네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나름의 아지트도 물색하거나 일이 너무 늦어 밤늦은 시간 귀가하면 그냥 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달밤에 산책이나 조깅을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시집을 선뜻 사고, 안 하던 꾸밈에 관심을 가져 보기도 한다. 그 순간 주어진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 외로움과 우울을 탈피하는 위해.
내가 나에게 겨우 2만 3천 원짜리 밥 한 끼 사주는 데에도 명분을 따지고 있는, 오랜 습성이 순간 서글펐다. 이 풍요로운 세상을 살면서도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여전히 영양실조를 못 벗어나고 있다. 마음이 살아있는 한 우리는 생활만으로 살 수 없다. 사람이 필요와 의무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 질식이나 과호흡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누구나 숨구멍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과잉이나 실조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균형이 필요하다. 때로는 지나친 자기 검열을 풀어헤쳐놓고 쓸모나 효율 따위는 계산하지 말고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그저 좀 느슨하게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마저도 없다면 50대에도 여전히 워커홀릭에 10년 후에 우리 역시 우울증 약을 먹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50대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고. 지금 나름대로 행복하는 방법을 익혀두지 않으면 그때 가서는 이미 늦을 것이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자신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젊은 날의 우리처럼 여전히 떠밀려 오는 생활에 더 이상 우리 자신을 뒤로 미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고,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조금 덜 참고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 그동안 쉼 없이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정도는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요구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 지금, 좋은 것 보고 좋은 것 먹자!
친구들이랑 또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