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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기억

무루 《우리가 모르는 낙원》

by 햇살나무 여운



#우리가모르는낙원 #무루 #오후의소묘
#모든것이영원히달라지는여름 #여름
#환대의기억

내게 추억으로 남아있는 어릴 적 환대의 경험은 딱 두 가지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항상 성당에서 놀았다. 다산초당으로 유명한 남도의 땅, 강진!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마을은 남포리였다. 그곳 시골 성당에서 나와 놀아주고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주셨던 외국인 할아버지 신부님. 그 깡촌 시골에서 맛보기 어려웠던 아몬드 초콜릿과 오렌지주스를 간식으로 내어주셨었다. 집에서 성당이 있는 읍내까지는 꽤 거리가 멀어서 항상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주시고, 하얗고 커다란 꽃송이가 핀 나무 앞에서 사진도 찍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 후 해남으로 이사를 갔을 때는 방학이면 강진 도암에 있는 큰고모댁에서 지냈다. 큰고모는 할머니에 가까울 만큼 연세가 많으셨고, 터울이 큰 사촌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시골보다 더 시골이었던 그곳에서는 온갖 나무와 열매들이 풍족했고, 강아지와 고양이부터 송아지와 흑염소를 친구 삼아 놀았다. 냇가에서 빨래도 해보고, 산에 올라가 오두막도 지어보고, 커다란 오빠들이 목마도 태워주고, 가마솥에 쇠죽도 끓여보고, 수많은 모험과 추억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 두 곳에서 경험하고 느끼며 내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정서는 <안전한 자유로움>이었다. 나를 귀하게 돌봐주는 느낌을 그때 처음 받아본 것이다. 실제로 집보다 안전했고, 적어도 그곳에서만큼은 위험하거나 두려운 어른은 없었다.

그 시간 속에서의 나는 한 사람의 존중받는 고유한 존재로서 아이답게 여름처럼 자랐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한 시대의 인간이 얼마나 오만할 수 있는지!

신비를 잃어가는 동안 우리는 초월의 감각도 함께 상실했다.

그러나 언제고 기회가 찾아온다면 기꺼이 길을 잃어 볼 일이다.



- 무루 에세이 <우리가 모르는 낙원>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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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頂芽의 성장은

식물이 지금 자라는 쪽으로

힘을 쓰고 있다는

증명이다.


무루 《우리가 모르는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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