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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철활인

피고 지고 또 피어

도종환 '목백일홍' & 장만호 '백일홍'

by 햇살나무 여운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 백일홍 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 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 도종환 '목백일홍' 중에서






개심사 배롱나무
뒤틀린 가지들
구절양장의 길을 허공에 내고 있다

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변심과
작심 사이에서
마음은 얼마나 무른가
무른 마음이 파고들기에 허공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

새가 앉았다
날아간 방향
나무를 문지르고 간 바람이
붐비는 허공이
배롱나무의 행로를 고쳐놓을 때
마음은 무르고 물러서

그때마다 꽃은 핀다 문득문득
핀 꽃이 백일을 간다



- 장만호 '백일홍'






피고 지고 또 피어서 백일을 가니

쓰고 지우고 또 써서 백일을 버텨


그깟 백일 못 견딜까

꽃은 수십 년을 그 그림만 그리면서도

다시 한 폭 그리는 데 일 년이나 걸리는데


글은 고칠 수나 있지

그림은 더 느려야 해

종이 위에 한 번 물들면

고칠 수도 지울 수도 없거든


요즘 글이 잘 안 써지니 정말 다행이야

이제사 뭘 좀 제대로 써 보려나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이 꽃 다 지면

벼는 무르익을 테고

나는 고개를 숙이겠지







#도종환

#목백일홍

#장만호

#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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