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보다 뒷心

연습에 대하여

by 햇살나무 여운


며칠 전 재봉틀을 돌리다가 마지막 한순간 삐끗하여 다 된 완성품을 망쳤다. 재단부터 마무리까지 정말 예쁘게 잘되어 마음에 들었었는데, 뒤집어서 모양을 잡고 잘 다려서 마무리 상침을 하다가 한쪽이 삐죽 삐져나와서 화룡점정을 찍지 못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필사를 하다가 글씨를 두 번이나 틀렸다. 손은 글씨를 쓰고 있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으로 달려가고 있어 집중이 흐트러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득심응수(得心應手)>라는 말이 있다. 손과 마음이 호응하여 솜씨가 매우 익숙하고 뛰어남을 의미한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수레바퀴를 깎는 노인이 옛 성현들이 쓴 책만 읽고 앉아 있는 왕을 보고 말한다.


"소인은 바퀴를 만드는 놈이라 바퀴를 깎으면서 경험한 것에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느슨하게 깎으면 헐겁고, 그렇다고 빡빡하게 깎으면 빠듯해서 들어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느슨하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손에 익히고 마음에 응하는 것이지(不徐不疾,得之於手而應於心) 입으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들에게 가르칠 방법이 없고 아들 역시 제 말만 듣고 손에 익히지 못하니, 칠순이 넘도록 여태 수레바퀴를 깎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창 명상 수련을 다닐 때였다. 여러 가지 동작 중에서 외발로 중심을 잡고 서서 양팔로 상체를 감싼 채 앞으로 최대한 숙이고 한쪽 다리를 뒤로 쭉 뻗어 최대한 일직선으로 높이 들어 올리는 매우 고난도의 동작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외발 서기는 눈을 감으면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보통 눈을 뜨고서 동작을 취하지만 그것도 처음에는 잘 되지 않을뿐더러 이 동작은 그중에서도 특히 더 어려웠다.

마음이 흔들리면 시선이 흔들리고, 시선이 흔들리면 자세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버젓이 눈을 뜨고 있어도 조금만 딴생각을 하면 중심이 흔들리고 자세가 무너졌다. 몸은 정말로 거짓 없이 내 마음 상태를 곧바로 드러냈다. 수레바퀴 노인만큼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차례 시도와 실패 끝에 비로소 그 동작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 가지를 터득하게 된다. 바로 '시선을 어느 지점에 두는 것이 가장 적절한가'였다.


눈을 감아서는 당연히 안 되고 시선을 너무 가까이 바로 발밑에 두면 중심을 잡기 어려워 자주 흔들렸으며 고개를 들어 시선을 너무 멀리 앞에 두는 것도 뒷목이 아프고 힘이 들어 자세를 제대로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그 중간 즈음인 아주 살짝 앞쪽의 적절한 지점에, 시선은 자연스럽되 명확하게 둔다. 동시에 너무 안간힘을 쓰거나 자세를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해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은 힘을 빼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자세를 유지할 정도만 남기고 불필요한 긴장은 떨구는 딱 그만큼이 호흡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잡고 안정적인 자세를 가장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말은 쉽지만 직접 해봐야 안다. 그리고 이 또한 나만이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다 다를 것이다. 사람마다 아주 미묘하게 각각 다른 그 '적절한 지점과 힘'은 꾸준한 시도 끝에 오롯이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무조건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터득한 동작을 유지하는 시간은 두 시간도 아니고 20분도 아니고 놀랍게도 고작 2분이었다.


하루, 한 달, 일 년 또는 10년을 그리고 삶 전체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가치관은 바로 그 2분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그때 온몸으로 깨우쳤다. 온 마음 온몸으로 체득하니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다. 공부도 배움도, 관계도 삶도 결국은 그 적절한 지점을 찾아 또 거기에 적당한 힘을 조절하는 법을 끊임없이 터득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그 수레바퀴 장인도 이미 높게 깨우쳤음에도 스스로 매일 꾸준히 손에 익히고 단련하는 것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일은 시작만큼이나 끝맺음도 중요하다. 그래서 뒷심이 꼭 필요하다. 힘도 물론이고 무엇보다 뒷마음 말이다. 마지막 순간의 마음가짐이 다 된 일을 그르칠 수도 있고, 더욱 화려하게 꽃 피울 수도 있는 것이다. 흔히들 초심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그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는 데서 나온다.


그 뒷심이 필요한 지금, 그때의 깨우침을 다시금 상기시켜 보는 아침이다.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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