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다녀왔다. 어쩌다 한두 번 갔다 온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학교나 직장 다니듯이, 요가나 운동 다니듯이 나는 치과를 다니고 있다.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다니다’라는 동사에는 매일 또는 매주, 매달 몇 번이든 일정한 루틴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음을 포함하고 있으니 치과를 다니고 있다고 써도 무방하지 싶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치과와 바퀴벌레다. 그 공포의 근원은 따지고 보면 소리와 기다림일 것이다. 알 수 없는 소리 속에서 견뎌야 하는 막연한 기다림! 그것이 완벽히 처치될 때까지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볼 수 없고 알 수 없어서 더 공포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공포는 외면과 회피로 이어지고 그 뒤에 찜찜함이 계속 따라다닌다. 요즘은 좀 드물지만, 어디선가 바퀴벌레라도 나오면 나의 영역은 소파 위로 극히 좁혀지고, 남편이 올 때까지 최대한 외면한 채로 기다림은 계속된다. 벽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다. 진짜다. 치과도 최대한 미루고 회피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서워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결국 나의 어리석음이 인과응보가 되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실제로 뼈가 ‘저리게’는 아니더라도 녹아내리게는 겪었다. 몇 년 전 턱뼈 안에 알 수 없는 염증이 생겨 오래도록 고생을 하다가 겨우 수술을 했다. X-ray 사진을 보니 턱뼈가 녹아 실제로 구멍이 난 셈이었다. 어금니를 몇 개 뽑기도 했고, 몇 차례에 걸쳐 째고 꿰매고, 살이 모자라서 입천장에서 떼어다 이식도 했다.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그냥 숭덩 이가 빠지기도 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이 정말 힘들면 이가 빠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는 절절하게 안다. 어쩜 그렇게 자신을 돌보지 못했는지…. 한 번 무너진 턱도 치아도 얼굴도 이전처럼 회복되지는 않는다. 턱에는 흉터가 남았고, 치과는 대학병원에서 개인병원으로 옮겼을 뿐 그때부터 쭈욱 계속 다니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포가 무서워서 계속 다닌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잘 어르고 달래며 데리고 살기 위해서 가장 약하고 가장 무서운 것을 곁에 가까이 두는 것이다. 예약문자가 이제는 반갑기까지 하다.
같은 치과를 1년 넘게 다니니 익숙해진 것은 공포감 대신 원장님과 상담 실장님의 얼굴이다. 뭐, 그 익숙함과 신뢰가 안도감을 주기는 한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만큼은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쓰고 온다. 치과는 소리만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곳의 화폐단위는 바깥과 확실히 다르다. 오늘도 거침없이 60만 원을 긁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망설임 없이 “좋은 것으로 해 주세요.” 한다. 답은 정해져 있는데, 왜 선택지를 주는지 모르겠다. 물론 무이자 3개월! 이제는 이마저도 익숙해져서 누구 집 개 이름인가 한다. 실제로 어릴 때 친구네 집 강아지 이름이 ‘이만 팔천’이었다. 마취가 덜 깨서 감각이 무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치과 이름만큼은 사랑이 참 가득하다. 내 안에는 공포로 가득했지만. 왜 기도하는 자세가 두 손을 꼭 모으는 것인지 나는 치과에서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치과 침대에 누워 두 눈 꼭 감은 채로 절로 두 손이 꼬옥 모아졌다.
이 정도 치과 다니는 경력이 쌓이니 어떤 때는 공포를 넘어 희열이 느껴지기도 한다. 선생님과 호흡을 맞춰 함께 치료에 참여해 합이 아주 잘 맞은 느낌이랄까? 놀랍게도 명상을 했던 경험이 치과에서 매우 유용하다. 눈은 감고 있는데도 이제는 나도 보이는 듯 하다. 이때는 이렇게, 이다음은 이렇게. 무엇보다 코로 숨을 쉬며 호흡을 오래도록 고르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너무 과한 긴장으로 경직되지 않도록 몸에 힘을 빼는 조절도 되고, 어떤 때는 순간 졸기까지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마취를 하면 아픈 줄도 모르는데 내 뇌는 왠지 다 느낀 것 같다. 한참을 갈리고 나왔더니 잠시 어지럽기도 하고, 돈도 걱정이 되고 …. 이런 나를 위로라도 하는 듯이 어쩐 일로 오늘은 마을버스가 곧바로 일찍 왔다.
괜찮아, 집에 가서 글로 쓰면 돼. 글쓰기의 최고의 효능은 치유가 아니던가.
어느 책에선가 우리 몸을 람보르기니처럼 대하라고 했었는데, 본래 약하게 태어난 구석도 있겠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를 헐값의 중고차만큼도 대하지 못한 책임을 이렇게 뒤늦게 치르고 있다. 분명 지금 망설이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당신의 몸을 20년 된 픽업트럭처럼 끌고 다니지 말고 람보르기니처럼 대하라. 당신 몸은 그럴 가치가 있다. -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