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당근!”이 울린다. 남편이 집수리 일을 하면서 당근마켓을 통해 홍보를 하고 있다. 욕실 세면대에 팝업을 교체해 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이 시각에? 많이 급한가 싶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한참을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남편은 빠르고 유연하게 카톡이나 메시지 대화를 잘하는 편이다. 그러다 고객님은 문손잡이까지 교체하면 얼마에 해줄 수 있는지 물어 왔다. 남편은 단골 등록하시고 쿠폰을 쓰시면 얼마까지 할인해 드릴 수 있다고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고객님은 비싼 듯이 몇 번을 더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남편은 재료비가 포함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마지막 하한선을 제시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린 후 대화를 마쳤다.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겨 있었다.
가타부타 말없이 그 후로는 연락이 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하루가 더 지나 그 고객님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문손잡이는 구해 놓았으니 재료비를 빼고 딱 ‘얼마!’에 해달라고 하셨다. 남편은 더는 말하지 않고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답하고 시간이 언제가 가능하신지 물었다. 처음에는 고객님이 먼저 다음 날 오전에 가능하다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그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다. 남편은 다른 스케줄을 거기에 맞춰 조정했다.
그런데 저녁에 다시 연락이 왔다. 오전 시간은 아무래도 번잡할 것 같다며 저녁 이후로 시간을 변경해 달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또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스케줄을 또 조율했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구시렁거렸다. 어디까지나 남편의 '비즈니스'니까 내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구시렁을 글로 쓰는 수밖에!
그래도 그 고객님의 입장을 이해는 한다. 왜냐면 나도 주부이고, 생활과 밀접한 부분에 있어 한 푼이라도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니까.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는 것도 일상다반사이니까. 그러나 너무 일방적인 태도가 계속되니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된다.
어쨌든 남편은 그 일을 처리했다. 요청했던 세면대 팝업 교체와 욕실 문손잡이 교체를 마무리했다. 개는 짖어대고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몹시 더웠단다. 그보다는 기존에 문 상태가 너무 엉망이어서 해놓고도 남편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문과 문틀이 너무 벌어진 상태여서 잠금걸쇠가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남은 부품을 덧대어 보아도 모자라다고 했다.
진짜 일은 그다음부터였다. 못을 하나 박아 달라고 했단다. 물론 못 하나쯤이야 서비스요, 공짜요, 얼마든지 덤이다. 문제는 미리 얘기 없이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것과 매우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나사못을 박아달라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잘 모르면 못 하나는 껌이라고 여길 수도 있으니까. 남편은 콘크리트 벽을 뚫으려면 해머 드릴을 써야 하고 소음이 발생하는데 그러기에는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고 한다. 대신에 다시 시간을 잡아 장비와 전용 못을 가져다 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단다. 당연히 그것도 무료로!
“당근!”이 울렸다. 그 고객님은 다음 날 오전에 바로 해달라고 또 총알같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남편은 미리 약속된 일정들이 있으니 이번엔 일요일 오전에 가서 해드리겠다고 했다. 일요일?! 굳이?! 돈을 받지도 않고 서비스로 해주는데 굳이 일요일에까지 가서 해줘야 하느냐고 나는 또 구시렁거렸다. 그냥 못 하나가 전부였으면 그것까지도 그래!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 고객님은 휴일 아침에 무료로 방문한 남편을 아주 야무지게 적극 활용했다. 원하는 대로 벽에 구멍을 뚫어 못을 박고 시계를 걸어주고 나니 싱크대 선반 높이가 안 맞다, 서랍에 레일이 빠져서 안 움직인다, 샤워기 걸이에 나사가 빠져 흔들린다 등등 이참에 다 해결해 버릴 모양새였나 보다. 남편은 그 모든 걸 기꺼이 공짜로 해주고, 작업해 놓고도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문손잡이 부분을 자신의 부품을 일부러 더 챙겨가서 마저 덧대어 보강해 주었다. 집은 역시나 후덥지근했고, 개는 여전히 짖어댔고, 그 모든 걸 해주고도 남편은 물 한 모금도 얻어 마시지 못하고 돌아왔다. - 아니다. 그래도 물은 한 잔 얻어 마셨단다. -
나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나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하다못해 단돈 얼마라도 수고비를 드리겠다고! 그런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아직 너무 순진한 거야. 세상에는 이런 경우가 훨씬 많아. 그게 그 사람들한테는 당연한 거야. 그런 것도 배워야 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화병은 내 몫인가? 앞으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아무래도 남편의 비즈니스는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 다시 도를 닦아야 하나?
어떤 고객님은 중문이 고장 났는데 와서 봐줄 수 있느냐고 물으며 봐주는데 얼마냐고도 묻기도 하신다. 남편은 가서 상태를 보는 것만은 따로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 바로 조치해 줄 수 있는 부분이어서 한 번에 처리해드리고 나니 그 고객님은 너무 고맙다며 곧바로 손에 현금을 쥐어주고 사진까지 올리며 친절한 후기도 남겨 주셨다. 여기서도 남편은 못 하나는 기꺼이 서비스로 박아 드리고 액자까지 걸어 드리고 왔단다. 그것도 천연석 벽에!
역시나 사람 참 다양하다. 모든 것은 결국 사람 나름의 문제다. 그 모든 걸 다 배우고 알아도, 아무리 그것이 당연한 세상이라고 해도 적어도 나는 끝까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간직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직은 그래도 그런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싶다.
내가 마음을 내어 기꺼이 해주는 것과 상대방이 그것을 당연시여기며 함부로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