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가 실패했다

당근의 폐해

by 햇살나무 여운
당근에서 문의만 했을 뿐인데, 거래를 이용하지 않고도 별점을 매길 수 있는 시스템. 가격협상 거절한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별 1개 받은 동료 업체! 그러니 대답 한 마디도 잘해야


사수가 실패를 하고 돌아왔다. 그것도 빈손으로. 사수도 실패를 한다. 사수도 못 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었다. 갑자기 오늘따라 사수가 왠지 조금 더 '사람'스럽게 보인다. 간혹 목격되던 정황에서 저 정도면 분명 사수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수인간설'의 의심이 조금 수그러드는 순간이다.

땀도 흘리고 피도 흘리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한 인간입니다. 급할 때는 임기응변! 동전도 쓸모있게!

늦은 가을쯤 다급하다고 해서 밤늦은 시간까지 애써 뚫어줬던 어느 아파트 상가의 속을 알 수 없는 꽉 막힌 공용 하수구! 바로 그 가게였다. 오래도록 고질적인 급체와 소화불량을 앓아오던 하수구였는데, 그 당시 분명 사수가 몇 시간을 고생해 시원하게 뚫고 물을 가득 흘려보내 용트림을 하는 것까지 상가 사장님들 함께 목격하고 마무리 짓고 왔었는데, 어찌 된 영문일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근에 새로 들어와 인테리어 공사를 한 상가가 있는데 바로 그 공사 직후에 또다시 막힘 증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 좁은 싱크대 밑에 몸을 욱여넣고 사수는 또다시 세 시간이 넘도록 뚫고 또 뚫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다 안 뚫렸다고, 그냥 예전에 늘 부르셨다는 다른 분을 부르시라고. 그렇게 빈손으로 손목에 잔뜩 스크레치만 입고 돌아온 사수를 보며 조수는 또 말없이 속 터진 찐만두가 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명확하게 속 시원하게 뚫리지 않았다고 하니 뭐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곳은 여기까지 하는 게 맞다고 사수는 말한다. 아무것도 안 받는 게 마음을 접는 데 더 낫다고. 몇 번의 실망 끝에 사수는 이미 마음을 접는 중이었나 보다. 사람이,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흑과 백으로 명확하게 나뉘고 칼로 싹둑 무 자르듯 말끔히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복잡 미묘한 것이 관계이자 감정이라고.


사실 최근에 연이어 미묘한 꼬임과 막힘이 느껴졌다. 정말 간절할 때, 너무나도 마음에 들게 가게와 집까지 이곳저곳 손봐주고 편안하고 기분 좋게 소통하고 맞춰주고 할 때는 참 좋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두 번째 가게를 추가로 인수했다며 또다시 이런저런 견적을 요청해 왔다. 사수가 견적을 낸 여러 항목 중에는 상가건물주가 감당해야 하는 건물 본체에 속하는 작업과 의뢰인이 지불해야 하는 가게 내부 인테리어에 속하는 작업이 섞여 있었다. 사수는 그것까지도 건물주에게 이야기하기 좋게 말끔히 교통정리를 해서 전달해 주었다.


며칠 후 의뢰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런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추가로 얻은 가게 역시, 청소를 하다가 뒤늦게 하수구가 막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서로 운전 중이고 작업 중이던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의뢰인이 말하길, 건물주가 지불하기로 한 작업만 하고 거기에 출장비 정도만 추가해서 막힌 하수구까지 다 해결해 주면 안 되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얼렁뚱땅 후려치는 값에 솔직히 당혹스러움을 넘어 어처구니가 날아갈 뻔했다. 우선 나중에 다시 상황을 좀 보자고 하고 사수는 일단 통화를 마쳤다. 바로 엊그제 우리에게 그렇게나 신이 나서 두 번째 가게를 인수한 이야기를 할 때, 천만 원 단위의 권리금에 대해 듣지 않았더라면...


그러는 와중에 기존에 있던 가게도 하수구가 또 막혔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무언가 흐름이 왜 자꾸 막힐까? 이것은 우연일까? 얼어붙은 날씨 탓인지 마음 탓인지! 우리도 그냥 따듯한 실내에서 물길이 훤한 아파트만 뚫으면 안 될까? 조수는 내내 속이 시끄럽다. 아니다, 실패하길 잘했다. 잘 실패했다.


당근이 울린다. 거실에 전등을 떼어놓았는데, 사놓은 새 전등을 달아만 주면 된다고 기본 출장비마저 깎으며 거저 해달라시피 한다. 이왕이면 오는 김에 기존에 있는 커튼봉이니 그것도 달아주면 좋겠다고. 커튼봉만 있고 브래킷은 없으니 그것도 알아서 사 오란다. 그러면서 몹시 소름 돋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당근은 나눔 하는 곳이잖아요."


그러는 당신은 무엇을 나눔 하셨는지 묻고 싶다. 식당에 가서 공깃밥 한 그릇 시키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처음부터 선을 넘고 무리한 요구를 막무가내로 해오면서 별점 하나에, 악플 한 줄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자영업자 목줄을 더욱 조여 온다. 멀리 떠날 필요도 없이 지금 이곳이 시베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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