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디자인이 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스마트폰이 진화하면서 더욱 얇아지고 날렵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얇아진 휴대폰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최소한 휴대폰 매장에서 함께 주는 스마트폰 케이스라도 넣고 다닌다. 얇아진 제품 특성을 죽여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 손에 휴대폰만 들기보다는 케이스에 담겨 약간 두툼해진 것이 잡기 편하다.(나만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끄러운 표면으로 인해 떨어뜨리기 쉬운 점도 있다. 사실 휴대폰이 떨어지면서 파손되는 경우가 많다.(특히 액정 파손이 많다.) 이때 휴대폰 케이스는 손상 방지 역할을 어느 정도 한다.
나도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한다. 덮개가 있는 것보다는 그냥 케이스만 있는 형태를 선호한다. 덮개 부분에 회사 출입카드나 신용카드를 넣어둘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두꺼워져 불편했다. 무엇보다도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 시 방해가 됐다.
그럼에도 나는 덮개형 케이스를 쓰고 있었다. LG V20으로 교체하면서 무료로 함께 준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케이스가 낡아지면서 지저분해졌다. 그리고 카드를 넣어두는 곳도 헐거워지면서 카드가 잘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매장에 가서 덮개 없는 휴대폰 케이스를 구입해 쓰기로 했다.
퇴근길에 서울역에 있는 하이마트 매장에 갔다. 휴대폰 케이스가 한쪽 벽면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V20용 휴대폰 케이스가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삼성 갤럭시와 아이폰용이었다. LG 폰 용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LG V20 휴대폰 케이스가 한쪽에 있었다. 단 4종류뿐이었다. 물론 이곳이 휴대폰 액세서리 전문점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삼성과 LG 휴대폰의 인기도를 보여주는 모습인 듯싶었다.
여기서 제일 싼 것을 샀다. (제일 싸도 1만 원이 넘었다.) LG V20을 케이스에 끼운 뒤 덮개형 케이스는 버렸다. 그동안 덮개 부분에 끼워져 있던 회사 출입카드는 케이스 속에 넣었다. 이제 케이스 뒷 면을 출입구에 대면된다. 다음날 아침 회사에 도착해 출입카드를 접촉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결국 출입카드를 빼낸 뒤 접촉해야 했다.
전에 사용하던 삼성 갤럭시 S5 케이스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케이스를 살펴봤다. 전에 것에 비해 두꺼웠다. 두꺼워서 접촉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케이스에 구멍을 뚫기로 했다. 휴일 나는 전동드릴을 이용해 구멍을 뚫었다. 나름 디자인 감각을 동원해 크기가 다른 구멍을 여러 개 뚫었다. 그 결과가 이 사진이다.
그러고 나서 회사 출입카드를 먼저 넣고 휴대폰을 결합했다. 다음날 회사에서 사용했다. 그런데 작동을 안 했다. 충분하게 구멍을 뚫지 않아서 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혹시나 싶어 전철 출입구에서 교통카드를 넣고 사용해 봤다. 마찬가지로 작동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집에 와서 구멍을 더 뚫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날 전철 출입구에서 휴대폰을 제거한 뒤 교통카드만 휴대폰 케이스에 넣고 접촉해 봤다. 이상 없이 작동했다. 회사에 도착해 출입구를 나오면서 이번에는 케이스를 제거하고 LG V20 휴대폰 뒷면에 겹친 상태로 접촉해 봤다. 작동하지 않았다. 휴대폰과 약간 떨어뜨리니 이상 없이 작동했다.
원인을 알아냈다. LG V20의 특성 때문이었다. LG V20 뒷면 덮개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참고 : http://social.lge.co.kr/lg_story/lg_mobile/v20/v20_disassemble/ )
LG 전자는 금속성 덮개를 사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V20는 AP와 쿼드 DAC 등 스마트폰 성능의 핵심인 부분을 다시 한번 메탈로 마감해 부품을 보호하는 한편, 전파 방해를 줄여 통화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이다."
알루미늄은 구리에 비해 62.7% 정도로 전기가 통한다. 상당히 전기가 잘 통하는 편이다.
참고로 아래는 각 금속의 전기 전도율(도전율)을 표시한 표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출입카드, 교통카드는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이 기술은 카드 판독기에 흐르는 전류로 인해 주위에는 전류에 의한 자기장이 생긴다. 이때 근처에 접근한 RFID카드에 전자기 유도 현상에 의해 카드 내부에 있는 코일에 유도전류가 생기고 이것이 카드 내의 콘덴서에 저장된다. 이 전류를 이용해 카드 내 반도체 칩에 저장된 정보를 카드 판독기에 무선으로 보내면 카드 판독기의 컴퓨터가 이를 확인하고 문을 열든가 혹은 교통카드를 승인하게 된다.
출입카드 속에 있는 코일에 유도전류가 생겨야 하는데 알루미늄으로 만든 LG V20 뒷면 덮개가 이를 방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구리에 비해 60% 정도의 전도성을 가진 알루미늄이 전기를 카드 내 콘덴서에 저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짓고 보니 휴대폰 케이스에 구멍을 뚫은 노력이 허무했다. 멀쩡한 케이스에 생긴 구멍들... 결국 내 가슴에도 구멍 아닌 구멍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