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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Feb 19. 2019

크리스 조던

인간이 만든 잘못된 죽음을 지켜보다

책을 봤다. 물론 읽었다. 그러나 첫 챕터인 1부 앨버트로스(ALBATROSS)를 읽기 위해 책갈피를 넘긴 순간 나타난 사진을 봤다. 충격이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사진에 대한 설명이고 보조였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은 것이 아니라 본 것이다. 아래 사진이다.

바다 위로 떠다닌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은 앨버트로스. 눈 부분에 놓인 작은 돌조각이 눈에 반사된 빛처럼 보인다.

미국령 산호초 섬인 미드웨이 섬은 북태평양에 있다. 서쪽에 샌드 섬, 동쪽에 이스턴 섬, 그 사이에 스핏 섬이 있다. 하와이 섬의 북서부에 있는 미드웨이 섬은 이름처럼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2차 대전 당시 섬 인근 해역에서 미군이 일본 해군을 격파하면서 승기를 잡기 시작한 미드웨이 해전으로 유명하다. 1993년까지 미국 해군기지가 운영되었으나 현재는 거주민이 없는 섬이다. 따라서 미국령 군소 제도로 분류되어 섬 행정을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이 관리한다.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관리당국에 사전 신청 후 허가를 받아야 해 사실상 일반인 출입이 어려운 지역이다. 이렇게 되면서 섬은 새들의 낙원이 됐다. 특히 이곳에는 1백만 마리가 넘는 앨버트로스 새가 살고 있다.

크리스 조던/인디고 서원/ 2019년 2월 18일 초판/ 18,000원

책 제목이기도 한 '크리스 조던'은 사진가이자 영상 촬영 감독이다. 그리고 환경운동가이다. 그는 미드웨이 섬에서 죽은 앨버트로스를 촬영한 사진으로 시작했지만 끈질기게 이어지는 새들의 삶을 보면서 동영상 작업을 하게 된다. 책은 영화 '앨버트로스' 영상에 들어간 내레이션, 그리고 한국 청중들과 대화한 내용, 그리고 책을 편찬한 인디고 서원과 언론사 등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엮었다. 영화 속 일부 영상은 이미 지난 2013년 KBS '이지연의 톡톡! 매거진'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크리스 조던은 영화 '앨버트로스' 마지막 장면에서 내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성장해서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고 죽은 앨버트로스를 해부하니 많은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

"애도는 슬픔이나 절망과는 다르다.

그것은 사랑의 감정과 같다.

애도는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혹은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에 마음의 자리를 내어준다면

이는 우리를 사랑의 가장 깊은 곳까지 데려다줄 것이다.


앨버트로스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나조차도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앨버트로스  둥지에 앉아 있는 새끼들 사이로 파도에 휩쓸려온 플라스틱 부표 등 각종 쓰레기가 보인다.

 작업 과정은 관찰자이면서도 이웃에 사는 한 인간이라는 생물종으로서 앨버트로스 옆에서 진행됐다. 천적이 없는 환경이기에 새들이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 가까이 다가가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다가간 사진 앵글은 놀랍다. 마치 다른 앨버트로스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 듯한 느낌이다. 새들은 크리스 조던을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들보다 덩치가 크긴 했지만 특별하게 귀찮지는 않은 존재로 인식됐다.

책을 보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사진이다. 어미가 먹이인 줄 알고 물어온 플라스틱 조각을 새끼에게 먹이는 장면이다. 제대로 된 상황이라면 작은 물고기 같은 먹이가 어미 뱃속에서 소화되어 죽처럼 된 것만 토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작은 플라스틱 조각도 함께 새끼에게 전달된다. 그래도 새끼는 커간다. 하지만 마지막 먹이를 전달받은 새끼가 홀로서기를 할 때 문제가 된다. 배 속에 가득 찬 플라스틱을 토해 내지 못한 새끼들은 제대로 날지 못하고 결국 굶어 죽게 된다.   


책을 보면 약간의 분노와 함께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언가 행동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크리스 조던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운동을 하다 보면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사람 잘못이야'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죠. 특정 기업이 나쁘다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업들은 우리가 말하는 좋은 것들을 만드는 기업이기도 할 것입니다.  <중략>

영어 표현 중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게 되면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가리킨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경우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나쁜 사람들이 엄밀히 말해서는 나쁘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저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의 문제들이 가진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복잡한 인간세상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가장 간단한 단위인 개인, 각자가 제대로 된 생각을 갖고 지켜나가야 할 일이 많음을 돌려서 말한 것과 같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 보면 선승의 문답 같다. 이 책은 힘든 세상사를 잊게 해 줄 듯 한 아름다운 영화 속에서 불쑥 나타나는 불편한 정지화면 같은 책이다. 책 표지에 앨버트로스에게 바짝 다가간 크리스 조던의 모습을 실었다. 그러더니 첫 챕터에서 충격을 주고 중간중간 아름다운 사진이 있다가 다시 충격을 주는 그런 영상들이 실려 있다. 책 전체 분량은 길지 않다. 퇴근길 전철 속에서 40여분 만에 읽어냈다.


책을 읽었다면 영화 '앨버트로스'를 같이 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

https://www.albatrossthefilm.com/watch-albatross 여기로 가면 된다. 상영시간이 1시간 36분이나 된다. 영상을 보면 촬영을 한 크리스 조던이 불교 등 동양철학을 알고 있는 듯하다. 생로병사. 이 중에서 노(老)에 관련된 영상은 없어 보인다. 자연스러운 노(老)가 없기에 자연을 망치고 있는 인간의 무감각 혹은 폭력을 고발하는 영상이 됐다. 책과 마찬가지로 힐링이 되는 순간 충격을 주는 영상을 던진다.

짧은 영상은 https://www.albatrossthefilm.com/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볼 수 있다. 3분 48초 분량이다. 가능하면 1시간 36분짜리 영상을 보는 게 낫다. 이 글에 첨부된 사진들은 이 동영상에서 갈무리한 것들이다.

크리스 조던의 홈페이지 ( http://www.chrisjordan.com )도 방문 추천한다. 여러 작품이 있다. 책에 사진이 실렸지만 제대로 보여주질 못한다. '공룡의 귀환'이란 작품은 24만 개에 달하는 비닐로 만들었다. 이 숫자는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사용되는 비닐의 양이라고 한다. 홈페이지에 전시된 사진을 클릭하면 줌인, 줌 아웃되면서 작은 쓰레기 조각이 어떤 형상이나 혹은 우리가 아는 유명한 그림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빈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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