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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Apr 25. 2019

한자리 모인 어벤저스가 끝낸 게임

악당인 타노스와 함께 다른 영화들도 죽었다.

3시간 넘게 극장에 앉아 있었다. (내 기준으로) 영화는 솔직이 기대에 못 미쳤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이야기다. 사실 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보다 TV를 통해 본 것이 더 많다. (이제는 넷플릭스 덕에 더욱 쉽게 접근이 된다.) 그리고 볼 때마다 오락영화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영화 말미 크레디트 화면 중간에 보여주는 쿠키 영상이 살짝 재미와 함께 중독성을 갖게 했다. 다음 편에 대한 은근한 미끼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다. 그래서 마블 영화는 관람하면서 심각한 사고가 필요치 않은, 뇌를 놀게 하는 영화로 내게 자리매김했다. 한마디로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다. 그런데  이번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제대로  놀지 못했다.

개봉일 전부터 다양한 홍보과정을 통해 영화 흐름을 놓칠 수 있으니 중간에 화장실 가지 말라는 경고(?) 아닌 경고를 듣고 끝까지 봤다.(극장 가기 전 물도 덜 마셨고 콜라를 샀지만 아주 조금씩 마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었다.) 살짝 긴장감을 가지고 본 셈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마블 영화 시리즈를 보지 않은 관객을 위한 (지난 과거 등) 설명이 길게 이어진 느낌이다. 물론 이런 친절함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워낙 한꺼번에 많은 영웅들이 등장하는 어벤저스 영화인지라 토막 난 사연을 툭툭 던져 놓은 인상이다. 출연하는 개별 영웅들의 감정선을 묘사하기에는 너무 짧고 전체를 보기에는 약간 지루한 듯하다.


결국 어벤저스 시리즈를 만들면서 늙어간, 혹은 빠질 이유가 생긴 배우들을 정리하기 위한 영화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이언 맨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다. 그는 2008년 아이언 맨을 통해 성공적으로 마블 스튜디오 영화에 합류했다. 1965년 4월 4일 생이니 우리 나이로 55세이다. 나름 몸 관리를 했을 테니 몇 년은 더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아마도 '프리퀄' 영화를 제작한다면 큰 비중 없이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암튼 일단 영화에서 죽는 것으로 정리된다. 블랙 위도우도 (과거로 돌아가 인피니티 스톤을 얻기 위해 스스로) 죽는다. 캡틴 아메리카는 늙은 노인 모습으로 나타나 (절대 늙지 않는 것이 아닌) 수명을 다해 죽는다는 것을 암시한다.(물론 이런 결말은 시공간을 왜곡한 것인데 혹시 다음 편 제작을 위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언 맨이 죽기 전 캡틴 아메리카와 화해한다. 블랙 위도우는 스톤 얻는 과정에서 죽고, 캡틴 아메리카는 옛사랑을 찾고 늙는다.

그리고 3시간 넘게 상영한 영화가 끝난 뒤 혹시나 싶어 기다렸지만 쿠키 영상은 없었다. 혹시 다음 편 영화 제작에 대한 고민이 있거나 아직 세부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것이 이유일까? 절대 악인 타노스를 죽였으니 또 다른 악을 만들어야 할 텐데 어떻게 만들지가 고민일 것 같다. 조무래기 악이 커져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여성 히어로인 '캡틴 마블'이 활동하는 우주의 저편 공간에서 새로운 악한이 등장해 지구로 올 것 같다. 그래야 어벤저스 영웅들의 일감이 떨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인피니티 스톤을 없앤 뒤 힘도 사라진 타노스는 영화 초반 토르에게 목 잘려 죽고 종반에 과거에서 현재로 와 먼지되어 죽는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등장한 이후 여러 번 지적된 사항이지만 극장가 쏠림을 현장에서 본 것이 수확 아닌 수확이다. 평일 오후임에도 좌석이 절반 이상 찼다. 오후 수업을 끝낸 고교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자리를 채웠고 일반인도 많았다. 내가 사는 고양시에는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이렇게 세 영화관이 있다. 이 모든 영화관의 상영관 대부분이 어벤저스 엔드게임으로 채워졌다. 다른 영화들은 오전 중 혹은 사이사이 살짝 끼워서 상영을 했다. 이건 좀 문제가 있다.


극장들은 모처럼 특수에 반색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웃을 수도 없다. 스크린 독점 역풍을 우려해서다. 극장별 상영 현황을 보면 그런 고민이 어느 정도 읽힌다.

전날 CGV의 '어벤저스 4' 상영 점유율은 79.1%였다. 반면 롯데시네마는 84.8%, 메가박스는 85.9%, 씨네 Q는 88.1%에 달했다. 1등 극장 사업자인 CGV의 경우 일부러 80%를 넘지 않게 점유율을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극장 관계자는 "'어벤저스 4'는 걸기만 하면 관객이 들어오지만, 손해를 감수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개봉 당일인 이날 오전 8시 기준 97.0%의 예매율을 기록 중이다. 예매 관객 수만 224만 562명을 찍었다.'는 기사는 대한민국 사회의 쏠림 현상이 얼마나 큰지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책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관객들이 공통된 사고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본 뒤에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긴 하겠지만, 이렇게 외형적인 쏠림현상은 다른 것을 보기 힘들기 하기 때문에 문제이다.

주중인 금요일 하루 전에 본 메가박스의 상영 시간표. 영화 '바이스'는 메가박스에서 상영하지 않는다. 좌석 예약 상황도 보인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주말근무를 해서 대휴인 날 아내와 영화관 나들이를 하면서 본 영화다. 내가 이번에 보고 싶었던 영화는 '바이스'라는 영화였다. 영화 예고편을 보았을 때 어쩌면 저렇게 미국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와 흡사한 배우가 있나 싶었다. 그 배우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년)'의 주인공인 크리스천 베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그의 연기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100kg 이상 찌우고 걸음걸이, 말투, 호흡 등을 실제 인물과 흡사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베일의 이토록 지독한 연기는 그의 영화 철학에서 나온다. 베일에게 영화란 그가 숭배하는 이상향이자 창작품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 속에서 나는 완벽한 피조물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바이스'는 고양시에 있는 세 군데 영화관 중 CGV에서만 그것도 1회만 상영하고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메가박스에서는 상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모든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고 다른 몇 가지 영화를 나눠서 살짝 끼워 놓은 모양새였다. 쏠림이 강한 한국 사회, 영화관이라고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진 않았다. 결국 수익 쫓는 구조에 매몰된 한국 사회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 빈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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