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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Jun 26. 2019

실향민과 탈북자가 만든 평양냉면

1만 2000원 하는 을지면옥과 설눈의 평양냉면 차이는?

맛집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 맛은 당연할 것이고 먹는 공간이 주는 어떤 위안 혹은 편안함, 그리고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직원의 서비스 차이가 맛집을 만들고 환호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런 맛집 중 하나로 냉면 음식점이 있다. 마니아에겐 계절 차이가 없지만 여름이면 인기 있는 음식이 냉면일 것이다. 냉면은 함흥과 평양냉면으로 나뉘고 물냉 비냉 회냉 등으로 취향이 구별된다. 


평양냉면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함흥냉면에 비해 심심한 평양냉면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고, 이를 은근한 기준선으로 내세우며 자신이 이 선을 넘었음을 자부심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을지면옥(왼쪽)과 설눈 물냉면. 설눈 물냉면 육수가 좀 더 어둡고, 고명으로 닭고기와 오이, 잣, 계란지단이 더 들어갔다. 대신 고춧가루와 파는 없다.  면 색깔도 검은 편이다.

이런 자부심(?)을 떠나 다른 음식과 달리 우리에게 냉면은 6.25 남침전쟁 이후로 생긴 실향민 음식이라는 점이 또 다른 차이점을 만든다. 실향민이 만들고 피난 와 어렵게 정착한 실향민이 사 먹는다는 점이 냉면에 내면화된 이야기 일 것이다. 휴전된 지 60여 년이 지났으니 냉면을 만든 실향 1세대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그 후손이 맛집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명성에 기대거나 그 맛에 홀린(?) 3세대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사실상 실향이라는 다소 슬픈 혹은 암울했던 기억이 추억으로 변한 이야기를 모르거나 공감하기 힘든 손님이다.

을지면옥(왼쪽)과 설눈 기본반찬. 김치와 얇게 초절임된 무, 편육용 새우젖과 생마늘. 설눈은 초절임된 무 대신에 짠지를 얇게 썰었다. 국물없는 새우젖과 고추채가 나왔다.

서울 을지로 3가에 가면 '을지면옥'이라는 평양냉면을 파는 '노포(老鋪)'가 있다. 얼마 전 을지로 지구 재개발 과정에서 헐린다는 소식에 새롭게 뉴스가 된 곳이다. 이곳 주인은 동국대학교 후문 근처에 있는 필동면옥 주인과 자매이다.

[평양냉면 5대 전설, 을지면옥 철거된다]

["더 오래된 냉면집은 부수고, 을지면옥은 보존?"]

[`의정부파` 평양냉면의 원조 김경필 할머니] 

점심시간 가보니 여전히 사람으로 붐볐다. 그런데 물냉면 가격이 1만 2000원으로 올랐다. 돼지고기 편육 한 접시를 시켜 소주를 반주로 먹었다. 맛은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이 은근한 저항으로 다가왔다. 함께 같이 간 후배는 이날 이곳이 처음이라 했다. 냉면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맛에 대한 평가보다는 가격에 대한 평가가 먼저 나왔다. 1만 2000원 가격이면 최소한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않느냐는 평이었다. 냉면보다 접시에 담긴 편육 모양을 보고 박하게 평가했다. 작은 접시에 담긴 모양이 성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최소한 가지런히 썰어 담는 정성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을지면옥(왼쪽)과 설눈의 돼지고기 편육. 설눈은 바닥에 파를 썰어 놓은 뒤 그 위에 편육을 담았다.

사실 1만 2000원이란 가격은 서울 시내 어지간한 유명 냉면집이라면 이 정도 받고 있다. 물론 8500원 받는 냉면전문점도 있다. 다만 장소가 남대문 시장이라는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이 가격도 오른 가격이다.) 그런데 가격보다 이제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있다. 한마디로 새롭게 맛집에 도전하는 냉면집이 생겼다.


얼마 전에 서초동에 '설눈'이라는 냉면집이 생겼다. 이 집은 북에서 요리를 했던 탈북자 모녀가 운영하는 집이다. 어머니가 평양 고려호텔 지하식당에서 1977년부터 조리사로 평양냉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탈북자 출신인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개점 소식을 알렸다.

[우아한 미감의 정치적 앙상블/'설눈'의 '고려 냉면']


세 번 이곳을 찾아 물냉면, 만두, 빈대떡, 돼지고기 편육을 먹었다. 물냉면 맛이 을지면옥과 차이가 있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아직 안정이 안 된 듯 갈 때마다 냉면 국물 맛이 약간씩 달랐다. 기본적으로 을지 냉면에 비해 고기 국물 맛이 강하게 올라왔다. 주인은 소, 돼지, 닭고기로 국물 재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밍밍하게 느껴질 정도로 담담한 맛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느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맛이다. 옆에서 먹던 한 가족에게 물으니 을지 냉면 맛이 더 낫다고 말했다. 독특한 점은 새콤한 무김치 대신에 짠지를 얇게 썰어 내놓았다. 이 반찬이 오히려 깔끔하게 내게 다가왔다.


맛은 개인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는 부분이니 설눈이든 을지면옥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레 맛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외 부분 차이는 공통된 평가기준을 갖기 쉬운 부분이다. 식당의 인테리어, 음식을 담은 식기 종류와 모양, 플레이팅, 직원의 서비스 기술 같은 부분이다. 설눈도 물냉면 가격이 1만 2000원이다. 그런데 식기는 놋그릇이었고 새로 개업한 집답게 인테리어도 깔끔했다.(미슐랭 가이드는 맛뿐만 아니라 음식점의 분위기, 서비스 등도 평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설눈의 주인은 6.25 남침전쟁으로 인한 실향민이라는 이야기를 탈북자라는 적극적 실향민 이야기로 대체했다. 게다가 평양에서 조리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맛이 다르긴 해도 나름 맛집이 될 기준은 갖췄다.


나는 늦기는 해도 우리나라와 북한이 통일될 것으로 본다. (물론 독일처럼 민주국가인 우리 주도로 통일이 된다는 전제이다.) 통일된 후 북한 주민이 음식 장사에 나선다면 어떤 반응이 올지, 그리고 기존 유명 음식점들과는 어떤 경쟁을 할지 궁금하다. 특히 실향민들이 즐겨하던 북한 음식점들이... [빈모]

을지면옥 메뉴판. 편육 가격이 2만 4000원, 수육이 2만 8000원이다.
설눈 메뉴판. 편육 사진이 실제와 모양이 다르다. 편육은 2만 원, 수육은 2만 5000원이다. 녹두전도 2장만 나왔고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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