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사진이 신문에 실린 이유. 사진의 선한 영향이 얼마나 지속될까?
인간이 가진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같은 오감(五感) 중에 인간의 결정에 가장 확신을 주는 감각이 무엇일까? 이 말은 결정을 내리기 전 인간의 대뇌 속에서 믿음이라는 확고한 인상이 필요한데,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게 무엇인지 묻는 말과 같다. 아마도 시각이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고사성어에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러시아어에도 정확히 같은 뜻의 속담이 존재한다. 원문은 "лучше один раз увидеть, чем сто раз услышать". 한 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다.:나무 위키)
신문에 사진이 쓰이고, 방송뉴스에 현장 화면이 항상 같이 있는 이유다. 기사와 함께 관련 사진이 있으면 현장감을 주고 사실임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신문 편집상 시각적 편안함 혹은 주목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2019년 6월 27일 자 국내 조간신문에 눈길을 끈 외신 사진이 실렸다.
엘살바도르 국적의 오스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그의 23개월 된 딸 발레리아가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려고 강을 건너다 익사한 사진이다. 셔츠 안에 넣은 어린 딸이 아빠의 목에 손을 걸치고 있고 강변에 엎드린 모습으로 발견됐다. 빨간 바지를 입은 어린 딸의 엉덩이는 물을 머금은 기저귀로 인해 부풀어 있었다.
국내 신문은 신문윤리강령 취지와 보도윤리에 따라 대개 시신 사진을 게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많은 신문들이 사진을 실었다. 흑백으로 처리하거나 모자이크 혹은 블러(Blur) 처리를 한 뒤 게재한 신문도 있었지만 그대로 실은 신문도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도 시신 전체, 혹은 상체만 하기도 했다. 1면에 게재한 신문도 있었고 2면, 외신면 등에 실었다.
국민일보는 사진설명 마지막에 '국민일보는 원칙적으로 시신 사진을 지면에 게재하지 않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비극적인 실상을 알리기 위해 게재를 결정했다.'는 문장을 붙였다. 국민일보는 11면에 컬러사진으로 게재했지만 시신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사진이 주는 충격을 상당히 감소시켰다. 매일신문도 사진설명 마지막에 '신문윤리강령 취지와 보도 윤리에 따라 시신 사진을 게재하지 않으나 이번 사건의 경우 비극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사진 게재를 결정했다.'라고 밝히면서 흑백처리를 했다. 이에 반해 석간신문인 문화일보는 2019년 6월 26일 자 2면에 컬러 사진으로 보정 처리 없이 실었다. 대신 사진설명 밑에 두드러지게 편집한 사진 게재 이유를 붙였다. 아래는 문화일보가 밝힌 시신 사진 게재 이유다.
'문화일보는 신문윤리강령 취지와 보도윤리에 따라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시신의 사진을 게재하지 않아 왔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비극적인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부득이하게 사진 게재를 결정했다.'
여러 신문에 실린 사진을 비교하면 모자이크, 블러 처리 정도 혹은 흑백 변환에 따라 사진이 주는 충격 혹은 느낌이 현격하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흑백으로 변환한 사진은 부풀어 오른 아기 바지의 붉은색이 주는 강렬한 시각적 이끌림이 사라졌다. 또한 모자이크, 블러 처리 강도를 높게 했는지 혹은 많은 부분에 했는지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생겼다. 강원도민일보와 영남일보 사진은 원래 모습이 거의 사라져 무슨 사진인지 알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이번 사건의 경우 컬러 상태로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독자에게 강한 충격을 준다.
뉴욕타임스도 1면에 컬러로 이 사진을 게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진 게재 여부를 두고 12명의 관련 편집자들이 2시간 가까이 토론을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출신 배경과 관점이 다른 사람이었다.
Why The Times Published a Photo of Drowned Migrants
톰 졸리 뉴욕타임스 부주필은 "이 사진은 그리스 해안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3살 된 시리아 소년 아일런 쿠르디의 사진을 생각나게 했고 전 세계에서 발생한 비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고 희생자들에 대해 인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비극적 사진은 문제가 있는 곳에 관심을 갖게 하고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영상이 넘치는 현대사회에서 그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2015년 9월 보도된 3살 된 아일런 쿠르디 시신 사진도 SNS 등을 통해 전송되고 추모 이미지로 변형되어 한동안 유통되었다. 하지만 지금 유럽 난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한때 지나가는 바람같이 사진이, 영상이 소비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드는 지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돌아보고 해결해야 할 비극에 대한 무감각을 깨우쳐주는 죽비 역할을 사진이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