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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Aug 19. 2019

'체르노빌' '후쿠시마' 최악 원전사고 쌍둥이

거짓은 악마를 부른다. 인간 욕심이 만든 지옥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후 발생한 화재를 진화하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을 드라마는 실감 나게 묘사했다.

구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1986년 4월 26일 폭발했다. 이 사고를 꼼꼼하게 그려낸 드라마가 나왔다. 미국 HBO에서 5회 시리즈로 제작한 '체르노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왓챠 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체르노빌'은 당시 상황을 꼼꼼하게 복원한 다큐멘터리이면서도 그 안에 존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엮은 극적인 드라마이다.

드라마 속 체르노빌 원전사고 현장 복구 모습도 실제와 흡사하게 촬영했다. 작업자들은 '바이오 로봇'으로 불렸다.



체르노빌 드라마 줄거리 (나무 위키)

체르노빌 드라마와 실제 현장과의 비교 영상

체르노빌 원전사고 현장 사진 모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나무 위키)



드라마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실체를 복원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무지했고 사악한 모습인지 차분하게 보여줄 뿐이다. 담담하게 장면이 연결되지만 그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영상은 피폭된 희생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신 피부가 좀비처럼 무너져 버리는 희생자 모습은 말로 전해 듣는 것과 다른 충격을 준다.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선에 피폭된 화상 환자 모습이다. 수 일 내로 악화되어 결국 죽음에 이른다.

미하엘 고르바초프 구 소련 공산당 중앙위 서기장이 이끄는 공산 정권의 무능함이 드러난다. 그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이 이어지고 KGB 감시 체계가 등장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된 원자로는 'RBMK(Реактор Большой Мощности Канальный ;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였다. 안전성이 근본적으로 낮았지만 구 소련 당국은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권력자가 아닌 개개인들은(어찌 보면 권력자마저도) 자신이 속한 상황에 맞춰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끔찍한 결과물이 이어진다.


내가 드라마에서 본 충격적인 장면들이다. 한 밤 중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모습을 마을 사람들이 다리 위에 모여 불꽃놀이 보듯 구경한다. 아이들은 떨어지는 방사능 먼지 속에서도 즐겁게 뛰어논다.  결국 이들은 방사능 오염 피해를 본다.(이 다리가 죽음의 다리로 불린다고 드라마 5회 끝부분 에필로그 장면에 나온다.)

그리고 사고 초기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은 소방관과 체르노빌 원전 직원들의 장례식 모습이다. 피해자들은 피부가 괴사 하면서 수의나 신발을 제대로 입히지도 못한다.(인간의 존엄은 없다. 방사성 폐기물에 불과했다.)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납으로 만든 관에 안치된다. 그리고 꼼꼼하게 용접된다. 깊게 판 땅 속에 놓인 관 위로 콘크리트가 부어진다. 사랑하는 남편, 친지들을 보내는 과정이 건조하게 묘사된다. 이 두 장면은 즉물적으로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방사능 위험을 모르는 마을 주민에게는 사고 현장이 구경거리 일뿐이다. 피해자가 안치된 납으로 된 관에 콘크리트를 붓고 있다.

'체르노빌' 마지막 5회 끝부분에 삽입된 실제 영상


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지금도 복구가 계속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겹쳐 보였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25주년을 한 달여 앞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 7등급으로 올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도후쿠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가 근본 원인이지만 사실상 또 다른 인재였다. 기본적으로 침수 위험이 있는 낮은 위치에 비상발전기를 설치했고 잘못된 판단, 그리고 미숙한 대응으로 사고를 키웠다. 그리고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 나타난 거짓 보고와 책임회피 모습이 반복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2017년 3월 7일 경주시 보문단지 내 경주화백센터(HICO)에서 개최한 ‘2017 원전 안전성 증진 심포지엄’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세계 원자력계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각종 안전장치를 차단한 상태로 무리한 시험 강행으로 발생한 중대사고로 원자력 안전문화의 출발지였다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설계기준 초과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로 극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의 확보가 필요한 점은 결국 규제의 완벽한 실패였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3월 11일 지진과 해일의 습격을 받고 4시간여 만에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냉각수 공급이 되지 않아 반응로의 물이 증발해 줄어들었고 연료봉이 녹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쿄전력 사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이 때문에 초동 대처할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또 12일에는 1호기가 첫 수소 폭발을 일으키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 원전에 바닷물을 주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도쿄전력은 발전소 폐기가 우려돼 이를 무시했다. 공공성보다 이윤을 중시한 민간기업의 한계였다.

이후 3, 4호기 순으로 수소 폭발이 이어지면서 그로 인해 휘발성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 세슘 등이 환경에 방출됐다. 이에 보다 못한 미국이 “일본 정부의 대처가 미온적”이라며 빠른 해결을 촉구하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 CH-47 헬기와 고압 소방차, 경찰의 특수 살수차 등을 주수 작업에 투입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관료제의 비효율’과 ‘동경전력과 규제기관의 기형적 관계’ 등이 도마에 오르지만 대체로 전문가들의 의견은 ‘자연재해’가 아닌 분명히 ‘인재’라는 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규제의 완벽한 실패였다” (원자력 신문 2017년 3월 13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나무 위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 전 총리는 후일 언론 인터뷰(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 2018년 6월 4일 시사인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후쿠시마 제1 원전 현장 상황이 내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세 가지 패턴이 있었다. 첫째는 현장 자체의 판단이 틀린 경우다. 예를 들어 지금은 멜트다운(원자로 노심 용융)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지만 당시에는 사고 당일 밤 10시까지는 아직 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위를 재는 측정기가 오작동했다. 두 번째는, 현장에서는 정확히 알고 있는 정보가 도쿄전력 본사를 통해 내게 오면서 손실되거나 잘못 전달된 경우다. 세 번째는, 도쿄전력 본사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려고 하는 경향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경우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고에 대해 도쿄전력 회장이나 사장 등이 조사를 받았고, 정치가들도 조사를 받았다. 정치가들은 조사받은 내용을 다 공개했다. 하지만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본인이 동의하지 않아 지금도 그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태양의 덮개>(사토 후토시 감독)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총리 관저와 도쿄전력이 어떻게 단절되어 있었고 얼마나 속수무책이었는지, 원전 근로자와 피난민, 신문기자, 도쿄에서 아이 키우는 주부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했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 영화다. 영화를 제작한 다치바나 다미요시 프로듀서는 같은 2018년 6월 4일 시사인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고가 있던 해인 2011년 5월 21일 <요미우리 신문>의 1면 톱기사를 예로 들 수 있다. 도쿄전력이 원자로를 냉각시키려 해수를 넣으려 했는데, 간 전 총리가 넣지 말라고 해서 해수 주입이 55분간 멈췄다는 보도였다. 지금도 이걸 믿는 사람이 많을 텐데, 사실 간 전 총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실제로 해수 주입이 멈춘 적도 없다. 그런데도 해수 주입을 멈춰 사고를 확대시켰고 그 지시를 한 사람은 간 전 총리라고 신문에 나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기사는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의원이 메일 매거진(발신자가 정기적으로 정보를 메일로 보내고, 읽고 싶은 사람이 구독하는 형태)으로 보낸 것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이 외에도 관저가 정보를 숨겼다거나 ‘멜트다운’이란 말을 관저가 쓰지 말라고 했다는 등 사실과 다른 보도가 있었다(관저는 정보 부족에 시달렸고 ‘멜트다운’을 쓰지 말라는 지시는 도쿄전력 사장이 내렸다)."


이 발언에 뒤이어 간 나오토 전 총리의 발언이 이어졌다.
"당시 도쿄전력 본사가 해수 주입을 멈추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현장에서는 부하에게 멈추라는 지시를 하면서도 실제로는 멈추지 말라고 했다. 그런 도쿄전력 내부의 경위가 있었다. 어쨌든 <요미우리 신문>과 <산케이 신문>은 사고 2개월 뒤인데도 해수 주입이 실제로 멈췄는지 사실관계도 조사하지 않고 일부 사람이 말한 내용을 1면 톱에 썼다."


이 인터뷰 기사를 보면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의원이 만든 일종의 가짜 뉴스를 일본 내 극우신문이 확산시켰다는 말이 된다. 간 나오토 총리는 인터뷰에서 일본 사회에 자리 잡은 (일종의 원전 마피아인) ‘원자력촌 (原子力ムラ)’ 세력이 의심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결국 아베 일본 총리가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완전 복구를 선언하려는 의도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아베 총리는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이 안전하다며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 사용하려 한다.)


2019년 8월 현재 일본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복구과정에서 발생한 방사능 폐수를 바다에 방류하려고 한다. 사실상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찬반 논쟁이 계속되는 현실은 이런 치명적인 사고 후유증 때문일 것이다.

일본 방사능 물 100만 t 바다에 버린다···"한국 특히 위험" (중앙일보)


과학과 산업발전 과정에서 인간은 지구환경에 항상 해를 끼쳤다. 증기기관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영국 런던에 스모그를 증가시켜 호흡기 질환자 사망이 늘었다. 결국 이를 해결했다고 하지만 얼마 전 독일의 폭스바겐 자동차 디젤 게이트 사건은 클린 디젤엔진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 혹은 위험성을 강조하는 양측의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전기차 확대, 모바일 기기 증가 등으로 원전이 생산하는 전기에 대한 필요가 커지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모든 여건을 고려한다 해도 '체르노빌'에서 나온 레가소프의 마지막 대사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갈 방향과 자세는 정해진 듯 싶다.  [빈모]

"what is the cost of lies?"(거짓말의 대가는 무엇인가?)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소방관이 입었던 방화복이 병원 지하에 방치되어 있다.  지금도 유해 방사선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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