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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Aug 22. 2019

잃어버린 장미 정원

폐허 속 희망, 후쿠시마 후바타 장미원 이야기

2011년 3월 11일, 거대한 지진이 일본 혼슈의 도호쿠 지역을 강타했다. 엄청난 지진의 여파로 지구 자전축은 17cm가량 움직였으며 일본 영토가 태평양 쪽으로 4m나 이동했다.
이 지진으로 12층 건물 높이. 10km 정도 내륙으로 밀려드는 거대한 쓰나미들이 생겨났다. 그 격렬한 바닷물은 무차별적으로 휩쓸어버리면서 진로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지진에 폭우까지 겹쳐 몇 시간 만에 18,490명이 목숨을 잃었고 40만 가구가 파괴되었다.
이 거대한 파도들이 후쿠시마 해안선에 위치한 핵발전소를 덮쳤을 때 재앙은 연이어 찾아왔다. 이로 인한 폭발로 거대한 양의 방사선이 노출되었다. 일본 정부는 즉각적인 대피명령을 발동했고, 반경 20km 안에 있던 몇십만의 주민들은 간단한 소지품만을 가지고 급히 대피해야 했다. 그 지역은 지금까지 대부분 접근금지구역으로 선포되어 있다. 이 지역 방사선 노출 수준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높게 유지되어 172,000명의 피난민들이 그들의 집을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사실상 어떤 점에서 그들은 조국에서 난민 신세가 된 셈이다.

이 재해로 일본 도호쿠 지방의 많은 해안은 황폐해졌다. 이 책이 쓰인 바로 이 시점에도 파괴된 지역들의 재건설은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원자력발전소 재난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전상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주택, 일자리, 그리고 공공시설의 부족으로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형편이다. 아니 돌아올 의지도 없지만 설사 돌아올 수 있다 해도 이 지역의 농수산업은 회복되는 데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이다.
작은 구 단위인 후타바는 후쿠시마 오염 지역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해안으로부터 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후타바 장미원은 쓰나미의 손아귀에 훼손되지는 않았지만 방사선의 무자비한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거의 50년 동안 사랑스럽게 가꾸어진 그 정원은 그 비극적인 3월의 어느 날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 후쿠시마의 장미원 이야기는 도호쿠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폭발의 비극적 사건들 속에서 싹튼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이다. 그것은 인간의 희망과 회복력에 대한 일화이다.


글은 책의 머리말이다. 책 내용을 요약한 것과 다름없다. 이 책은 장미정원 이야기다. 책 전반부에는 아름다운 장미꽃 사진이 가득하다. 책 뒤편은 장미 향기 가득했던 후타바 장미원이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방사능을 뒤집어쓰고 폐쇄된 뒤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준다.

잃어버린 장미정원/궁리/마야 무어 지음/김욱균 옮김/2019.05.15/2만 원

후타바(ふたば·双葉:떡잎) 장미원은 일본의 유서 깊은 소마(相馬) 지역 작은 언덕에 자리했다. 작은 구 단위인 후타바는 해안에서 8km 정도 떨어졌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쓰나미 피해는 입지 않았다. 대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지역 한복판이기에 장미원이 폐쇄되는 큰 피해를 보게 됐다.

후타바 장미원은 오카다 가츠히데가 장미 750종 이상을 수집해 가꾼 곳이다. 매년 5만 명 이상이 장미원을 찾았다. 이른 아침 이슬 맺힌 장미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한 사진애호가들도 많았다.

책은 이들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을 모으고 폐허가 된 장미원 모습을 비교해 방사능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장미에게 위안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복구 염원을 담았다.


6월 어느 날, 17세 가츠(오카다 가츠히데)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을 지나다 운치 있는 일본 전통 가옥을 보게 된다. 그 집 높다란 나무 울타리 위로 풍성하게 늘어져 있는 진홍색 붉은 꽃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다가서서 그 꽃을 잡아 본다. 장미였다. 장미 향기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그는 장미의 마력에 사로잡혔다.
복숭아 농사와 양계를 하는 아버지를 도우며 틈 날 때마다 가츠는 장미를 키우기 시작했다. 작은 시골 도시 후타바에는 장미에 대해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고, 관련 책을 구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그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장미 재배 노하우를 배웠다. 이때가 1961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지 16년밖에 되지 않았다. 국가가 한창 현대화 길목에 있던 중이라 사람들에게는 꽃을 가꾸는 것보다 식량 생산이 우선이었다. 더욱이 장미는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장미는 아주 귀해 부유하거나 서구화된 사람들의 소유물로만 찾아볼 수 있었다. 어느 날 가츠는 도쿄에서 발행된 『장미의 일 년 열두 달」이라는 책의 신문 광고를 보았다. 이 책을 손에 넣은 날을 가츠는 결코 잊지 않고 있다.

"나는 황홀했어요." 그는 말했다. "내가 봉투를 뜯었을 때 대도시의 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그리고 책을 펼쳤을 때, 오! 그 사진의 빚깔들! 얼마나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던지! 세상에 그렇게 많은 장미 품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 책이 그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 그 후 5년 동안 가츠는 그의 장미정원에 새로운 품종의 장미들을 늘려갔다. 가츠는 장미를 아치, 트렐리스 위, 기둥 그리고 화단에서 키웠다. 여러 종류의 다른 토양에서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장미 재배를 실험했다. 그는 각 품종의 독특한 성격과 취약점을 익히게 되었다. 장미 개화 시즌은 이 젊은 독학 원예사에게 엄청난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었다. 그는 장미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내가 장미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장미는 나에게 더 많은 대답을 보내왔어요. 그것은 열정적인 연애와도 같았어요.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가 없어요."
1966년, 가츠는 장미 70종을 재배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가츠의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들아, 이제 우리가 제대로 된 장미원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가츠가 스물네 살이 막 되었을 때인 1968년 4월 7일 후타바 장미원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입장료를 받는 개인 소유 장미정원의 출현은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조용한 마을 후타바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아직 어려운 시절 젊은 사업가가 장미정원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쑤군거렸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뼈 빠지게 애쓰는 사람들에게 정원은 솔직히 그냥 정신 나간 짓으로 여겨졌다.
사실 마을에서 바로 몇 킬로 떨어진 곳에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이 진행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3년밖에 남지 않은 발전소 완공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역에 많은 고용기회를 제공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이야말로 바로 실질적인 직장이 될 거라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장미원이 실현 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츠는 말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장미원을 사업적인 측면으로는 정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사랑하는 것에 전념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회의적으로 말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츠 자신도 놀랄 정도로 그의 장미를 보기 위해서 일본 각지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아마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고달픔에 지친 사람들에게 장미가 한숨 돌릴 여유를 준 것이 아닐까요?" 그는 곰곰이 생각하였다.
어쨌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장미를 보기 위해서 방문하였다. 후타바 장미원은 순조롭게 출발하였다. 가츠는 새벽 5시 30분부터 개장했다. 아침 일찍 개장한 덕에 이슬 맺힌 장미를 찍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렸다.

가츠는 꾸준히 장미정원을 발전시켜 현대 장미의 전신인 홑꽃잎인 야생 장미, 주름이 많은 꽃 모양의 고전 장미들을 따로 모은 '고전 장미의 길'을 1996년 만들었고 '야생 장미의 길'을 2005년 완성했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 영국의 장미 육종가인 피터 빌즈에게 서툰 영어지만 편지를 써 150종의 장미 묘목을 수입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가츠는 오사카에서 5월에 열리는 세계 장미회(WFRS : World Federation of Rose Societies)에 참가하는 100여 회원이 그의 정원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따라 만반의 준비를 갖추던 중 대지진이 발생한다.

방사능으로 인해 대피하고 3개월 후 2011년 6월 11일 가츠는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보호장비와 방사선 계수기를 착용하고 불과 4시간만 머물 수 있었다. 잡초가 자라기 시작한 장미정원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상실감에 빠져 있던 가츠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은 장미 사진이었다.


장미원에서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마츠다 차코 히사코가 찾아왔다. 도쿄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쓰쿠바 임시거처에 머물고 있던 가츠는 처음에는 사진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진 발생 뒤 가츠에게 위로 편지를 보낸 여인(기네푸치 히데미)이 자신에게 사진 촬영법을 배웠다고 소개하자 점차 마음을 연다.

마츠다 차코 히사코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선생님께서 다음에 후쿠시마 집으로 가실 때 저의 제자들이 촬영했던 곳에서 제가 같은 시각으로 정원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시회에서 제가 선생님의 정원이 어떠했으며,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가츠도 마음을 연다. 그러면서 현장의 방사선이 높기에 데려갈 수는 지만 지금 보여준 사진들과 같은 각도로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겠다고 제안한다. 차코도 가츠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지 1년 여가 흐른 2012년 11월 '장미정원' 전시회가 열렸다.


지진 발생 전에 촬영된 아름다운 장미 정원과 폐허가 된 장미정원은 극열한 대비를 보여준다. 이 대비가 관람객들에게 충격을 준다. 조금씩 잊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후유증, 방사능의 위험을 즉물적으로 보여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다음 해인 2012년 11월 촬영한 장미원(오른쪽) 사진과 비교. [사진 궁리]

이 책은 후타바 장미정원을 만든 츠(오카다 가츠히데)를 중심으로 장미를 아끼던 기네푸치 히데미, 마츠다 차코 히사코 등 사진애호가 및 사진가들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책 속의 장미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후쿠시마 원전의 비극을 겪고 있는 인간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잡초 사이에서 힘겹게 핀 장미가 내뿜는 꽃향기처럼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빈모]



이 책은 글보다 멋진 장미 사진이 많다. 그냥 넘기면서 장미에 취해도 좋다. 잠시 현실을 떠난다고 느끼는 순간 폐허가 된 장미원이 나타난다. 그랬다. 아름다움은 항상 지키려고 애써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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