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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Sep 01. 2019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선택된 장면, 사진이 되지 못한 그 옆의 이야기들

사진은 진실이다. 그렇다. 하지만 절반의 진실일 수 있다. 우리가 신문지면을 통해 보는 사진은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가 선택한 장면이다. 좀 더 정확히는 데스킹과 신문 편집 과정을 거쳐면서 선택된 사진 1장이다.

여러 장면 중에서, 여러 사진 중에서 선택되었다는 한계는 보도된 내용이 진실이다 아니다는 논란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진기자는 이런 논란이 최소화되는 지점을 포착한 사진을 찍고자 노력한다.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과 마산 바다 위로 떠오른 마산상고 김주열 시신. 이 사진이 4.19민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사진이 되었다.

사진은 즉물적이다. 보는 순간 알아본다. (물론 예술사진 분야에서는 모호하게 촬영된 사진이 가치를 갖기도 한다.) 이런 즉물성 때문에 신문사진은 기사의 증거력을 담보한다. 가끔은 증거 이상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한 지점을 포착했다는 것은 다른 부분을 배제한 것과 같다. 다른 부분은 촬영 순간 카메라 앵글 바깥 부분일 수 있고, 흐르는 시간 상황 속에서 일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좋은 사진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상징이 되어야 한다. 언어로 표현하면 구호이고, 문학에서는 시와 같다. 영화 같은 동영상은 소설과 같다. 권투에서 크로스 카운터 같은 강한 한 방으로 사진이 다가온다면 영화는 수많은 잔 펀치를 휘둘러 충격을 쌓아 간다.


권투경기에서 강한 주먹 한 방을 맞은 뒤 쓰러지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뇌가 충격을 받아 잠시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맞았다는 기억만 남는다. 심한 경우는 어떻게 맞았는지 조차도 기억이 없기도 하다. (주변에서 선수를 응원한 사람은 모든 경기 상황을 알 수 있다.) 강한 사진도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충격 정도에 따라 반응은 다양하고 높낮이도 다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진 속의 영상만 기억한다. 사진을 본 사람은 사진가처럼 촬영 순간의 모든 상황을 알 수 없다.


우리는 그 사진이 촬영된 순간의 이야기를 알 필요가 있다. 왜 그런 장면이 나왔고 사진가는 왜 그 순간을 포착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보고 있는 사진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으로 축약된 그 시간대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된다. 극적인 순간을 찍은 사진가 혹은 사진기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있었다. 사진과 이웃한 동영상으로 표현된 주변 이야기들은 쉽게 다가오긴 했지만 영화처럼 쉽게 흘러갔다.


사진을 설명하기에는 오히려 표현 문법이 다른 문자의 효용성이 더 크다. 글은 이미 고정된 영상의 충격을 감쇄시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감동을 배가 시켜준다. 꼼꼼히 읽어 나가는 행위는 차분하게 영상을 반추하게 한다. 소의 되새김처럼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위를 지나면서 풀은 살이 되고 피가 된다.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 김창길 지음 / 들녘 / 2019년 8월 21일 /  2만 2000원/

저자인 김창길은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근무한다. 취재 현장에서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자기 일을 하는 스타일의 기자다. 2017년부터 경향신문에 '김창길의 사진 공책'이라는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즐겨 본 연재물이다.) 칼럼이라기에는 긴 글이고 내용은 학위논문 못지않게 사실과 근거가 충실하다. 그의 성격처럼 차분한 글이지만 우리가 놓친 사진 뒷이야기를 풀어낸 글이다. 이 글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 '사진 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이다.


책은 중국의 민주화 운동인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1989년 6월 5일 한  중국인 남성을 찍은 사진으로 시작한다. 이 남성은 베이징 장안대로에 진입하는 탱크 행렬을 맨몸으로 막고 있다.  AP 통신 기자 제프 와이드너가 촬영한 이 '탱크맨' 사진은 지난 30년간 '톈안먼 사태'를 상징해 왔다. 총 35개 사진으로 풀어낸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스포일러가 되니 직접 구독해 읽기 바란다. 사진 기자가 쓴 글답게 문체가 간결해 술술 읽힌다. 유명한 사진에 대해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원천 바구니 같은 책이다.


'탱크맨' 사진은 여러 패러디 사진을 만들었다. 심지어 만화 '심슨 패밀리'에도 등장했다.

나는 대학시절 사진동아리를 통해 사진을 배웠다. 사진을 배우면서 사진 기술 관련 책자를 보게 되었고 어느 정도 지나니 사진 주변 책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사진미학, 혹은 이런 식의 사진가 주변 이야기를 담은 책이 거의 없었다. 외국에는 이미 많은 책들이 나와 있었지만 그들의 시각이었고 그들의 이야기였다.(물론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이런 류의 책들이 우리나라 서점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반갑다. 한국 사진계에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기자들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더 내기를 바란다.(하긴 나부터 노력해야 하겠지만... ㅠㅠ) [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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