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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Oct 11. 2021

'차렷 자세'로 유명한 고릴라 사망

콩고의 마운틴 고릴라 은다카시(Ndakasi), 14살로 사망

유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한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룬다면 곧바로 유명해집니다. 연예인은 노래가 히트하든 영화가 성공하면 될 것이고, 운동선수는 큰 대회에서 우승하면 됩니다. 회사원이라면 조직의 장이 되고 정치인이라면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 최소한 지자체장이라도 되면 당연히 유명해질 것이죠.

그런데 이 '유명'이라는 말자체가 인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말이지 싶네요. 자연 상태에서 백두산 호랑이와 아프리카 세렝게티(Serengeti) 초원의 사자가 만나 누가 유명한지 동물들이 다투지는 않을 테니까요. 사실상 '유명'이란 말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서만 존재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가끔 유명한 동물이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동물들 사이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것이죠. 대개 특별한 행동이나 드물게는 특이한 표정으로 유명해집니다. 그냥 주변 사람만 본 것이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되어 널리 퍼져야 합니다. 암컷 마운틴 고릴라인 은다카시(Ndakasi)가 그런 경우입니다. 은다카시는 2019년 4월 18일 촬영한 사진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마치 사람처럼 직립 보행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이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은 것이죠.(고릴라는 인간 DNA와 약 98% 일치하고 침팬지 다음으로 인간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보는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드는 요소가 사진 곳곳에 보입니다. 볼록한 배를 내밀고 카메라를 향해 차렷 한 자세는 저 멀리 보이는 뒷짐 진 관리인과 대비가 됩니다. 관리인은 '너희들 뭐 하는 거냐?'라고 묻는 듯합니다. 촬영을 한 마치우 샤마뷔(Mathieu Shamavu)의 무표정한 얼굴과 비교되는 고릴라의 표정도 재밌습니다. 마치 '이렇게 하면 되나요?'라고 묻는 듯합니다.

암컷 마운틴 고릴라인 은다카시(왼쪽)와 은데제가 마치우 샤마뷔(Mathieu Shamavu)가 찍고 있는 카메라를 보고 있다.  

“YES, it’s real!”(네 진짜예요!)라는 사진설명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 사진은 곧바로 유명해집니다. 유명해진 은다카시는 콩고 민주공화국 비룽가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도 등장합니다. 비룽가 국립공원은 밀엽꾼에 의해 어미 잃은 새끼 고릴라를 돌보는 센크웨크웨 마운틴고릴라 센터(the Senkwekwe Mountain Gorilla Cente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미 잃은 새끼 고릴라는 이들을 돌보는 관리사들을 어미로 알고 따른다고 합니다. 최대한 자연환경에 맞춰주려 하지만 아무래도 접촉 빈도가 높은 관리인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따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직립한 모습을 이곳 센터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센크웨크웨(Senkwekwe)라는 이름은 2007년 비룽가에서 밀렵꾼들이 죽인 야생 실버백 고릴라(Wild Silverback Gorilla; 등에 은백색 털이 난 고릴라.)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입니다.


은다카시가 나온 비룽가 국립공원 홈페이지 화면. 이곳 동물보호 위한 기부금을 받는 버튼이 오른쪽 위에 보인다.

비룽가 국립공원(Virunga National Park) 홈페이지 


은다카시는 2007년 우간다와 르완다 사이에 있는 3000 평방 마일 크기의 공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공원에는 8개 고릴라 무리가 있었는데 그중 카비리지(Kabirizi)로 이름 붙인 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세계 야생 생물 기금(World Wildlife Fund)에 따르면 2007년 당시 전 세계 마운틴 고릴라 숫자는 720마리였으나 현재는 1000마리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마운틴 고릴라는 주로 국경을 접한 세 나라인 우간다, 르완다, 콩고의 국립공원 숲에서 삽니다. 기후변화, 다른 동물들을 잡기 위한 함정, 인간에 의한 서식지 잠식 등이 고릴라 생존에 위협이 됩니다. 가장 큰 위협은 총을 든 사람입니다.


2007년 4월 죽은 어미 고릴라에게 매달려 있는 은다카시를 콩고 국립공원의 관리인들이 발견했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4월이라고 했지만 2021년 10월 9일 자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사에는 2007년 7월에 고릴라 가족이 학살됐다고 나옵니다. 나중에 이 학살은 이 지역 불법 숯 거래와 관련이 있다고 밝혀집니다. 카비리지(Kabirizi) 고릴라 무리는 실버백(우두머리 수컷 고릴라) 1, 암컷 고릴라 4, 새끼 3마리가 있었는데 은다카시만 살아남았습니다. 은다카시는 발견 당시 어미젖을 빨려고 매달려 있었답니다.] 어미 고릴라는 몇 시간 전 무장 민병대가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 뒤에 총을 쏴 사살한 것이죠. 비룽가 국립공원이 있는 동부 콩고 민주 공화국(DRC)에서는 정부와 여러 무장 단체들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무장 단체들 중 일부는 국립공원에 근거지를 두고 종종 동물들을 밀렵하기도 합니다.

고릴라 무리에서 떨어진 생후 2개월 된 새끼 고릴라를 야생에 두기는 위험해, 결국 동물 구조 센터로 옮깁니다. 이곳에서 은다카시는 동물 관리인 안드레 바우마(Andre Bauma)를 만납니다. 처음 만난 날 바우마는 어린 은다카시를 밤새 껴안고 있었습니다. 

비룽가 국립공원의 경비원이 되는 것이 항상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2019년 4월 22일 자 영국 BBC 뉴스를 보면 2018년에만 비룽가 국립공원에서 반군의 매복 공격으로 5명이 사망했고 1966년 이후 130명 이상 공원 경비원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2021년 1월 11일 CNN 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경비원 200여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하며, 콩고 동부지역에서 활동하는 수십 여개 무장단체들은 2000년대 초반 내전에 참전한 민병대의 잔존세력이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고릴라 사냥이 이어지자 보호를 위해 공원 전체 보안이 강화됐습니다. 그리고 2009년 

어미 잃은 새끼 고릴라를 돌보는 센크웨크웨 마운틴 고릴라 센터(the Senkwekwe Mountain Gorilla Center)가 설립됩니다. 바우마와 은다카시는 2014년에는 '비룽가'라는 제목으로 고릴라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https://www.bbc.com/news/magazine-29924301

이랬던 은다카시는 오랜 질병으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지난 2021년 9월 26일 사망합니다. 은다카시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녀를 돌봤던 안드레 바우마의 품에서 죽었습니다. 아래 링크한 뉴욕타임스 기사 사진에서 안드레 바우마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쉬는 은다카시를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릴라의 평균수명은 35~40년인데 은다카시는 겨우 14년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왜 구체적으로 어떤 질병이 은다카시를 죽게 했는지 외신을 살펴봤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사에서는 6개월 전에 원인불명의 병(설마 코로나 19 감염??)에 걸려 계속 아팠다고 합니다.

https://www.nytimes.com/2021/10/07/world/africa/ndakasi-the-mountain-gorilla-selfie.html

안드레 바우마는 언론 인터뷰는 하지 않았지만, 공개 성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다카시와 지내면서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왜 우리가 고릴라를 보호하는데 우리의 힘을 모아 모든 것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린아이 대하듯 은다카시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쾌활한 성격은 은다카시를 만날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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