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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Sep 08. 2024

오빠가 다른 사람들의 옷을 버린 이유

Ep 5. 오빠의 학원 생활

다행히도 오빠의 고등학교 생활은 매우 평온했다. 학생들은 각자 공부에 몰두하느라 오빠를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오히려 우리 집이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였던 덕분에, 컴퓨터나 프린트가 필요할 때면 오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오빠가 고등학교를 무사히 다니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오빠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제과제빵학원에 보내어 빵을 만드는 법을 배우게 한 적이 있었다. 졸업 후에 제과제빵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오빠가 집에 갓 구운 빵을 들고 올 때마다 부모님은 환하게 웃었다. 비록 학원 선생님이 대부분을 도와주었겠지만, 오빠가 가족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빵을 직접 만들어 가져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님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엄마는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CCTV로 확인해 보니 E(오빠)가 학원 학생들 몇 명의 옷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지금 학부모들이 난리예요, 어머니."


전화를 받은 순간, 엄마의 심장은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혼란스러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얘가 아주 큰 잘못을 했구나'라는 절망감이었다. 그동안 오빠를 지켜주기 위해 쌓아왔던 모든 노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학원 선생님전화를 끝내고 직접 집으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엄마는 오빠를 데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 앉아 사과한 뒤 학생들의 옷값을 물어 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제과제빵학원에 나가지 않기로 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오빠가 버린 옷의 주인이었던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악명 높은 일진들이었다. 부모님은 어쩌면 오빠가 그들에게 당한 괴롭힘에 대한 작은 반항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니?"

"어... 어어... 어...."

"걔네가 괴롭혔어?"

"ㅇ...어어.. 아...아니... 어....어어...."


부모님의 물음에 오빠는 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떨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상황이 오자, 오빠는 동안 발현되지 않았던 '어깨를 으쓱거리며 눈을 끔뻑거리던' 틱 장애와 말을 심하게 더듬거리는 증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 것이다.


부모님은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오빠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간이 흐르고 감정을 추스른 오빠는 틱 장애를 서서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부모님은 오빠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하게 경고하며 교육을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진실은 끝내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오빠를 지키기 위한 부모님의 가슴 아픈 배려였다.


오빠의 침묵 속에서 그의 진짜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았다. 오빠는 세상이 주는 상처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그 아픔을 말없이 견뎌내고 있었다. 오빠는 남들처럼 강하게 맞서 싸우지는 못했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히고 있었다. 오빠가 한 행동이 절대 옳다고 할 순 없지만, 그의 작은 세상에서는 그이 할 수 있는 전부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빠는 그렇게 세상의 모진 풍파에 흔들리면서도, 그 안에서 뿌리내리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나의 시선에서



내 마음 한편에 여전히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일곱여덟 살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오빠의 학원 선생님이 우리 집을 방문했던 당시에, 엄마는 나보고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혼자만 방에 갇혀 있는 것이 억울했다. 결국 내 방에서 몰래 고개를 내밀고 거실을 내다보았다.

그때 내가 본 장면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 오빠와 함께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내게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의 그런 '죄를 지은 듯한 표정'은 처음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고 방에 들어가 혼자 펑펑 울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는,  오랫동안 오빠를 무진장 미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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