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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Sep 14. 2024

세상과 마주하는 시간

Ep 6. 오빠의 사회생활

오빠의 사회생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평일이면 회사에 나가는 것이고,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는 것이다. 정확히 누구와 어떤 일상생활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빠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의 회사 생활


평일이면 오빠는 회사를 나간다. 오빠는 그곳에서 15년 넘게 꾸준히 일해왔다. 오빠가 다니는 회사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으로, 주로 청소기나 안마기 같은 단순한 제품들을 조립한다. 그곳에서 오빠는 청각 장애와 지적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가끔 서로 카톡을 주고받거나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다. 오빠가 가족들 없이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간다고 말할 때마다 부모님은 걱정하면서도, 그동안 오빠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새삼 깨닫고 가슴이 뭉클해하신다.


회사 동료들 중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일반 아주머니들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오빠 귀찮아하기는커녕, 매번 점심을 함께 먹으며 따뜻하게 챙겨주었다. 엄마는 그런 고마움을 잊지 않고, '빼빼로데이'나 '화이트데이' 같은 날이면 작은 선물 수십 개를 준비해 오빠를 통해 전해주었다. 오빠를 챙겨주는 직장 동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엄마의 정성스러운 마음이었다.


가끔 회사에 일이 없을 때는 출근을 못해서 월급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요즘은 회사에 일이 많아 가끔은 잔업도 하고 주말에 특근도 하며 쉬는 날 없이 출근하고 있다. 처음에는 오빠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심했지만, 15년 동안 꾸준히 일자리를 유지하며 월급을 받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오빠도 회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의 교회 생활


주말이면 오빠는 교회를 나다. 엄마는 오빠의 상태를 알고 나서부터 매일 기도에 힘썼고, 오빠는 부모님과 함께 매주 성인 예배에 참석했다. 하지만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1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오빠에게 지루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엄마는 내가 다니던 교회에 장애인을 위한 '사랑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교회의 사랑부는 동네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지만, 봉사 인력이 부족해 모든 장애인받아줄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내가 그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에 오빠는 나를 통해 사랑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일반 학교를 다니며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야 했던 오빠에게, 우리 교회사랑부는 처음으로 마음속 나이에 맞게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오빠는 그림을 그리고, 음식을 만들고, 다양한 재미있는 활동을 하며 이해하기 쉬운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만든 것들을 집에 가져와 자랑스럽게 책상 위에 전시해 놓았다. 그 모습을 보며, 오빠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도록 교육을 받아온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미안하기도 했다.


가끔 사랑부에서 놀이공원에 데려가면, 오빠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했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워했지만,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었던 오빠는 그곳에서 다른 장애인 친구들을 도와주는 선생님 같은 역할도 맡았다. 그 과정에서 오빠는 스스로 자존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교회는 오빠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과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축복의 장소가 되어주었다.


오빠는 때론 질투도 했다. 교회에에 재능이 있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랑부 교인이 있었다. 그의 그림은 실제로 팔리기도 하고, 종종 교회에 재능 기부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그렇게 천재적인 재능, 즉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0.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빠는 그 사실이 부러웠는지 어느 날 갑자기 스케치북을 사달라고 하더니, 집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오빠에게 미술적 재능은 없었지만, 오빠의 마음속에도 잘되고 싶고, 관심받고 싶어 하며, 질투하는 마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의 그 작은 노력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오빠를 볼 때면, 가끔은 내가 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끈기가 부족해 힘들게 시작한 일도 쉽게 그만두지만, 오빠는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오빠를 볼 때면, 내가 오히려 오빠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 오빠가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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