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났을 때 오빠는 열 살이었다. 보통의 열 살이라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알 만한 나이다. 어느 날 엄마가 잠시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를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가 누워 있던 곳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엄마가 황급히 달려가 보니, 오빠가 내 중요한 부위를 뒤집어보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놀라서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오빠는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고추가 없어서 찾고 있었어.”
보통의 열 살짜리라면 생각 할 수 없는 말이지만, 마음은 아직 세 살에 머물러있던 오빠였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그 말에 엄마는 잠시 벙쪘지만, 곧이어 그 순수한 생각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어린 시절의 나를 정말 많이 아껴줬다. 하나 뿐인 동생이었기에 귀엽다고 볼에 뽀뽀도 하고, 내 손을 잡고 "짜짜짜짝꿍!"하면서 손뼉을 치게 했다. 종종 너무 세게 손뼉을 쳐서 자지러지게 울게도 만들다가 엄마한테 혼나곤 했지만 말이다. 오빠는 차를 타면 내게 무릎베개를 해주었고, 끝말잇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 잘 못하면서도 꼭 같이 해주었다.
오빠는 중학생 때 ‘크레이지 아케이드’라는 게임을 엄마 몰래 자주 했다. 어느 날 나는 오빠에게 "게임하는 걸 엄마한테 이르지 않을 테니까, 내가 학습지 덧셈 문제를 불러주면 정답을 말해줘"라고 제안했다. 오빠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게임을 하면서도 내가 물어보는 문제에 대답해 주었다.
"63 더하기 79는 뭐야?"
"284."
나는 오빠가 불러주는 답을 그대로 학습지에 옮겨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게임을 하면서 정확한 답을 말하는 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어린 시절의 나는 오빠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오빠는 계산하는 척 하면서 아무 숫자나 불러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빠가 불러주는 대로 학습지 100여 문제를 풀었지만, 나중에 엄마가 채점을 해보니 열 문제도 제대로 맞춘 게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그렇게 믿었던 오빠를 원망했다.
나에겐 소중했던 오빠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건 꽤 늦은 나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오빠는 남들과 조금 달라"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갸우뚱했다. 그러자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설명을 해주었다.
"오빠는 지적장애 2급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
그 말을 내게 할 때 엄마의 슬픈 표정은 어린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엄마를 슬프게 하는 그 '지적장애'라는 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 사실이 엄마를 슬프게 만드는 것임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그리고 엄마의 슬픔은 나를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지적장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말을 유창하게 하고, 혼자서도 자유롭게 다니는 등 모든 행동이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오빠는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다. 어릴 때 오빠는 틱장애가 있었는데, 어깨를 으쓱거리거나 한쪽 눈을 찡그리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자주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기도 했고, 말을 더듬는 것이라던가,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행동들이 오빠의 장애와 관련된 것임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빠는 나에게 언제나 가족이었고,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끔찍이도 아껴주고 사랑해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그저 일상적인 삶의 모습 중 하나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