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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Sep 21. 2024

오빠가 나의 삶에 미친 영향

Ep 8. 조금 다른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것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 장애인들이 만든 물건을 팔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이들에게 물건을 소개하며 주변에 아는 장애인이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은 내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집에서 늘 보고 지내던 오빠가 바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저희 오빠가 장애인인데요?"


그 순간, 교실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질문을 했던 판매원조차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고, 그 순간 나는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다는 것이 숨겨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했던 사실이 누군가를 놀라게 하고, 어쩌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오빠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부끄럽게 느껴졌다. 친구들이 형제자매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나는 '9살 많은 오빠'가 있다고만 대답했다. 친구들은 항상 오빠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고, '오빠가 대학생이냐'고 물었다. 나는 거짓말로 "오빠와 친하지 않아서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전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군대에 다녀왔느냐"는 물음에는 그냥 다녀왔다고만 말했고,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는 질문에는 당시 오빠가 다니던 회사가 'S사'에서 후원해주던 장애인 회사라는 사실을 숨기고, 그저 'S사의 계열사'에 다닌다고만 말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았고, 지적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다는 사실로 친구들의 동정을 사기 싫었던 나는 점점 더 죄책감에 시달렸다. 오빠가 왜 내게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왜 나는 그를 솔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몇몇 친구들에게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나의 친구들은 나를 책망하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솔직한 고백에 이해와 위로를 건넸다. 그때 느꼈다. 진정한 친구란 내가 숨기고 싶은 아픔까지도 함께 나누고, 그로 인해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 솔직한 이야기는 학창시절의 친구들에게만 해당되었다. 대학이나 사회에서는 여전히 오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오빠가 지적 장애가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고, 나는 그들의 불편한 반응이 싫었다. 그래서 그냥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것이 더 편했다. 솔직함이 불러올 어색함과 동정이 싫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방학 중 집에 있는데, 경찰이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이다. 영화관 화장실에서 누군가 지갑을 잃어버렸고, 그 시간대에 그곳을 나오는 사람이 오빠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CCTV에 오빠가 그 지갑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찍혔다며, 오빠와 대화를 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우리 오빠가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숨이 막혀왔다. 그러나 엄마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하셨다.


"저희 아들은 지적장애 2급이 있어요. CCTV를 다시 보시면, 제가 화장실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에스컬레이터도 저와 함께 내려왔습니다. 만약 제 아들이 모르는 물건을 들고 있고 그것을 보고 있었다면, 제가 당연히 그게 뭐냐고 물어봤겠죠. CCTV에 정확하게 그 지갑을 보고 있는 장면이 찍힌 것이 맞나요?"


엄마의 침착한 말에 경찰은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CCTV에 정확히 보인 것은 아니고, 아드님이 카드를 사용한 것도 아닙니다. 저희는 사건 접수하신 분이 화장실에서 잃어버렸다기에 단순히 확인 차 방문한 것입니다. 전혀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만약 엄마가 없었다면, 혹은 우리 가족이 법을 잘 모른다면, 언젠가 우리 오빠가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도 있겠구나.'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새로운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법을 공부해서 오빠를 지키고, 우리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저 남들에게 숨기고 싶었던 오빠의 존재를 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음에도 졸업 후 법을 공부했고, 결국 내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경찰이 되었다.


처음으로 제복을 입은 나의 모습을 봤을 때, 오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기뻐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오빠를 위해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오빠의 환한 미소 속에 담긴 순수한 기쁨은, 그 어떤 찬사나 성과보다 값진 것이었다.


이제는 오빠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닌,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족임을 알고 있다. 나도  오빠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오빠와 함께하는 삶 때로는 고단하고 힘들지만, 그 속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발견다. 오빠는 나에게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삶의 진정한 가치를 가르쳐준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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