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먼 해외로 떠나지 못하다가 취업 전 마지막 여행을 하기로 했다.유럽 여행을 혼자 다녔던 전적이 있던 나는, 그 때 입에서 얼마나 단내가 났던지 기억한다. 결국 K를 불러, '취업 전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함께 가자고 꼬셨다. 원래 나의 계획은 남미만 한 달 간 가는 여정이었으나 남미로 가기 전 일주일 정도를 미국에서 보내기로 했다.미국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보고 싶었던 LA에서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크리스마스 기분은 날까? 그렇게 기대와 궁금증이 섞인 마음으로 떠났다.
12월 20일에 LA에 입국해서 26일에 페루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한참을 달려 LA 공항에 도착했다. 미국의 입국 인터뷰는 언제나 겁이 난다. 혹시나 잡혀갈까 싶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듯한 눈망울로 심사해주는 분을 바라보았다. 나보고 '얼마 동안 있냐, 누구랑 왔냐' 등등을 물었다. 확실한 건, 작년에 뉴욕에서 했던 인터뷰와는 말의 속도가 확연히 다르다. 뉴욕에서는 영어를 듣자마자 너무 말의 속도가 빨라서 벙 쪘었는데 LA의 영어는 속도도, 문장도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대답을 하고 나니 그 분이 바로 도장을 찍어주며 내게 한 마디 던진다.
'너 되게 이쁘게 생겼다'
뭐야 이 오빠, 괜히 심쿵하잖아? 그 분의 미적 기준이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다. 벌써부터 LA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항에서 나와 LA에 예약해놓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갔다. 도착하자마자 본 집은, 한 마디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에어비앤비를 택한 것은 신의 한 수 였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정말 한참을 찾은 집이었다. 여자들 둘이 가는 여행이라, 안전을 위해 열심히 여자 호스트에다가 슈퍼호스트이기까지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너무 예쁜 슈퍼호스트를 봤는데 하필 주인이 남자인 것이었다. 아쉬워하넌 찰나, 한 줄기 희망의 글을 보고야 말았다.
'Gay Friendly Only'
유레카! 언니들보다도 더 안전한 게이 오빠들이었다. '모던 패밀리'라는 미드로도 충분히 익숙했던 터라, 나와 K는 게이 분들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게 그 집으로 선택했고,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예쁘게 꾸며놓은 트리와 화장실, 그리고 강아지 Hugo
너무 아늑하고, 귀여운 강아지 후고가 있고, 마당과 티비와, 과연 게이 오빠들 답게 너무 예쁘게도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들이 가득했다. 한 집에서 함께 지내야 하지만, 화장실은 프라이빗했고, 그들 또한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TV와, 마당의 해먹
(사실 나이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집주인 오빠들이 너무 착하고 친절했다. 물론 그 분들은 직장에서 일하느라, 우리는 여행하느라 대화를 길게 나누진 못했다. 그저 그 중 한 분이 딸이 있다가 추후에야 이혼하고 새로운 인생을 갖게 되었다는 정도만 알게 되었다. 그것도 그냥 냉장고에 붙어있는 사진으로 사실 추측만 한 것이었다. 그 분들은 일요일부터 친구네 놀러간다고 우리보고 집을 마음껏 쓰라는 말도 했었다. 친구들 사진을 보았는데 레즈비언 친구들인 듯 했다. 정말, 미드에서 보던 미국인들의 라이프 같은 느낌이었기에 신기했다.
둘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k와 함께 조깅을 했다. 조깅이라 했으나 사실 밥먹으러 가는 길 정도를 뛰는 것이었다. 뚜벅이 여행객들인 우리는 LA에서 밥 한 번 먹으러 가는 길이 그렇게 멀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먹을 것을 찾으러 30분을 간 것이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간 곳은 '타코벨'. 그나마 친숙해 보이는 곳이 거기였다. 타코벨에서 콤보를 시켜먹었는데, 그렇게 양이 많을 줄 꿈에도 몰랐다.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곳이다.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만 집 가는 길이 다시 30분이 걸리니 먹은 만큼 운동이 되는 것 같다. 집에 가는 길에 미국 최고의 마켓 'CVS'가 보여서 들어가 보았다.
마트에서 구경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내게 신호가 왔다. 지난 이틀간 비행기에서 오지 않았던 신호가, 대체 왜, 그 곳에서 온 것일까. 직원에게 화장실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공용 화장실은 없단다. 오.. 신이시여... 집까지는 20분을 더 걸어야 되는 상황.. 내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갑자기 모든 곳에 화장실이 있는 친절한 한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를 움켜쥐고 마트를 나왔는데, 가는 길에 보이는 것이라곤 똑같이 생긴 주택들 뿐. 음식점을 찾아 가던 길에 보았던 새도, 무서운 노숙자도, 커다란 모텔도, 어여쁜 집들도, 그저 내 눈엔 희미한 형태로 보일 뿐이었다. 집 가는 길에 길에서 다섯번 정도 주저앉았다. 주저앉을 때마다 내 궁뎅이를 뜷고 나오려는 아이들. 그렇게 20분 거리를 정말 30분 이상을 기어가다시피 가서 집에 도착했다. 다행이다. 가던 길에 실패했더라면 다신 미국에 발을 딛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렸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