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L.A., 그 잔잔한 여행

나의 어릴적 꿈을 바라보며,

by 신잔잔

나의 힘겨웠던 아침 먹기 그리고 뱉어내기 일정을 마친 후, 우리는 할리우드 거리로 갔다. 집에서 우버를 불렀는데,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은 우버가 참 잘 되어있어서 좋다. 우버를 운전하는 사람들도 너무 친절하다. LA는 거리가 넓고 차가 많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이 다들 느긋하고 여유롭다. 우버를 타고 가는 길에 우리 우버 기사분이 길을 양보해주었는데 상대방이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더니 엄지 척!을 들었다. 그 여유로움이 멋있게 느껴졌다.


갑자기 우리나라에는 우버가 들어왔다가 망했었던 적이 있던 것이 떠오른다. 택시 업계의 입김도 강했지만, 범죄의 위험에 대한 우려도 있었던 듯 하다. 우리나라는 아마 범죄율이 낮은 편이라 우버에서 범죄가 1건이라도 생기는 순간 사람들이 몰려들어 범죄를 저지른 그 사람이 범죄자가 아니라 우버라는 기업을 마치 범죄기업인 것처럼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게보면 범죄율이 낮아서 사건 하나에도 크게 느껴지는 것일테고, 또다르게 보면 우리나라가 아직은 참 보수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할리우드 거리. 바닥에 이름이 쓰여진 별들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Cate Blanchett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바닥만 보고 다니기엔 사람들이 많아 부딪칠까 싶어 결국 포기했다.


20181221_132639.jpg?type=w773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곳, Dolby Theater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때마다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올라가는 '돌비 씨어터'에 갔다. 어릴때부터 내가 가장 오랫동안 가졌던 꿈은 공연 연출가였는데, 그 꿈 속에 이 길이 있었던 기억이 새록하다. 물론 한국사람 답게 이 곳보다는 우리나라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을 더 많이 꿈꿨긴 했지만.


감흥에 젖은 것도 잠시, 금새 배가 고파졌다. 맛집을 잘 아는 K를 따라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인앤아웃버거'에 갔다. 오후 2시 가까이 된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모든 국가와 인종의 종합 버전 모임 같았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보단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을 좋아하는 내 취향 탓인지 그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기엔 약간의 귀차니즘이 있었지만, K가 정말 유명한 식당이니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결국 버거를 사는 데 성공했다.


LA는 뭔가 신기한 곳이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일하는 사람들은 역시나 흥겹다. 인상을 찌푸리거나 힘든 티를 내지 않았고, 막 웃으면서 그 바쁜 와중에도 서로 안부도 물으며 할 말을 다 하고 있었다. 내가 해외를 나갈 때마다 항상 놀라는 점 중 하나이다.


그렇게 패스트푸드를 슬로우푸드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받았다. 그마저도 버거집 내부에 자리가 없어 음식점 건너편 길가에서 앉아 먹기 시작했다. 약간 돈내고 이렇게까지 먹어야 하는가, 현타가 오긴 했지만 그 길거리에도 사람들이 다들 쭉 앉아서 먹고 있었기에 우리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먹긴 했다. 맛은? 기다린 만큼의 값어치까지는 잘 모르겠다. 안 기다리고 먹었으면 아마 맛있다고 했을법한 맛이었다.


다 먹고난 후 우버를 타고 그리피스 천문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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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_171528.jpg?type=w773 그리피스 천문대, 그리고 유명한 할리우드 간판


그리피스 천문대는 라라랜드에 나온 곳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곳에 서 있으면 할리우드 간판도 잘 보인다. 노을이 지고 있고, 그 져가는 해 옆으로 살포시 드러난 할리우드 간판이 정말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사진이 그 감성을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렇게 다시 우버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못다한 쇼핑을 위해 CVS에서 내려서 다시 장을 보았다. 낮에 갑작스레 아파진 나의 배로 인해 못 산 잼, 맥주, 그리고 저녁에 먹을 파스타를 샀다. 그렇게 아침에 온 길과 같은 길로 집까지 걸어오는데 세상이 달라져 있다. 모든 길들이 아름다웠다. 역시 인간은 생리적 현상에 시야가 좁아지는 구나.


그렇게 집 근처에 도착했는데 흑인 아줌마가 자기 집 앞에 있다가 말을 건다. 한 잔 잡수신 아주머니. 막 어디서 왔냐고 묻고, 자기 아들도 소개시켜줬다. 그렇게 시작된 영어듣기평가. 흑인 분들이라 말을 알아듣는데 그 특유의 리듬감에 나의 집중력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S과 f로 시작되는 말들이 많아 정말 반응하기 난감했다. 우리가 어디에 가야 할 지 추천도 해 준 아줌마.


우리가 베니스 비치도 갈거라 했더니 자긴 거기 못가봤다고 거기 가면 섹시하고 덩치 큰 흑인 오빠들 많을 거라고, 자기도 사실 쫄긴 하는데 알고보면 그런 애들은 다 게이라며, 무슨 말인지 정말 앞뒤 없는 이야기만 가득한 채, 베니스 비치 갈때 태워주겠다고 전화번호까지 주셨다. 많이 취하신 Antilorr 라는 이름의 아줌마. 우리 보고 머리 냄새 좋다길래 한국 샴푸도 추천해드렸다. 기억 못하실 것 같지만, 참 정신 없었다.


반면에 아들은 참 젠틀했다. 엄마를 보며 술을 저렇게 안먹어야지 생각했던 탓일까. 술을 곱게 배우셨다. 우리 보내주려고 노력하시는데 강력한 엄마가 우리를 놔주질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나누다가, 흑인 아가야들 6명이 선생님이랑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줌마가 너무 귀엽다며 애기들보고 얼른 와서 안아달라 하자 막 달려와서 폭 안기는데 우리한테도 와서 안기는 것이었다. 홀리몰리....!!!! 진짜 그 쪼꼬마난 아기들이 와서 HELLO하면서 안기는데 진짜로 심쿵사 할 뻔했다.


그렇게 30분간 그 아줌마에게 붙잡혀 있다가 내가 맥주가 무겁다고 하며 겨우 빠져나왔다. Antilorr아줌마가 자기 이웃 중에 에어비앤비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얼굴 좀 보자며 따라오길래 허겁지겁 말렸다. 그랬더니 자기가 무섭냐고 한다. 그렇게 저돌적으로 따라오시면 누구든 무섭죠 아주머니.... 내일 오라고 예의상 말하며 보내드리고 우린 얼른 집으로 대피했다. 무서웠다 진짜로 끝까지 따라올까봐.


그래도 흑인아줌마를 상대로 한 영어듣기평가는 80프로는 성공한 것 같다. 스스로의 영어실력에 뿌듯해한 우리 둘.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파스타를 해 먹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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