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L.A., 그 잔잔한 여행

낯선 여행지에서, 한여름 밤의 크리스마스.

by 신잔잔

오늘은 일어나서 해변가에 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벌써 예산보다 더 쓴 우리는 오늘의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샌드위치를 싸가기로 했다. 집에서 만든 빵 사이 계란과 치즈를 넣은 칼(로리)폭(탄)샌드위치를 들고 베니스 비치로 향했다.


바닷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


베니스비치는, 스케이트를 타라고 만들어 놓은 곳도 있고 바다도 잘 꾸며놓았다. 야자수와 탁 트인 주변과 웃음이 가득한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산타모니카 비치도 바로 옆에 있다고 해서 30분 가량 걸어 옆 쪽의 산타모니카 비치로 갔다. 걷다보니 새삼스레 느껴지는 건데, K는 파란색 체크무니 셔츠를, 나는 빨간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왠지, 사람들이 자꾸 커플이 아니냐고 오해하는 것 같았는데, 그 이유를 깨닫고 화들짝 놀라 벗어던졌다. 앞으로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셔츠를 입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산타모니카 비치로 가는 길은, 조깅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다들 얼굴이 태양으로 인해 빨개져도 신경쓰지 않고 달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그늘에 서있곤 한다. 눈부신 햇빛을 싫어하기도 하고 너무 햇빛을 많이 보다보면 얼굴에 기미와 잡티가 많이 생기기도 하는 까닭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적으로 칭찬을 많이 받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받아들이는 이 모습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차저차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산타모니카 비치에 도착했다. 문제는 아름다운 바닷가를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내 글을 읽다보면 느낄 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카메라 속 세상보다는 내 눈에 직접 담긴 세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진이 많이 없다. 대신에 이렇게 그 순간 순간의 느낌을 한 번씩 글로 써놓고 기억한다. 그런데 막상 찍어 놓은 사진들을 보면 글에는 내 기억과 상상이 혼합되어있지만, 사진은 있는 그 당시의 모습을 포착한다.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한다고 했던가. 가끔은 사진으로 담아왔더라면 더 기억에 생생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다를 구경하다가 우리가 싸온 샌드위치를 먹기위해 음료만 하나 구매한 채 바닷가에 가서 앉았다. 어느 나라나 똑같은 것인지, 바닷가 근처에서 사먹는 음료수는,... 물맛이다. 레몬에이드를 분명 시켰음에도 이것이 레몬에이드인지 물에 레몬향을 살짝 탄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산타모니카 해변에 앉아 밥을 먹는데 갈매기와 비둘기가 그렇게 많이 몰려든다. 한 손은 쫓아내랴 한 손은 먹으랴 허겁지겁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칼폭 샌드위치를 삼켜버렸다.


그렇게 허겁지겁 다 먹고 잠시 배를 두드리며 앉아있는데 앞에 친구들 끼리 온 고등학생 무리가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애들이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한다. 남자애들은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여자애들은 아래 위 다 벗어던진 채 아래위 속옷만 입고 바다로 뛰어든다. 어머나 얘들아, 저게 바로 미드에서 보던 개방적인 문화인거니. 우리나라였다면 누가 찍어서 올려서 욕 먹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너무 일찍 출발했던 탓일까, 아직 이른 시간대였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게티 센터를 가기로 했다. 게티 센터는 중국의 어떤 부자가 자신이 갖고 싶은 소장품들을 모아 전시해 놓은 것으로 트램과 관람이 모두 무료라고 한다. 실제로 가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도 규모가 엄청 나다. 중국의 부자는 정말 찐 부자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게티 센터로 가는 트램과 게티 센터 앞
위에서 바라본 게티센터와 고흐의 아이리스



정말 외부 전경부터 해서 모든 부분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전시장을 도는데, 얼마나 부자면 저렇게 지을 수 있는 것인지, 얼마나 부자면 저렇게 좋은 작품들을 무료로 이렇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이 들 정도로 넓고 아름다웠다. 정말 많은 유명한 작품들이 모여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나의 성격 상 사진이 더이상 없다.


그렇게 느긋하게 게티 센터를 다 돌고 내려와 우버 택시를 잡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뒤, 둘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했다. 우리끼리 스스로 코스요리를 제공하며 즐겨 보았다. 에피타이저로 스프, 메인디쉬는 파스타, 디저트는 넷플릭스와 과자였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맥주와 와인이 함께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한여름 밤의 크리스마스.


저 한 줄 만으로도 우리가 보내는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비록 넷플릭스는 자막 없는 영어 리스닝이어서 완전히 알아 듣지 못했기에, 눈이 즐거운 영화로 골라 봐야 했지만 여하튼 그 순간이 참 행복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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