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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L.A., 그 잔잔한 여행

낯선 땅에서, 파티와 함께 춤을

by 신잔잔

메리 크리스마스!


이전에 여행객들을 모아 파티를 한다는 Tom의 집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기로 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어플에서 알게 된 파티였고 초대를 받게 되었기에 갈 수 있었다. 각자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가는 포트럭 파티였다. 크리스마스 당일인지라,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미국 문화를 영화에서 보던대로 어디 한 번 제대로 즐겨보자!' 라는 두 명의 같은 마음이 모여 가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K와 나는 이런 부분에서 뭔가 잘 맞다. 그 나라에 갔으면 그 나라를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Tom의 집은 Silver lake가 내려다보이는 어메이징한 집, 이라고만 전달을 받았다. 가기 전에 음식을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구하기도 쉽고 그나마 재료가 덜 필요한 감자전과 계란말이를 해가기로 했다.그렇게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여유로움을 느끼며 9시 즈음에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재료가 별로 필요 없을 것 같던 요리였지만, 그럼에도 밀가루, 식용유, 소금 등등 자잘하게 필요한 재료들이 많았다. 결국 우리 에어비앤비 숙소의 주인오빠들의 것들을 약간 빌려야만 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한국요리들은 식용유가 많이 필요하다. 얼마 없었기도 했지만, 감자전을 거의 튀기듯이 굽다보니 그들의 식용유를 다 쓰고야 말았다. 결국은 마트로 가서 새 것을 사서 살포시 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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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감자전과 계란말이를 만들었는데, 아뿔싸, 이제는 담아갈 그릇이 없다. 결국 또 집주인 오빠들의 그릇을 잠시 대여하기로 했다. 물론 그들은 현장에 없어서 대여하는 지 몰랐겠지만. 요리는 오전 11시쯤에 시작했는데 끝나고 나니 거의 3시가 되어갔다. 3시간동안 요리만 주구장창한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다급하게 음식을 포장하여 약속한 오후 4시에 Tom의 집으로 갔다.


아뿔싸, 미국 문화에 아직 반만 알았던 듯 하다. 약속한 4시에 TOM의 집으로 갔더니, 우리가 거의 처음이었다. 미국 문화를 미드로 배웠어요.. 한국인들이라 시간에 맞춰 가야하는 줄 알았다. 그래도 Tom이 소개해주는 집 구경을 하고 조금 있다보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Tom의 집은 일단 집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웠고,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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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보이는 차가 없어서 더 여유롭고 좋다. 어쩌면 넓은 땅에 널찍하게 집들이 떨어져 있어서 더 좋아보이는 것일까. 당연하게도 LA는 주택으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는데, 이 동네에서는 이웃들이 서로 다 알고지내는 듯했다. 이웃에서 놀러 오기도 하고,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이 오기도 했다. 샴페인과 에피타이저를 즐기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온 언니들도 만났고, 캐나다에 사는 중국인도 만났고, 프랑스 사람, 브라질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즐겼다. 짧은 영어지만 그래도 서로 소통이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한 미국 아저씨는 내가 한국인이랬더니 기타리스트 '김세황'이랑 친하다며 자랑한다. 세상은 좁다고 말하며, 자신도 그런 쪽이서 일해서 아는 사이라며 크리스마스에 받은 문자를 자랑한다. 음악 분야는 잘 모르긴 했지만 그래도 '김세황'은 워낙 유명한 기타리스트라 알고 있어서 신기했다.


프랑스 아저씨는 본인의 직업이 'sexologist'라고 했다. 그게 뭔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는데, 다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역시 프랑스~' 같은 반응이었다. 뭔가 19금 드립을 날리기도 하고. 그런데 나의 영어 실력은 매우 짧았기에 완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약간의 눈치와 검색실력으로 알게 되었다. 성 연구가 라는 직업이라는 것을.


뉴욕에서 온 언니들은 완전히 Friendly했다. 미국 특유의 친화력이 보인달까. 다만, 동부에서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영어 말하기 속도가 완전히, 수능 영어x5 정도의 속도였다. 태어나서 그날 만큼 내 귀의 집중력이 강했다면, 아마 수능 영어는 백점 맞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많고 많이 걸기도 하는데 20퍼센트 정도는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웃음으로 무마했다. 그 언니들은 LA보다 뉴욕이 사람들이 더 친절하고 좋다고 엄청 자랑하는데, 친절하면 말 좀 느리게 해줘요 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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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파티!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누가봐도 어색한 웃음이라 내가 너무 오바해서 웃는 것 아니냐 했더니 미국인들은 원래 그렇게 웃어 줘야 한단다. 그냥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정말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Tom이 칠면조 요리가 다 되었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각자가 한 음식과 더불어 정말 미드에서만 보던 칠면조 요리라니! 내가 미드를 너무 많이 봤었던 탓일까, 모든 순간 순간들이 다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각자 가져온 음식들도 함께 놓아두고 먹었는데, 어떤 분들이 우리가 만든 감자전을 가리키며 이거 너무 맛있는데 뭐냐고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음식이라고 친절히 설명.. 해주고 싶었으나 사실 뉴욕 언니들과의 긴 영어 듣기 평가로 잠시 지쳐 있어서 그냥 알아서 추측하도록 두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큰 음악소리가 들린다. 댄스파티 시간이란다.


1545809786327-4.jpg?type=w773 말 그대로 정말 그냥, 장소와 음악을 가리지 않고 춤을 춘다


춤을 추는데 유쾌하던 금발의 뉴욕 언니가 산타모자를 쓴 잘생긴 브라질 오빠한테 엄청 들이대고, 파티에 참석한 게이커플 중 한 명의 게이도 그 브라질 오빠한테 들이대고, 양옆으로 정말 장난 아니었다. 남자고 여자고 정말 보는 눈이 똑같은가 보다. 뉴욕 언니는 엄마랑 언니랑 같이 왔는데도 가족들은 전혀 신경도 안 쓰고 그렇게 들이대는 모습이, 역시, 내가 생각했던 개방적인 문화를 뛰어넘는 개방적임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구석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엔 무엇을 하나 했는데 알고보니 모여서 대마초를 피는 것이었다. 뭐랄까, 내가 생각하던 금기물이었던 마약을 이렇게나 쉽게 접할 수 있다니, 갑자기 미국의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진다.


캐나다에 영주권을 얻고 미국에서 산다는 중국 오빠는 약간 나한테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닐까, 라는 착각의 늪에 빠져 본다. 내일 뭐하냐고 묻고 한국 놀러가면 가이드 해달라 그러고, 자꾸 나가서 춤추자고 하고. 물론 그냥 어색함을 덮기 위해 말을 걸었던 것을 보고 느낀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중년의 사람들, 젊은이들.. 정말 다양한 나이, 인종, 성별, 문화가 섞인 파티였다. 외국에 오면 가장 인상깊은 것들 중 하나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그들은 비키니도 입고, 클럽에 가기도 하고, 이렇게 파티에 오기도 하고.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내 눈에는 삶을 더 주체적으로, 아름답게 사는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미국에서의 홈파티는 정말 내가 꿈꿔왔던 최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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