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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쿠스코, 그 잔잔한 여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by 신잔잔

아침에 일어난 뒤, 저녁에 쿠스코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버스표를 끊지 않고 가서 흥정해서 사기로 해서 조금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호스텔에 짐을 맡겨놓고 돌아다니며 아레키파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20190102_151513.jpg?type=w773 아레키파 중앙 광장


큰 도시는 아니었기에, 광장 쪽을 왔다갔다 하다가 'Punta Fruta'라는 곳에서 'chicha'라는 전통 음료를 마셨다. 보라색 옥수수로 만든 것이라 하는데, 내 입엔 맛있었음에도 K는 별로라고 해서 결국 또 혼자 다 먹는다. 이렇게 살은 나만 찌겠지. 피자와 맥주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며 유유자적 돌아다니다가 가방을 찾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은 워낙 정신 사나운 곳이라 눈을 부릅뜨며 가방을 사수하면서 야간 버스를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유명한 버스 회사 한 3군데를 갔는데 다 자리가 없단다. 다행히 flores라는 곳과 유명한 movil이라는 곳은 자리가 남아 있었다. 돈을 아끼자는 생각에 30솔을 부른 flores를 타기로 했다. 막상 들어가니, 왜 싼지는 알 것 같다. 냄새도 별로고, 상태도 좋지 않다. 그래도 야간이니깐 잠을 청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방값도 하루 아끼지 않았는가. 이렇게 가난한 여행객 모드, 오랜만이다.


크루즈 델 수르는 9시간 가면 된다고 들었는데 이 버스는 중간중간 너무 멈춰서 거의 12시간이 걸렸다. 아레키파-쿠스코 구간이 강도가 많다 해서 속옷에다가 돈 넣고 난리 쳤는데 다행히 무사히 쿠스코에 도착했다. 여행은 모든 순간이 즐겁지만, 이 곳에선 모든 순간이 긴장이라 피곤함도 함께 온다.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엊그제 잡은 에어비앤비로 갔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쿠스코에 대해 너무 모르고 와서인가 너무 깜짝 놀랐다. 골목골목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더라. 왜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곳인지, 세계적 인정을 받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1546565457522.jpg?type=w773 오자마자 길거리를 걷는 나



일단 에이비앤비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볼리비아 비자 서류를 떼기 위해 바로 볼리비아 대사관으로 갔다. 서류를 안 떼줄까 싶어 얼마나 순수하고 감사한 얼굴을 지었던지. 한번에 OK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우린 근처에 한식당 '꼬레아가든'으로 갔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라 그런가 왜이렇게 맛나던지. 돈은 많이 나왔지만 어느 음식보다 제일 맛있었다.


그렇게 부른 배를 잡고 숙소로 돌아와 1시간만 자고 일어나자며 알람을 맞췄으나, 일어나보니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야간버스가 많이 힘들긴 했었나보다. 저녁이 되어버려서 얼른 근처에서 환전도 하고 빨래방도 찾을 겸 구경하러 나갔는데, 정말, 좀전에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못 봤던 새로운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가 어찌 그리 아름답던지. 그냥 걷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곳이었다. 그렇게 여기 저기 구경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맥주와 물만 사서 들어온 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집주인인 Amy가 해주는 아침을 먹었다. 집에는 부부와 애기 하나와 같이 살고 있었다. 치즈가 든 빵과 요거트와 과일을 섞은 특이한 음식이었는데 이 나라에서는 많이 먹는 듯 했다. 요거트와 과일, 오트밀 섞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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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빵이 너무 맛있었다. 먹다가 찍었네..



K가 어제 저녁에 먹은 맥주와 감자칩을 먹고 체했는지 너무 아파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주고 자는 동안 나는 에어비앤비에 있는 아가랑 같이 놀았다.



2019-01-04-10-48-28.jpg?type=w773 너무 귀여운 아가



여기 남편 분인 Ores은 페루사람이고, 아내인 Amy는 유럽 사람이라 혼혈인데 너무 귀엽다. 모든 혼혈 아기들은 다 귀여운걸까. 아니면 그냥 아기라서 귀여운 걸까. 잠시 후 K가 겨우 일어났으나 여전히 배가 5분에 한번씩 아팠다 안아팠다 한댔다. 그래서 어디를 데리고 나갈 순 없고, 그냥 시간을 아끼기 위해 며칠 뒤 쿠스코에서 볼리비아 라파즈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RED버스인데 쿠스코-라파즈 구간의 치안이 안 좋다고도 하고, 지난번에 싼 버스를 탑승해보니 여러모로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어서 적어도 이동은 편안하게 하자고 하여 그렇게 결정했다.


일단은 우리가 미뤄놓았던 빨래를 맡기긴 해야 했으므로 아픈 환자를 데리고 굳이굳이 같이 길거리로 나왔다. 빨래방에서 맡기는데 1kg당 3솔(=1050원 정도)이다. 나랑 람이 것은 3.8kg이 나와서 11.4 솔을 주었는데 이따가 저녁 8시에 찾으러 오란다. 매일 이동하느라 손빨래만 하다가 2주만에 정식 빨래다. 감동적인 순간. 그리고 같이 마추픽추 여행사를 고르러 갔다.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오랜만에 한국인들이랑 다녀보자 싶기도 하고, 조금 비싸도 안전하게, 한국인 전문 여행사로 가기로 했다. 파비앙과 올어바웃쿠스코, 두 군데 중에서 고민했는데 고민 끝에 학생증 할인도 해주고 원래 가격도 조금 더 싼 파비앙을 택했다. 그리고 난 뒤 편안한 마음으로 근처의 한 시장으로 갔다. 좀 늦게 도착한 지라 슬슬 문닫고 있었다.


지난번 트레킹 때 작은 힙색을 메고 갔다가 죽을 번 했던 경험 때문에 둘 다 가방을 샀다. 역시 인간은 경험해야 뭐든 깨닫는 법이지. 가방은 개당 7000원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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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말고도 머리띠도 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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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서 갈아주는 신선한 과일주스



마추픽추가 춥다고 들었는데 따뜻한 옷이 없어서 만원 정도를 주고 하나 구매했다. 주인이 알파카 털이라고 그렇게 홍보를 한다. 머리띠도 하나씩 구매하고, 과일 주스도 마시고 그렇게 즐길 것을 다 즐기다가 시장에서 나왔다. 난 파인애플 주스를 4솔(1400원)에, K는 망고 주스를 5솔(1750원)에 마셨는데, 진짜 과일을 통째로 갈아주어 3잔 정도의 양이 나오는데 그걸 여러번에 먹을 수 있도록 다 준다. 설탕도 물도 안넣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감동받을 달콤함이었다. 이건 진짜 세번 네번 먹어도 될 듯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치차론이라는 이 지역의 전통 음식을 먹어보러 갔다.



1546972237785-4.jpg?type=w773 치차론



K는 여전히 체기가 가시지 않아서 못 먹을 것 같다며 차를 시켰고, 나만 음식을 시켜놓고 먹는데, 나쁘지 않았다. 근데 좀 딱딱했다. 곁들여 나오는 옥수수는 내 엄지손톱보다 커서 퍽퍽했고 감자와 양파는 매우 맛있었다. 여긴 옥수수와 감자의 종류가 정말 많다. 그래서 아마도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성스러운 계곡 투어할 때 점심은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었기에 빵집에 들러 빵을 샀다. 마침 엠파나다가 있어서 그걸로 골라서 내일 먹기위해 사놓았다. 엠파나다는 만두 비슷한 음식인데, 조금 더 도톰한 느낌이랄까. 여하튼 우리 입맛에 잘 맞고 맛있다.


먹방과 쇼핑 여행을 끝낸 후, 저녁 8시가 되어 빨래를 찾으러 갔는데 너무 깔끔하게 잘해주셨다. 얼핏 보기엔 왠 쓰레기 봉투에 넣어줬나 싶은데, 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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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속 가지런히 놓인 우리의 옷



비가 와서 내가 갖고 간 가방 말고 따로 봉지에 넣어주셨던데 집에서 열어보니 이렇게 하나하나 다 개어주신데다가 향긋한 냄새까지 난다. 오래만 묵는다면 맨날 여기서 빨래를 맡기고 싶다. 그리고 아까 시장에서 과일을 좀 많이 사왔었는데 우리가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간과한 듯하다. 너무 많이 사버렸다. 결국 그냥 저녁에 먹기로 했다. 이제 K도 속이 조금 괜찮아진 듯 하니깐.



1546972188543-24.jpg?type=w773 산페드로 시장에서 산 망고



저번에 아레키파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시장, 지역마다 맛이 다른가 보다. 아직 완전히 다 낫지 않은 K를 위해 각자 쉼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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