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힘든 곳을 보러 가는 여정
새벽 6시에 일어나 성스러운 계곡과 마추픽추 투어를 가는 날이다. 전날 밤 에어비앤비 주인한테 일찍 출발한다고 안 말했더니 아침에 늦게까지 주무신다. 아가들을 키우는 게 당연히 힘들 듯 하여 조용히 깨우지 않고 차만 한 잔 마시려고 발소리 내지 않고 살짝 걸었다. 근데 장소가 조금 삐그덕 거리는 곳이라 우리 때문에 깨신 듯 하다. 너무 죄송스러운데 아침을 차려주시는 착한 ORES. 그런 남편 만나고 싶어요. 너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집에서 나왔다.
파비앙 투어사로 출발했다. 지난 번 1박2일 콜카캐년 투어 덕분인지 이제 어딜 갈 때 어떤 짐을 싸야할 지 감이 조금씩 온다. 그렇게 18명의 한국인들과 가이드 Juan(후안)이 만났다. 그동안 만난 가이드 중 감히 최고라 뽑을 수 있다. 역사 공부를 정말 많이 한 것이 보이고 더하여 영어 발음까지 좋았다.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었다. 역시 한국인들이 많이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우리 정서에 참 잘 맞는 사람 같았다.
맨 처음에 간 곳은 친체로 였는데, 고산지대에서 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중간중간 물을 옮기기 위한 구멍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랜 세월 보존이 잘 된 모습이 그저 신기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모라이였다. 맨 아래가 가장 찬 공기가 있고 한 계단 상승할 때마다 0.5도씩 온도가 상승한다고 한다. 신기하다. 그렇기에 매 테라스마다 다른 작물이 자랄 수 있단다. 다만,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뒤로 한국, 중국인들이 너무 많이 가 일부가 무너져 그 이후로는 못 들어간다고 했던 듯 하다..
모라이를 보고 벤을 타러 가는 길에 가이드한테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내 성격으로 인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이틀 전 쿠스코 메인 광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더라. 페루에 무슨 정치적 문제가 있냐' 했더니 멋쩍게 웃으면서 맞단다. 그래서 대통령 문제냐 했더니, 대통령은 오히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며 그 밑에 입법부 사법부에 부패 관련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설명을 더 해주긴 했는데 페루의 인물들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해를 100% 하지는 못했다. 대충 어떤 이유인 지 알았으니. 세상 어느 나라를 가든 부정부패와 싸우고 있구나, 싶다.
그리고 또 거기 무지개 깃발들이 많던데 평화를 상징하냐 물어봤는데 사실 페루 국기란다. 페루 국기는 다른 모양이었는데? 했더니, 잉카 깃발이란다. 근데 게이들이 드는 거랑 똑같지 않냐며 막 웃는다. 나도 사실 그거때문에 물어본 거였다. 게이 퍼레이드 같은 시위인 줄 알고. 아무튼 그렇게 궁금한 것이 풀렸다.
이후 소금 광산으로 향했다. 이 곳은 수 천년 전에 바다 아래에 있었는데 그 바다가 가라앉으면서 산에 있는 소금물이 여전히 흘러나와 염전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소금을 추출해내어 그렇게 판다고 했다. 아니, 나 영어 설명인데 너무 잘 알아들었잖아?
이후에 점심을 먹는데 뷔페를 데려간다. 다만, 만원 정도 하길래 우리는 미리 밥을 싸왔었다. 가난한 여행객들이란. 엠파나다와 크로아상을 먹는데 엠파나다가 정말 맛있었다. 뷔페식 부럽지 않아. 밥을 먹고 가이드 후안과는 마지막으로 오얀따이땀보에 갔다.
후안이 220계단을 걸어야 하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계속 말했었다. 내가 콜카캐년 투어를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다짐, '산을 오를 때는 꼭대기를 보고 올라서는 안 된다. 그저 내 앞에 놓인 한 계단 한 계단만 집중해서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목표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올라갔다. 오얀따이땀보가 그리 긴 산행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고도 자체가 높은 곳이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는 곳이었다. 그러나 더 힘든 것도 거쳤던 우리, 이 정도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우리의 가이드는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일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전달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위쪽에는 알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돌들이 많이 있었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우리가 서있는 오얀따이땀보의 산에는 그 돌들이 있지 않다고 했다.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저 곳에서 같은 모양의 돌이 있는데 아마 그곳에서 들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마 돌 하나를 나르는 데 수 천 명이 필요했을 것이라는데, 그러한 사실 또한 잉카 제국이 자신들의 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돌들이 아무 곳에나 놓여져 있어서 그 까닭을 물어보니, 돌을 옮겨 절을 지으려는 와중에 스페인이 침략하여 더이상 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놓여져 있다고 했다. 여러가지 돌들이 끼워 맞춰진 것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바람이 많이 부는 특성 상 같은 모양의 돌들을 이쁘게 쌓으면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끼워맞추는 방식을 이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제주도 같은 느낌인 걸까.
마지막으로 잉카 제국이 높은 곳에 있는 이유는 아래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우러러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하늘과 더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는 느낌에서 였을 것이라 추정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왜 '잉카제국'이 대단하다고들 말하는 지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세계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 가이드 후안과는 인사한 뒤, 잉카레일을 타고 '아구아깔리엔떼'라는 마추픽추를 가기 전에 있는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K가 갑자기 누굴 보더니 '어?!'라며 인사하는 것이었다. 나도 봤는데 어디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일단 인사를 하길래 나도 했는데, 알고보니 온천에서 만나서 한국이 좋다던 프랑스 커플이었다. 아니, 정말 사람마다 관심 분야가 달라서 그런가, 나는 그 사람들과의 대화만 기억하고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는데, K는 나와 반대였다. 신기하다.
잉카레일에 탑승하고 조금 있으니 간식과 초콜릿 그리고 음료를 준다. 간식이 진짜 맛있었다. 단순한 과자였는데도 고소함이 아주 그냥 엄청났다. 마을에 도착하여 내린 뒤 새로운 가이드를 따라 호스텔로 갔다. 우리 방은 더블베드 하나 1인용 베드 하나였다. 이럴 땐, 가위바위보 삼세판이다. 연속 승리를 거둔 내가 더블베드를 쓰게 되었다. 키는 내가 비록 K보다 10cm 작지만. 정정당당한 승부의 세계니깐.
밥을 먹으러 동네로 나가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사람은 엄청 많은데 서빙은 두명에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나의 맥주와 밥이 안 나왔다. K 것은 다 나왔는데. 그때부터 뭐 거의 아는 스페인어 다 동원해서 말을 했다. 거의 현지인 느낌이었다. 저 맥주 지금 마시고 싶은데 맥주라도 먼저 주세요, 밥은 대체 언제 나오나요, 기타 등등. 1시간 넘게 기다린 것으로 기억한다. 근데 사실 그들의 대답은 모르겠지만 그냥 괜히 스스로 스페인어 고수 된 기분이라 뿌듯했다.
1시간의 기다림끝에 나온 음식은 꽤 맛있었다. 하도 신선한 야채들을 안 먹었다보니 야채가 너무 끌렸었다. 나오는 데는 1시간이지만, 다 먹는데는 5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밖을 한참 돌아다녔다. 이 마을은에 흐르는 강은 작은 청계천 느낌이 딱 든다.
얼굴은 초췌해졌으나 신난 나의 모습이다. 방에 들어와 2인용 침대를 차지한 자의 여유로 K에게 먼저씻을 기회를 주었는데 걔가 씻고 나와 내가 씻을 차례가 되니 따뜻한 물이 안나온다. 망한 듯 하다. 샤워를 정말 1분만에 하고 나왔다. 그래도 괜찮다. 내일은 드디어 마추픽추를 가는 날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