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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3. 2023

#25.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잔잔한 여행

스테이크+와인+탱고+살사 = 완벽한 남미 여행

공연이 늦게 끝나 새벽 2시 가까이 되어 자던 탓에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간단하게 씨리얼을 먹고 산책을 나선다. 오늘은 어떤 소고기를 먹을까, 검색해보다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소고기 맛집을 찾아냈다. 하필 12시 반쯤에 문연다 하여 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K의 유심이 잘 되지 않아서 'Personal'이라는 통신사에 들고 가 봤는데 2G를 다 써서 안되는 거란다. 네2G를 이틀만에 저희가 다 썼다구요? 일단 오케이, 하고 나왔다. 


유심을 해결하기 전 거기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소고기 맛집 'La Cabrera'에 드디어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맛있었다며 칭찬을 그렇게 늘어놓았길래 또 우리가 여기까지 왔으니 가 봐야지,하며 없는 돈을 끌어모아 또 먹기로 한다. 그렇게 도착해서 추천을 받은 후 스테이크 등심 큰 거 하나를 시켜 둘이 나눴다. 와인도 추천 받아 마셨는데, 정말 눈물나게 맛있다. 한국가면 제일 생각날 것 같다. 


가만히 있으니 에피타이저 비슷한 것을 서비스 어쩌고 라며 갖다 준다.  오, 안시켰는데 서비스로 저런 것도 주는구나, 라며 먹었다. 매쉬 포테이토 같은 건데 진짜로 맛있었다.  


스테이크와 기타 요리들



좌측의 큰 한 덩어리를 둘이 나눠서 준다. 저게 자그마치 800g이다. 언제나처럼 미디움레어로 시켰는데, 역시나 맛있다. 입에서 녹아내리는 맛이다. 한 입 딱 먹었는데, 갑자기 웨이터가 소스 6개를 가져다 준다. 엥, 찍어먹으라는 것인가. 두 눈이 휘둥그레해진 우리. 소고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소스가 너무 많아 집중 불가하다. 샐러드도 엄청 가져다 준다. 커다란 한 통에다가 양배추 샐러드까지.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촉이 온다. '야... 이거 다 돈 내는 거 같지 않냐?'. 아니나 다를까, 모든 게 다 돈이었다. 소스는 하나하나마다 돈이 붙어있는 듯 했다. 그리고 스테이크는 솔~직히 말하면 저번에 멘도사에서 먹었던게 더 맛있었다고 나랑  K랑 동의했다. 아마 서비스인줄 알고 받은 소스들이 돈이 붙는 거라 괜히 더 그런 기분이었을지도. 아무튼 나중에 나오는 계산서를 보니 물부터 샐러드, 소스 하나하나까지 돈이 다 붙는다. 그래도 배터지게 많이 먹었으니 되었다. 그렇게 또 알지 못해 돈을 내야만 했던 우리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리고 난 뒤, 드디어 지하철을 타고 탱고의 본거지, 라 보카 거리로 가기로 한다. 그러나 저번에 비행기에서 만난 현지인 언니가 엄청 위험하다고 말해 주었기에, 지하철을 타고 간다음, 내려서 메인 거리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안전이 최고니까. 그렇게 도착했는데, 정말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이 곳이야말로 내가 꿈꿔왔던 남미였다. 음식점들 안에서 무용수들이 탱고를 추고 있다. 이 곳의 무용수들이 진정 내가 원했던 탱고의 눈빛이었다. 내가 생각한 그 '하나의 심장'이 조금 보이는 듯 하다. 


일단 메인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는데 길거리 자체도 신기하다. 완전 남미의 느낌 물씬 난달까.


골목의 상점과 길거리 벽화 앞의 나



구경을 좀 하다가 한 곳에 자리를 잡아 맥주를 시켰다. 거리에서 하는 탱고를 앉아서 구경하는데, 정말 내가 원하던 그림이다. 어제는 공연인지라 기술은 최고였지만 느낌이 덜했던 반면, 오늘은 기술이 어제까진 아니어도 영혼이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한 탱고. 정말 감동이다. 내가 원했던 탱고가 이런 거라고 K에게 한 다섯 번은 말한듯하다. 


공연을 한 20~30분 정도씩 두 팀이 돌아가며 하는 듯 한데 다 끝나면 팁을 걷으러 다닌다. 감동받아 당연히 드린다. 팁을 드리고 나니 탱고 포즈를 알려주며 남자 무용수가 사진까지 같이 찍어주신다. 나의 듬직한 무게에도 잘 버티시는 무용수 분. 죄송합니다. 


우리도 맥주를 다 마시고 서서히 일어선다. 나가려고 계산서를 달라고 했는데, 종업원들이 한국말을 한다. 근데 '안녕하세요, 이쁘다,'까지는 이해하는데, 어떤 종업원이 다른 종업원 가리키며 우리보고 '저 친구 캐새키야'라는 욕도 하는데 너무 웃겼다. 팁을 주는데 마지막 그의 한 마디. '팁은 내꺼'.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거리를 즐기다가 우버를 잡아 타고 위험한 라보카 거리를 벗어났다. 저녁에는 직접 탱고를 배워 보기로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La vintura' 댄스교실이었다. 입장료 150페소(4500원)만 내면 모든 강습은 공짜라고 한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각자 춤추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동안 탱고 선생님 두 분이 탱고를 추는데 정말 너무 멋있다. 역시 전문가들이라 다른가 보다. 하필 휴대폰을 맡겨놓느라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그 시간이 끝나고 탱고 수업을 시작한다. 여자들의 수가 더 많아 여자분들 및 남자분들과 번갈아가며 발 이동 연습을 하고, 상대방이 리드하는 대로 따라 걷는 연습을 시켰다. 마리아 선생님이 나보고 손과 마음을 통해 상대방이 어디로 가길 원하는 지 느끼라 했다. 탱고가 왜 '하나의 심장'인지를 알려주는 대목이긴 했으나.. 문제는 난 너무 한국인이라 배운대로 움직이는데요..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는 어떻게 알죠.. 결국 몸치로 남겨진 나였다. 


이후에는 탱고의 기본 스텝도 배웠다. 오른쪽 한발, 뒤로 두발 갔다가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크로스, 그리고 오른발 뒤로 한 발 갔다가 왼 쪽으로 한 발. 완전 기본 스텝이라는데도 사실 너무 어려웠다. 짝은 번갈아가면서 하는데, 약간 나이 드신 노신사 분과 함께 발맞춰 연습하는데 그 분과 하니 무슨 느낌인지 감이 오고 꽤나 잘 되기도 했다. 역시 리드가 중요한 춤이 맞는가보다. 수업이 끝나니 노신사분이 뺨을 들이댄다. 0.5초간 흠칫 했지만 '비쥬'(뺨을 맞대며 인사하는 것)를 원하는 것을 깨닫고 함께 한다. 이 나라 문화에 벌써 스며든 느낌이다. 


다음 수업은 살사 수업이 있었다. 놀랍게도 나는, 한국에서 남미를 여행 오기 몇달 전부터 살사 댄스를 배우러 다니고 있었다. 남미에서 남미의 남자들과 춰보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스텝과 남미 스텝이 조금 다르다. 그리고, 아직 그만큼 출 정도로 전문가가 되지 못했다. 결국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나. 


수업과 수업 사이에 라인댄스도 춘다. 나이 구분이 없어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엄청 많은데 춤 추시는 모습들을 보면 나이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사람들만 보인다.   


라인댄스를 추는 사람들


새로운 남미 스타일의 살사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3~4개월 정도 배우고 왔지만 댄스화도 없는데다가 K와 함께 하고자 그냥 초급반에서 들었다. 내 파트너는 프랑스 여행객 남자였다. 이건 파트너가 안바뀌는 방식이었는데, 나보고 '어? 너 스텝 잘하네?' 하길래 '한국에서 다른 스타일로 조금 배웠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여기서 몇 번 배웠다며 다른 걸 해보자고 한다. 그걸 보고 선생님이 와서는 right turn과 CBL(자리 바꾸는 기술)을 알려준다. 프랑스 친구가 욕심이 많아 엄청 다양한 걸 하자고 조른다. 자기 잘하지 않냐며. 열정 넘치게 배우는 모습이 꽤나 귀여운 친구였다. 프랑스인 친구가 스페인어를 너무 잘하길래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학교에서 배웠단다. 아, 스페인이 프랑스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하도 남미에 있으면서 스페인어만 듣다보니 스페인어가 남미에서만 쓰는 말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K랑 나랑 사람들 춤추는 걸 구경하다가 집으로 갔다. 남미에서 살사와 탱고를 해보겠다던 내 일생일대의 작은 꿈이 실현되어 기쁘다. 언젠가 다음에는 댄스화를 들고 다시 한 번 아르헨티나로 날라올 날이 있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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