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예민한 아빠는 방음이 잘 안 되는 호텔 탓에 새벽1시부터 깨어 있었다고 했고 머리만 대면 자는 나는 그나마 시차로 인해 새벽 5시에 기상했다. 한국에서도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5시면 일어나는 극한의 아침형인 아빠와 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새벽 5시부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는 이 낯선 땅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한 시간 정도 그나마 앉아있다가 출발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한 미국인이 탄다.
"Good morning"
먼저 말 걸 것을 예상하지 못한 나는 잠시 어버버 거리다가 "ㄱ..구..굳모닝!"이라고 외쳤고, 아빠는 당황한 것이 티가 났지만 자연스러운 척 하며 "굳 모닝"이라고 답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아빠가 먼저 나한테 말을 건다.
"외국인들은 항상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하는데, 참 좋은 문화 같아."
"아빠 나름 출장 와 본 적 있다고 자연스러운 척 하는것 같던데? 나는 갑자기 저 사람이 말 걸어서 너무 당황했어.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만 그 말이 없는 것 같아. 스페인도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인사하고, 일본도 '오하이오 고자이마스'라고 인사하는데, 우리나라만 안녕하세요 말고는 딱히 없어.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하기엔 너무 오글거리잖아. 왜 그러지?"
"그러니까. 우리나라만 아침인사가 따로 없어. 그래도 저렇게 인사하니까 너무 좋지 않아?"
"응. 진짜 좋은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이제 한국 돌아가면 아파트 사람들한테 인사 좀 잘 해봐."
대화 끝. 나름 미국에 도착한 이후로 가장 긴 대화였는데, 갑자기 아빠한테 혼나는 분위기로 가 버려서 할말을 잃어 버렸다.우리의 대화는 늘상 이런 식의 반복이다. 아빠나 나, 둘 중에 한 명이 꼭 주제에서 벗어나 할 말을 없어지게 만들어서 대화가 끊어져 버린다. 아무래도 우리 둘 다 고쳐야 할 좋지 못한 버릇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다시 조용해진 우리는 호텔 근처에 있던 K-TOWN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보니 '북창동 순두부' 간판이 보였다. 한국에서 유명한 그 순두부 집을 미국에서 처음 영접하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근데 하필이면 문이 닫겨있었다. 결국 근처를 둘러보다 바로 옆에 문을 연 식당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 한식당에서, 아빠는 순두부찌개를, 나는 뼈해장국을 시켰다. 어릴 때부터 짠 맛, 단 맛, 신 맛 등을 잘 구별 못하고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던 나는, 미국에서 그냥 들어간 한국 음식점임에도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선지까지 들어 있었다. 아빠는 맛이 그저 그렇다고 했는데 내 입에는 정말 딱 맞았다. 이래서 내가 미식가가 될 수 없나보다.
호텔로 돌아오니, 컵케잌과 커피를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다. 공짜 좋아하는 한국인인 아빠와 나는 그렇게 배가 부른 와중에도 컵케잌과 커피를 받아와 방에서 먹었다. 새벽같이 일어났던 아빠와 나였기에, 밥을 먹고 돌아온 뒤에도 오전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또 할 일 없이 각자 버티기 시간이었다. 저녁이면 맥주라도 마시며 대화를 시도해 볼 텐데, 아침부터 맥주를 마실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이 조용하고 어색함을 머금은 공기가 서늘하게 방 안을 뒤덮는다.
영원 같은 시간도 결국은 흐르기 마련인지라, 다행히도 슬슬 아빠가 짠 계획, 즉 '아빠투어'의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호텔 근처에 있던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는 코스였다. 뉴욕의 지하철은 한국과는 다르게 정말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다. 내가 가야할 지하철역이 아래쪽(Downtown)인지, 위쪽(Uptown)인지 방향을 잘 보고 들어가야 한다. 아빠와 나는 하필이면 수십 번 간 길도 잘 외우지 못하는 대표적인 길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어디로 가는 지 확인 후 역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탈 지하철의 번호를 보고 그에 맞는 지하철이 들어오면 탑승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나마 회사 직원들이랑 타 본 것이 얼핏 기억난다던 아빠가 있기에 망정이었지, 혼자였으면 준비성이 철저하지 못한 나는 식은땀만 뻘뻘 흘린 채 뉴욕의 끝자락에 도착할 뻔했다.
힘들게 지하철을 탑승하고, 혹시나 우리가 내릴 역을 놓칠까 싶어 밖을 미어캣처럼 내다보고 긴장 상태로 있는데, 갑자기 우리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른 역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내리는 것이었다. 아빠와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서로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흑인 아주머니가 갑자기 우리보고 이리 따라 나와보라고 한다. 따라 내리니, 우리보고 어디로 가냐고 묻고는 목적지를 듣더니, 이 지하철은 지금 공사 중이라 거기까지 안 가니까, 어떻게 가면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정말 감동이었다. 뉴욕은 차가운 개인주의자들로 모인 도시인줄만 알았는데 그 편견을 깨부수는 그 아주머니의 따스함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너무 고맙다고, 내가 가진 모든 리액션을 총 동원해 인사했는데 그 분은 쿨하게 Fine,하더니 떠나버리셨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뒤에서는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겨우겨우 도착한 아빠와 나였지만, 타야하는 보트가 도착하기까지는 20여 분이 남아있었다. 그 사이에 아빠 사진을 찍어드렸다. 아빠도 매번 나를 찍어준다고 하지만, 자꾸만 작품 사진을 만들겠다며 내 얼굴이 너무 크게 나오도록 찍어서 부담스럽다. 나의 못난 모습들이 너무 있는 그대로 담긴다. 저는 사진이란 나에게 착각을 주는 왜곡의 미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대학생인지라, 아빠가 찍은 사진에서 나의 단점들만 모아놓은 듯한 모습들을 여러 장 본 뒤로는 아빠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주며 기나긴 기다림 끝에 보트에 탑승했다. 미국인 가이드의 영어로 된 설명을 절반 정도 알아들으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우리가 탄 것보다 훨씬 더 작은 보트가 빛의 속도로 빠르게 다가온다. 뭐야, 뭐야, 첩보영화나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아빠와 나는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다가오는 것 아니냐며 설렘 가득한 눈으로 보트를 쳐다보았다. 우리 보트 옆으로 그 작은 보트가 지나가는 데 자세히 보니 NYPD, 즉 뉴욕 경찰이라고 써져 있었다. 역시 그런 쪽(?)이구나. 선글라스를 쓰고 보트를 몰고 가는 그 경찰 아저씨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날은 조금 흐렸지만, 그래도 TV에서만 보던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보트를 타고 가던 중 만나게 된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Liberty)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며, 장엄한 느낌까지 들었다. 가이드 아저씨가 자유의 여신상의 유래에 대해, 미국의 독립전쟁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미국과의 수교를 위해 선물해 주었다고 설명해 준다. 프랑스에서 만든 동상이 지금은 미국의 가장 대표적 건축물이 되었다니, 뭔가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