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날이 궁금해 - 머튼의 긴장 이론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참 살기 좋은 나라다. 통신 인프라도 잘 구축되어 있고, 행정 처리도 빠른 편이며,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안이 좋다. 해외에 살거나 여행을 다녀오면 우리나라 치안이 좋다는 게 새삼 느껴지는데, 새벽에 돌아다녀도 큰 위험이 없고, 길거리에 뭘 떨어뜨려도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당연히 밤낮없이 수고하시는 경찰관님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둠을 밝히는 24시 편의점과 해장국집, 그리고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않는다는 국룰(국민의 룰)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찌 됐든 통계적으로도 우리나라는 범죄에서 꽤 안전한 나라이다. 2023년에 136개국 대상으로 세계인구리뷰(World Population Review)가 조사한 범죄율을 봤을 때, 우리나라는 범죄율 116위로 범죄율 매우 낮은 나라로 꼽혔다. 이렇게 안전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매일 빠지지 않고 범죄 뉴스를 접한다. 학교에서의 폭력부터 고위공직자의 비리까지 범죄는 참 다양하게 발생한다.
범죄라는 것은 뭘까? 법규를 어기고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를 말한다. 시대마다 법규가 다르듯이, 당연히 범죄 역시 시대와 문화마다 다른 개념이다. 김 씨가 어렸을 적만 해도 학교 폭력은 그냥 또래 친구 간의 다툼으로 치부되었었지만, 지금은 심각한 범죄로 여겨지고 있다. 또 다른 맥락에서 성경을 보면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돌로 쳐 죽일 만큼 극악무도한 범죄로 보지만, 현대에는 기독교 뿌리를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조차 피자를 믿던 사탄을 믿던 벌을 줄 수 없다. 그만큼 범죄의 정의는 특정 사회가 어떠한 것을 불법으로 여기는지에 따라 달려 있다. 즉, 범죄라는 것은 그 사회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범죄의 발생 원인을 생물학에서 찾았었다. 19세기말 이탈리아의 의사였던 체사레 롬브로소(Cesare Lombroso)는 인간의 범죄성이 선천적으로 유전되고, 그 특성이 두개골의 형상에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큰 귀, 긴 팔, 두개골 비대층 등, 전형적인 범죄자 상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거진 20세기 초까지는 흉악범들의 두개골을 분석하였다고 한다. 이후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이는 근거 없는 낭설임이 증명되었다.
이제 범죄 원인을 밝히는 학문의 주도권은 사회과학으로 넘어왔다. 특히, 인간의 행동 동기를 살피는 심리학의 활약이 크다. 심리학 못지않게 범죄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학문이 바로 사회학이다! 개인의 범죄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심리학과 달리, 사회학은 사회구조와 집단의 맥락에서 범죄 행위의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고, 각 사회와 집단마다 다른 범죄 양상을 분석한다.
각 시대와 사회마다 범죄 원인과 양상이 다르다고 하였는데, 그럼 현재 한국 사회는 어떨까? 한국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살인과 강도와 같은 강력 범죄는 확연히 줄었으나, 사기 범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기의 본거지는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대도시이다. 2022년에 서울에서만 사기 범죄는 58,894건이 발생했다. 서울은 우리나라 전체 사기 범죄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더 심각한데 경기도의 사기 범죄는 79,005건이 발생하여 24%를 차지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하면 우리나라 사기 범죄의 거의 절반이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유난히 유독 사기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근거지가 서울과 경기도 같은 대도시인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이 두 가지 질문을 사회와 도시를 연관 지어 탐구해 볼 예정이다. 그전에 사회와 도시를 바라보는 렌즈를 빌려 줄 오늘의 사회학자를 소개한다.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은 미국이 사회학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1930년대 하버드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당시 미국에는 뒤르켐의 영향을 받은 구조기능주의 바람이 막 불고 있었다. 구조기능주의란 사회를 유기체에 비유하여, 팔, 다리, 머리, 몸통 같은 각 기관들이 서로 어울려 한 몸을 이루듯이, 사회도 규범, 제도, 문화 등과 같은 각 요소들이 조화롭게 기능하여 질서 있는 사회를 구조화하고 유지한다는 이론적 틀이다. 사회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사회의 특정 구성 요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따러서 문제가 되는 일부 요소의 기능을 다시 원활하게 하면 사회가 다시 질서와 안정을 회복할 것이라 보았다. 우리가 일전에 도시생태학에서 다뤘던 평형상태와 비슷한 맥락이다. 하버드대학은 이러한 구조기능주의의 본산지였다. 이러한 구조기능주의에 영향을 받은 머튼은 사회의 구조 속에서 범죄와 일탈의 원인과 양상을 분석하한 논문, 사회구조와 아노미(Social Structure and Anomie)에서 '긴장이론(Strain Theory)'이라는 의미 있는 범죄사회학 이론을 제시하였다.
머튼은 범죄와 일탈의 원인을 사회의 질서에 혼란을 주는 아노미(Anomie)로부터 찾았다. 지난주에 뒤르켐을 다루면서도 이야기 나눴던 아노미는 사회적 상황의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사회 규범, 즉 사회구성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준이나 가치가 약화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규범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무규범 상태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평생 농사짓던 사람이 도시의 노동자가 된다면, 새로운 도시의 규범에 적응될 때까지 아노미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아노미 상태에서는 사람들의 행위를 인도하는 규범이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잃고 불안에 빠진다. 뒤르켐은 이러한 아노미를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보았다.
머튼은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을 이어받아 확장하였다. 머튼은 사회가 문화적으로 인정하고 지향하는 목표가 현실과 매치되지 않을 때 삶의 기준이 되는 규범이 무너져 아노미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흔히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 끝판왕이라서 그런지 미국에서의 성공 기준은 안정적인 중산층 생활, 사업 성공, 좋은 직업 등경제적인 면에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미국 사회에서의 규범, 즉 문화적 목표는 풍족한 삶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노력만 한다고 미국에서 이러한 문화적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구조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은 개인들에게 차별적으로 부여되기 때문이다.
백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제임스와 남미 불법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하메스는 미국 사회에서 물질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에서 큰 차이가 난다. 제임스가 양질의 교육을 받아 좋은 직장에 취업해 부를 축적할 동안, 하메스는 아마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전전할지도 모른다. 풍족한 삶을 살고자 하는 목표는 같으나 사회구조적으로 동등한 기회는 부여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메스는 기준을 삼고 살아가는 사회적 규범이 무용지물이 되어 아노미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머튼은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아메리칸드림에 초점을 맞춰, 아노미가 문화적 목표와 이를 성취하는 수단의 마찰로 발생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아노미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 유형은 순응주의자(conformists)이다. 순응주의자는 사회의 문화적 목표를 지향하고 제도적으로 인정된 합법적 수단을 사용한다. 즉, 문화적 목표가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라면, 순응주의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을 해 노동으로 돈을 벌고, 재테크를 하며 자산을 불리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두 번째 유형은 혁신가(innovators)이다. 문화적 목표를 지향하기는 하지만, 이를 성취하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산 축적을 위해 제도적 수단인 근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절도, 사기, 도박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범죄자들이 여기 속한다.
세 번째 유형은 관습주의자(ritualists)이다. 관습주의자는 문화적 목표를 포기하거나 무시하지만, 제도적인 수단을 의례적으로 수용하여 준수하는 사람들이다. 자산 축적이라는 거창한 목표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이지만, 그냥 의례적으로 매일매일 일터에 나가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특별한 삶의 목표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프리터족이 그 예이다.
네 번째 유형은 은둔주의자(retreatists)이다. 은둔주의자는 문화적 목표와 이를 성취하는 제도적 수단을 모두 포기한 사람들로, 삶의 목표도 없고, 그 어떤 노력을 할 마음도 없다. 문화적 목표가 어떻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사회에서 도피하는 삶을 살 뿐이다. 사회에서 낙오한 마약중독자, 노숙자 등이 여기 속한다. 다섯 번째 유형은 반항자(rebels)이다. 반항자는 위의 네 가지 유형과 달리, 기존의 문화적 목표와 수단 자체를 거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새로운 사회적 목표와 수단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즉, 기존의 사회를 해체하고 재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산 축적이라는 목표와 이를 성취할 수단인 근로는 집어치우고, 부를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분배하여 누구나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하는 사회를 이룩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같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 될 수도 있다. 혁명가나 급진적 정치집단이 여기 속한다.
이렇듯 머튼은 다섯 가지 유형 중에서 범죄가 발생하는 유형을 문화적 목표는 이루고 싶은데, 제도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혁신가 유형으로 보았다. 이제 머튼의 렌즈를 통해 한동안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대표적인 사기 범죄를 살펴보며 대도시의 범죄를 논의해 보도록 하자!
우리나라 수도 서울은 참 찬란한 도시이다. 업무지구에 우뚝 솟아 있는 빌딩과 높은 수준의 인프라, 인공의 도시가 메마르지 않게 하는 한강과 산, 조선왕조 500년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역사적 장소까지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경제, 정치가 집약되어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렇기에 서울에 내가 사는 집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서울에 사는 것이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의 꿈이 되었다. 머튼식으로 표현하자면, 한국 사회의 문화적 목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집을 사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서울의 집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 그래서 서울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차선책으로 전세, 그중에서도 저렴한 빌라 전세를 선택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전세는 영어로도 전세(jeonsae)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성행하는 주택 임대 제도이기 때문이다. 전세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집 매매가보다 저렴한 전세금을 주어 계약 기간 동안 월세 없이 주택에 거주하고, 계약 만료 시 주었던 전세금을 돌려받는 제도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를 낼 필요가 없고, 집주인 입자에서는 무이자로 목돈을 굴릴 수 있어 서로의 니즈가 맞다면 꽤 괜찮은 제도이다. 주로 아직 집을 사기에는 금전적 여유가 없는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가 열심히 돈을 모으고, 모자란 만큼 은행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마련하여 생활하기 좋은 서울에 거주하고자 한다.
이렇게 서울에 살고자 하는 문화적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합법적인 은행 대출을 받아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들은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순응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문화적 목표를 이용하여 불법적인 수단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또 다른 목표인 자산 축적을 달성하려는 범죄자들도 있다. 바로 전세 사기범들이다.
전세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상황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집주인의 빚 때문에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경매 낙찰가로 빚을 변제한다. 만약 세입자가 변제 후순위라면 전세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이러한 전세의 리스크는 아예 작정하고 전세금을 떼먹을 계획으로 세입자를 속이는 조직범죄일명 ‘빌라왕 사태’로 2022년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목표로 인해 전세사기는 주로 수도권에서 빌라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그중에서 서울 강서구의 전세사기 피해가 가장 컸는데, 2022년부터 2023년까지 파악된 보증금 피해 규모는 총 365건에 887억 원이었다. 특히, 강서구 화곡동은 김포공항 인근 지역으로 고도제한이 걸려 있어 높은 아파트를 짓는데 한계가 있어 빌라 건축이 많았기 때문에 전세사기범들의 주무대가 되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1,200채의 빌라를 소유했던 빌라왕은 자기 자본도 없이 빌라를 사들일 수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빌라왕은 사실 명의만 빌려준 바지 사장에 불과했고, 그 뒤에 건축주, 분양 대행사, 부동산 컨설팅 업체, 부동산 중개업자 등의 조직적인 범죄 설계 현황이 포착되었다. 신축 빌라의 경우 시세나 전세가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점을 악용해 건축주는 전세 보증금을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책정한다. 예를 들어, 원래 매매가가 2억 원이라면 전세 보증금을 3억으로 책정하는 것이다. 차액인 1억의 일부는 세입자를 물어와 사기에 공모하는 분양 대행사와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리베이트로 준다. 이때 ‘빌라왕’이 명의만 제공하여 집주인으로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맺는 것이다. 세입자가 낸 보증금으로 또다시 빌라를 사들여서 무자본 갭투자로 전세계약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의도적으로 전세금을 떼먹기 위한 사기범죄였기 때문에 전세계약 기간이 종료되어도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고 한들, 애초에 전세금이 매매가보다 컸기 때문에 전세금을 보상받을 방법이 없었다.
본인들의 자산을 축적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수단으로 사회초년생, 신혼부부의 꿈을 박살 낸 전세 사기범 강서구 빌라왕은 2021년에 돌연 사망하였고, 그 배후였던 부동산 중개인과 컨설팅 대표는 징역 8년이 선고되었다. 빌라왕 전세 사기 범죄로 인해 37명의 피해자들은 보증금 총 80억 원을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이렇듯 수도권에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열심히 노력한 정상적인 사회구성원들의 문화적 목표를 이용한 범죄이기에 전세 사기 범죄는 서울 외에도 경기도, 인천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전세 사기 범죄는 전형적인 도시형 범죄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근대화를 이루고 경제적으로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 사이 서울을 비롯한 거대 도시가 형성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과거에 비해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왜인지 이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많이 어려워진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대학만 나와도 대기업에 척척 취업되고,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열심히만 일하면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과거와 다르다. 한강의 기적은 끝났다.
청년들은 명문대 졸업에 높은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안되고, 장년들은 퇴직이 빨라 노후가 걱정된다. 우리는 평생의 목표인 경제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경제적 성공이라는 문화적 목표와 제도적 수단 간의 괴리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랫동안 아노미 상태에 빠져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머튼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러한 상황에서는 개인별로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제도적 수단을 동원해 목표를 성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누군가는 목표를 잃고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그냥저냥 살아간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도피하여 좁은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 세상의 모순을 주장하며 싹 다 갈아엎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목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본인의 목표를 이루고자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적인 수단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기도 한다.
이 마지막 유형의 사람들이 우리 도시에 가장 위협이 되는 사람들이다. 도시에는 수많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도시의 한두 명의 범죄자들은 수많은 선량한 피해자들을 낳는다. 지하철역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대로에서의 음주운전, 그리고 아까 소개한 전세 사기가 그렇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범죄를 0%로 만든 마법 같은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튼이 주장 것과 같이 범죄가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면, 시대와 지역에 맞게 규범을 다시 세우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어도 본인의 목표를 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경계하는 사회적 가치관과 합법적인 수단으로 정정당당하게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사회적 기준으로 삼는 규범이 더 확실히 자리 잡혀야 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불법적인 행위를 엄벌하는 더 강력한 법 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피해자들은 늘 가해자의 범죄에 대한 형량이 낮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들 또한 불법적인 수단을 선택하고 감옥 몇 년 다녀오는 게 더 낫다고 보기도 한다. 죄질에 따라 강력히 엄벌하여 남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면, 본인 눈에도 피눈물 흐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명확히 증명할 방안을 사회적 차원에서 더 늦기 전에 논의해보아야 하겠다. 도시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을 지키기 위해.
로버트 머튼은 1910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머튼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템플대학교에 진학하여 처음 사회학에 발을 들였다. 사회학을 공부하던 중 미국사회학회에서 당시 하버드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였던 피티림 소로킨(Pitirim Sorokin)을 만나,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그의 밑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머튼은 지도교수님인 피티림 소로킨 외에 당대 미국의 지배적인 구조기능주의 흐름을 이끌던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의 영향을 많이 받아, 대학원생 시절 구조기능주의의 원류인 뒤르켐의 연구방식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머튼은 사회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근거가 되는 사회구조와 문화변동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관점 머튼은 사회사상사에서 꽤나 중요한 위치에 있다. 먼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이론을 세우고자 했던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를 일부 수정하여 이론과 현실을 아우를 수 있는 중범위이론(middle range theory)을 제시하여 사회학 연구 방법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 토대로 사회구조적 맥락에서 범죄 현상을 분석한 범죄사회학, 과학과 사회구조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과학사회학 정립에 기여하였다.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친숙한 개념들도 많이 대중화시켰는데, 개인의 삶에 기준이 되는 집단인 준거집단(reference group)과 마태복음 25장 29절을 차용하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일컫는 마태효과(Matthew effect)가 대표적이다.
사회학에 대한 그의 공헌으로 머튼은 47대 미국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1994년에는 과학사회학을 발전시킨 그의 공헌을 인정받아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 과학 메달(National Medal of Science)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부전자전으로 그의 아들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로버트 콕스 머튼(Robert C. Merton)이다.
이렇듯 그는 사회사상사에서 꽤나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은퇴할 때까지 머튼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회학을 가르쳤던 머튼은 여전히 사회학 교과서에서 꼭 다루는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