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 푸코의 감시와 처벌
누군가가 나를 계속 쳐다본다는 것은 꽤나 불쾌한 일이다.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이 지긋이 나를 쳐다본다고 해보자.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미친 사람인가?’, ‘눈 마주치지 말아야겠다.’ 누군가가 쳐다보는 시선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감시하는 대상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내 행동을 스스로 점검하도록 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 본래의 성향상 이렇게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있지 않나 싶다. 어렸을 적부터 온전히 나 혼자 쓰는 내 방이 가지고 싶었던 경험,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을 때 괜스레 느꼈던 자유로움이 괜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감시는 통제와 연결되고, 통제는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와 반대되기 때문이다.
뭔가 ‘감시’라고 하면 미국 첩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뭔가 CIA나 국가 안보와 관련된 거물만이 그 대상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평범한 우리도 하루하루 감시당하며 살아왔다. 학교나 일터 등 우리 일상 곳곳에는 우리를 감시하는 눈이 존재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기가 막히게 조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데(물론 학생들의 학업을 도우려는 선생님의 배려일 것이다), 교단에서는 학생들의 동태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출근 시 지문을 찍어 내가 제시간에 출근했음을 기록해야 하고, 화장실을 가건 식사를 하러 가건 움직이는 매 순간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야 한다.
이러한 물리적인 감시 외에도 우리 사회는 이미 시스템적으로 개인을 감시하고 기록할 능력이 있다. 인터넷, 스마트폰, 카드 이용 내역 등 내가 뭘 검색했고, 누구와 연락했으며, 어디에 방문했는지 우리는 매일 우리 행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코로나로 모임과 이동이 통제되었을 때, 우리는 늘 QR 코드로 방문을 인증해야만 했다. 덕분에 코로나에 감염되었을 때 귀신 같이 격리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다. 아마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이 필수인 현재, 국가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내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감시의 눈은 도시 공간에도 촘촘하게 심어져 있는데, 바로 CCTV의 존재 덕분이다. CCTV의 위력은 대단하다. 지하철 공익으로 근무했던 김 씨는 지하철 역사에 펼쳐져 있는 수십대의 CCTV를 역무실에서 지켜보며 위급상황이나 부정승차 등 조치가 필요한 상황을 포착해 지하철 역사의 질서가 지켜질 수 있도록 지원하곤 했다(말은 거창하지만 그저 공익일 뿐). 지하철 역사 내에서는 CCTV 사각지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지하철 이용객들의 행동 파악이 쉽다. 구석에서 ‘안보이겠지?’ 생각하고 코 파시는 분들도 웬만하면 다 보인다...
촘촘하게 배치되어 도시를 비추는 CCTV도 이 못지않다. CCTV는 목적에 따라 교통 신호를 위반했는지,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는지, 안전하게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CCTV에는 도시 질서를 저해하는 상황을 예방하고, 범죄자를 쉽게 추적할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지나친 CCTV 운영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CCTV를 통해 누구나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시에서의 자유는 가능할까? 감시는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돕는 기술적 진보일까, 아니면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빅브라더' 사회의 시작점일까? 오늘의 사회학자를 만나 감시사회를 살펴보고, 그 렌즈로 도시를 관찰해 보도록 하자.
오늘의 사회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20세기 최고의 사상가라고 해도 이견이 거의 없을 만큼 인문사회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아직까지도 다양한 분야 연구에 빈번하게 소환되는(?) 인물이다. 푸코의 주된 관심사는 ‘권력’이었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가 관심을 가지는 사회적 수준의 거대 권력보다는 미시적인 권력을 고찰하여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결과물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정신병, 폭력, 범죄 등과 같은 미시적인 영역에서 권력과 지식 체계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지배적인 관념이 정당화되는 배경을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의 연구 방법론을 ‘권력의 계보학’이라고 한다. 권력의 계보학은 자연적이거나 중립적으로 여겨지는 것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현재의 믿음 이면에 있는 지배 체계를 폭로하여 현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다. 권력의 계보학을 통해 푸코는 '진리'를 제시하는 방식과 관련된 합리화와 체계화 과정을 밝히고자 하였다. '감시와 처벌(Discipline and Punish)'은 푸코가 이러한 권력의 계보학을 통해 감옥 시스템이 어떻게 우리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는지 고찰한 연구 결과물이다.
원래 역사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방식은 고문이었다. 대중들 앞에서 범죄자를 고문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처벌의 잔혹함을 보여주어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푸코는 이러한 고문이 감옥 시스템을 통한 통제로 변화된 1757년에서 1830년대 시기에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보면 감옥 시스템이 고문보다 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푸코가 보기에 감옥 시스템은 단순히 인간적인 것을 지향했다기보다, 더 효과적이고 일관되게 규율을 사회에 더 깊이 이식하기 위함이었다.
감옥 시스템 안에서 죄수들의 행동은 시선으로 감시되고, 시간표나 공간적 배치 등으로 통제된다. 이러한 감옥 시스템의 핵심은 ‘판옵티콘(Panopticon)’이었다. 판옵티콘은 철학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고안한 감옥 구조이다. 원형으로 된 감옥 가운데에 감시탑이 서 있는데, 감시탑의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간수들은 각 방에 있는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지만, 반대로 죄수들은 간수들을 볼 수 없다. 죄수들은 감시탑 내에 실제 간수들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 무엇을 감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 언제 누가 보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임으로 탈옥을 하기 위해 숟가락을 숨겨서 벽을 파내려는 시도도 못하고, 죄수들끼리 갈등을 빚어도 사이좋은 척해야 하는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감옥의 구조를 통한 감시와 통제가 교도소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사실상 이런 감시 구조는 학교, 병원, 직장 등 여러 사회 영역 내에서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방, 복도, 공간 배열 등 건축물은 이러한 감시 시스템을 투영한다. 현대 건축물에서 감시의 주체는 감시의 대상을 훤히 볼 수 있는 공간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 교탁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은 학생들이 무슨 책을 펴고 있는지 볼 수 있지만, 자리 앉아 있는 학생들은 선생님이 무슨 책을 펴고 있는지 볼 수 없다. 콜센터나 공장의 조립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직원들은 개방된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일하고, 감독관은 직원들을 감시할 수 있는 공간을 배정받는다. 병원의 공간 구조도 마찬가지이다. 복도에서 누가 돌아다니는지 훤히 보이고, 병실 문을 열면 병실의 구조가 한눈에 파악되는 구조이다. 이러한 시각의 비대칭성에 기반한 감시는 권력인 셈이다. 이 권력은 공간으로도 표출되어 감시 대상자들로 하여금 감시자를 의식하고, 알아서 행동거지를 조심하도록 하게 한다. 이처럼 감시는 매우 효율적인 통제 방식이기에 우리 사회 영역에서 통제가 필요한 곳에서는 감옥 구조와 비슷한 감시 체제가 운영되는 것이다.
이렇듯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단순히 감옥의 기원과 배경을 역사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감옥의 감시 체제가 어떻게 권력으로 작용하고 우리 사회에 침투되었는지를 폭로하는 것이다. 푸코는 감시자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는 근대적 인간의 탄생을 강조하며 근대사회를 ‘규율사회(disciplinary society)’로 이해하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감옥, 죄수복, 쇠사슬 등 물질적으로 통제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는 관념을 통해 지배 권력의 규율을 스스로 내재화한 결과, '본인이 본인의 감시자'가 되는 규율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과 인터넷, 스마트폰 등 우리 사회의 기술적 발전은 우리의 움직임을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추적하여 감시할 수 있게 하며 규율사회의 효율성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를 샅샅이 감시할 수 있는 CCTV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
CCTV는 closed-circuit television의 약자로 폐쇄회로 텔레비전, 즉 보안용 감시 카메라를 뜻한다. 영미권에서는 CCTV보다는 주로 Security Camera라고 부른다고 한다. 왜 '폐쇄회로'냐면, 특정 목적을 위해 허가된 특정인들에게만 제공이 제한되어 있어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기록상 최초의 CCTV는 독일 엔지니어 발터 브루히(Walter Bruch)가 1942년에 개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CCTV는 지금과 같은 목적이 아니라 독일의 로켓 시험 발사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싶어 설치했다고 한다. CCTV를 공공안전 분야에 도입한 건 미국이었는데, 1969년에 뉴욕 경찰에 의해 활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후반 서울 지하철에 CCTV를 설치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 도시 곳곳에 공공안전을 위한 CCTV가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국내 공공 CCTV는 2008년 15만 여대에서 2023년 145만 여대로 급등했다. 아마 사설로 운영되는 CCTV까지 하면 그 규모가 훨씬 더 어마어마할 것이다. 서울에는 2021년 기준 총 7만 5431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어린이 보호구역, 공원과 놀이터, 도로, 건물 등 도시 곳곳에서 방범, 교통단속, 교통정보 수집, 시설안전, 화재예방,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를 포함한 다양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CCTV로 인해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먼저,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은 CCTV를 의식하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소변이 마려운 상황에서 아무도 없다고 해도 노상방뇨하지 않는다. CCTV의 시선을 인식하여 사회적 규율을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다. 또한, CCTV는 범죄자들의 행동반경을 축소시켰다. 작년 극악무도한 너클 살인사건이 벌어진 곳도 등산로였는데, 이는 가해자가 CCTV를 피해 선택한 장소였다. 즉, CCTV가 있다면 어느 정도 범죄 예방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CCTV로 누가 보고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지만, 범죄가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CCTV이기 때문에 범죄자 스스로도 CCTV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나 공원에 대문짝만 하게 ‘CCTV 촬영 중’이라고 쓰여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공안전에 기여하는 CCTV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CCTV는 늘 프라이버시 및 자유와 엮여 찬반 논란의 시발점이 된다. 아무리 대의가 있더라도 CCTV 망으로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 옳은가?
우리나라보다도 중국에서 이러한 논란이 먼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당독재체제인 중국은 매우 권위적인 국가 시스템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7년 BBC 보도에 따르면 중국 공안당국은 CCTV로만 특정인을 7분 만에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CCTV는 중국에서 현재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되어 있는데, 국가 권력에 반하는 사람을 구별하고 감시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는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와 비슷하다. 이러한 감시사회가 이제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감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제 도시를 바라봐야 하겠다. 우리 사회는 가만히 보면 CCTV 의존이 큰 것 같다. 마치 CCTV가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만능열쇠인 것처럼 사건사고가 터지면 CCTV 설치부터 요구한다. 한강공원 대학생 익사 사건 이후 한강공원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CCTV 설치를 요구하였고,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CCTV를 이용해 미리 밀집도를 분석하는 재난안전시스템 강화 조치가 진행되고 있다. 어린이집 아동폭행 사건으로 어린이집에서는 CCTV 설치가 의무화되었고, 수술실 의료범죄에 대한 염려로 인해 수술실에서도 이제 CCTV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도시계획에서도 범죄예방을 위한 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즉 범죄예방설계 시 CCTV를 기본으로 한다. 그동안 CCTV가 우리 도시의 공공 안전에 기여한 바가 당연히 적지 않기에 이러한 대처가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더 정밀해지는 감시와 인간 활동의 자유 침해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더 필요하다. 비단 CCTV가 권력을 위해 이용되는 것은 중국과 같은 독재국가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안면인식 기술을 갖춘 CCTV가 공공주택의 주민들을 감시하여 침 뱉기 혹은 세탁실 카트 이동 등 사소한 경범죄나 규율 위반으로 주민들을 퇴거시키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스마트시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벌써 도시 전체를 ICT 기술로 시스템화하여 연결시키는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스마트시티는 인간의 활동과 이동 동선을 파악하고 관찰하여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도시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 활동의 기록과 예측을 통한 관리는 혹시 푸코가 말하는 규율사회의 최첨단 버전이 아닐까? 기술이 감시와 통제에 활용되는 디스토피아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도시에서 인간의 활동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CCTV가 내 얼굴만 봐도 ‘김 씨, 32세, 기혼, 공공기관 직원, 월 수입 200만 원대’ 이러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가 머지않았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아마 스스로를 통제하며 조심조심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나 기업 등 지배 권력 입장에서는 성공이다. 알아서 규율에 따르는 인간들을 만들어 도시와 일터의 질서를 손쉽게 지켜낼 수 있기 때문에. 떳떳하면 상관없지 않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시민의 입장에서는 자유롭게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뽐내며 살아갈 권리를 상실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는 철장에 갇힌 새처럼 감시로 통제된 도시에서 스스로를 한계 지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도시 CCTV를 통한 감시의 혜택과 통제 사이 그 적절선을 찾기 위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우리의 도시 생활, 오늘도 24시간 쉬지 않는 CCTV는 도시를 비추며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푸코는 1926년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둘 다 의사인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푸코는 수학에는 취약했으나 프랑스어, 역사, 그리스어, 라틴어 과목에서는 늘 교과 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전형적인 문과 재질). 당연히 의학 공부를 이어갈 거라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푸코는 철학에 관심을 보였고, 재수해서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후 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푸코는 싸움닭처럼 공격적으로 논쟁을 벌였고, 주변에 미움을 사 외톨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악착 같이 공부하였고, 또 다른 저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를 만나 끈끈한 유대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1950년 교수자격시험에 한번 떨어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알튀세르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연구 현장으로 돌아와 1951년 마침내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알튀세르의 권유로 고등사범학교의 심리학 조교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때 그가 연구 주제로 삼았던 정신의학을 경험하게 된다.
푸코는 프랑스를 떠나 스웨덴, 폴란드, 독일을 거쳤으며,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논문인 '광기의 역사(Madness and Civilization)'를 완성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를 기반으로 프랑스에서 푸코는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권력과 지식 관계를 다루는 연구로 학문적 성과를 올렸다. 그는 정신의학, 감옥, 성 등 신체를 규율하고 행위를 지배하며 자아를 형성하는 사회적 영역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아마 그 스스로 동성애자였다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푸코는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키며 '안전, 영토, 인구(Security, Territory, Population)'를 포함한 명강의를 이어나가 인문사회학계뿐만 아니라 공간을 다루는 지리학 및 도시계획학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어느새 푸코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가 되었고, 미국 대학의 초청으로 미국 땅에서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의 강의는 강의실이 아닌 극장에서 진행되어야 할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던 명강의였다. 푸코는 이때 미국 생활을 퍽 마음에 들어 했기에 미국에 정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4년 푸코는 57세의 나이로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죽기 3개월 전 1984년 프랑스에서 진행된 마지막 강의에서 “자, 이 분석 작업에서 여러분들에게 아직도 할 말이 많은데, 하지만, 너무 늦었군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것이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푸코는 권력의 계보학을 통해 당연하게 여겨졌던 근대사회의 비판자로서 포스트모더니즘 조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동시대의 저명한 철학자 들뢰즈는 푸코를 “19세기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에서 푸코는 가장 완전한, 아마도 유일한 20세기 철학자”라고 평하였다. 정신의학, 철학, 사회학, 성, 도시공학, 건축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금도 우리가 푸코의 사상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과연 20세기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평가가 틀리진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