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백화점, 끊겨진 다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 벡의 위험사회
어르신들은 지금보다 옛날이 더 살기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어르신들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과거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타성에 젖어 사는 32세 김 씨도 가끔 열정 있던 20대 때가 더 살기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20대 한창 도전할 청년들은 공부만 하면 됐던 학생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고, 공부만 하는 학생들은 아무 걱정 없이 놀 수 있었던 유년기 때가 좋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침마다 유치원 가야 하는 아이들도 어쩌면 갓난아기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객관적인 지표에 근거하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 진보하며 더 살기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일단 1900년대 초반 60세에 불과했던 인류의 평균 기대수명 의학과 보건 제도의 발전으로 꾸준히 증가하여 2020년에는 73세라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의료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의 기대수명은 훨씬 더 높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5세이다.
수명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부의 축적 규모 자체가 달라졌다. 물론 양극화 문제는 더 심화되었지만, 우리나라만 봐도 1960년에 133만 원이었던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인플레이션 감안)은 2023년에 3,703만 원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여기에 더불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 스마트폰 등 첨단 기술의 결정체들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아무리 옛날이 좋다고 하지만 여러분들은 스마트폰 없는 1960년대를 살아갈 자신이 있으신가? 유튜브 숏츠 알고리즘에 중독된 김 씨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객관적인 지표로 봤을 때 과거보다 진보되고 풍요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진보한 사회에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위험”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기껏해야 다치면 소규모 인명피해로 끝났을 과거의 사고와 달리 현대 사회의 사고는 초대형 참사를 낳는다. 건물 붕괴 및 다리 붕괴, 자연의 분노로 인한 지구온난화, 일단 터지면 감당할 수 없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에서는 더욱이 이러한 위험이 더 크게 도사린다. 당장 집 앞에만 나가도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고, 튼튼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순살’ 아파트였다 거나, 안전불감증으로 금이 간 건축 구조물 위를 걸어 다니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위험’이다. 진보된 사회에서 위험은 어떻게 발생하는지 살펴보고, 도시에서의 위험 사례와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오늘의 사회학자의 렌즈를 빌려 생각해 보도록 하자.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새로운 근대성과 위험사회(risk society)의 도래를 바라보는 렌즈를 제공한다.
사회학에는 참 여러 가지 논쟁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근대성(modernity) 논쟁이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우리가 근대 사회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탈근대(postmodernity) 사회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이성, 과학, 합리성을 중심으로 산업화 및 민주화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킨 근대성의 영향력 아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성과 진보의 개념은 억압이었을 뿐이고, 근대사회에서와 달리 우리는 보편적 진리가 결여된 정답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다뤘던 사회학자들 중 근대 사회는 종결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의사소통으로 근대성을 완성할 수 있다는 하버마스(J. Habermas)가 바로 대표적인 근대성 방어자이고, 반대로 세상은 진실이 아닌 시뮬라크라일 뿐이라는 보드리야르(J. Baudrillard),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근대성의 산물들이 이성과 과학에 의한 권력관계의 결과라고 보는 푸코(M. Foucault)가 대표적인 탈근대 사회학자로 여겨진다.
벡은 이 중 낡은 근대성(classical modernity)이 새로운 근대성(new modernity)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으며 우리가 아직 근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새로운 근대성의 핵심은 위험(risk)인데, 벡의 저서 위험사회(Risk Society: Toward a New Modernity)에 이 내용이 집약되어 있다.
벡에 따르면 낡은 근대성은 산업사회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근대화는 19세기 봉건사회의 구조를 해체시키고 산업사회를 이룩해 냈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신분에 따른 계급 구조는 노동자-자본가와 같은 자본에 의해 결정되게 되었으며,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근대적 삶을 살아가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 사회의 진보는 '위험'이라는 부작용과 함께 새로운 근대성을 불러들였다.
낡은 근대성의 핵심이 부와 부의 재분배였다면, 새로운 근대성, 즉 진보한 근대성의 핵심은 위험이고, 그 위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 낡은 근대 사회의 이상이 부의 축적과 재분배를 통한 평등이었다면, 진보한 근대성이 이상은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성(safety)이다.
왜 갑자기 위험이 근대성의 핵심으로 등극했을까? 진보를 추구하는 근대 사회에서의 끊임없는 변화가 불확실성을 낳고, 그 불확실성이 위험의 본질이 되기 때문이다. 위험은 과거와 달리 자연재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제도의 발전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한 불확실성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사회를 벡은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명명했다.
분명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기여한 바는 엄청나다. 서두에 말했듯 과학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 삶은 더 편안해졌고, 더 풍요로워졌다. 그렇지만 위험사회에서 과학 기술의 진보는 새로운 양상의 위험한 상황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바로 시간, 공간,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 위험이다. 예를 들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전력 생산 효율을 내는 근대적 합리성의 끝판왕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있다.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체르노빌이라는 지역을 넘어 인접한 도시 및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쳤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음 세대의 유전적 문제로 전이되었으며, 나이, 계층, 성별, 지위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피해를 주었다. 지구온난화는 어떠한가? 산업사회의 시작부터 조금씩 축적해 온 이산화탄소 배출은 이제 전 지구적인 위험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고, 다음 세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위험이 세계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위험사회의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전공학 기술의 결실로 인한 유전자 변형 기술은 다양한 식품 생산에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식품들을 먹고도 과연 안전할 것이라 100% 확신할 수 있을까? 즉, 근대 사회의 진보는 불확실한 위험을 낳은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벡은 탈근대 사회학자들이 보편적 진리가 결여된 사회가 도래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근대사회의 '불확실성'이라고 해석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새로운 근대성은 성찰적 근대성(reflexive modernity)를 동반하였다. 근대화는 불확실한 위험들을 낳은 동시에 성찰성을 함께 낳았다. 성찰을 통해 사람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위험을 고찰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위험을 야기시킨 근대성을 반성하고, 맹목적인 과학 기술의 진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정치 영역인 정부가 아니라 시민단체와 같은 하위 정치(sub-politics) 영역의 새로운 하위집단들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이러한 하위집단들은 정부보다 더 성찰적이고 자기비판적이며, 진보한 근대성과 관련된 위험을 반성하고,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제시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 환경오염의 주범인 악덕 기업들을 때려잡는 그린피스(Greenpeace)가 국제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벡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위험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성찰성에 근거하여 그 위험들을 처리할 수 있는 노력들을 동반하고 있다. 즉, 벡의 주장은 근대성을 무너뜨리고 탈근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찰성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열어 근대성이 초래한 위험을 극복하고 새로운 근대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벡의 위험사회론과 근대성 개념을 가지고 우리 도시에서 벌어졌던 대참사 사례를 살펴보며 도시에서의 위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자.
도시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뉴스를 장식하는 웬만한 사건 사고는 대체로 도시에서 발생한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기 때문에 일단 사고가 나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역주행하는 차가 하루를 잘 보내고 내일을 기대하는 도보 위의 시민 9명을 치어 안타깝게 숨지게 할지 누가 알았을까. 159명의 젊은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청춘의 시간을 보내러 나와 압사 사고에 휘말려 세상을 떠날지 누가 알았을까. 도시라는 공간은 위험 앞에서 매우 불확실한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참사는 산업화에 기반한 근대 사회의 과학 기술 발전 및 합리성 추구와 무관하지 않다. 서울 시청역 교차로 차량 돌진 사고는 자동차라는 과학 기술의 결정체를 사람이 잘못 조작하였을 때 일어난 참사였고, 이태원 압사 사고는 불법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금을 내면서까지 최대한 공간을 점유하고자 불법 테라스 구조물을 설치한 호텔의 ‘합리적’ 운영도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처럼 과학 기술과 합리성의 집성체인 도시는 하루하루 예상하지 못할 위험을 야기한다. 규모나 국민적 트라우마 측면에서 압도적인 참사로 여겨지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도 바로 근대 산업사회로부터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1989년 서울 서초구에 완공되어 6년 뒤인 1995년에 붕괴된 삼풍백화점은 사망자 502명,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의 인명 피해를 입힌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이다. 평화롭게 백화점에서 쇼핑하던 시민 200여 명과 백화점에서 일상을 보내던 직원 300여 명이 이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다니던 백화점이 한순간에 붕괴될 줄 예상이나 했을까.
사실상 상품백화점은 그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원래 주거용이었던 삼풍백화점 터에는 백화점을 지을 수 없었지만 삼풍건설산업은 시 공무원들 및 건설부와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토지 용도 변경 특혜를 받았고, 이에 따라 백화점 신축에 들어갈 수 있었다.
1987년에 시작된 건설 공사의 설계와 감리를 맡은 우성건설은 본래 삼풍백화점을 지상 4층, 지하 4층으로 설계하였는데, 삼풍백화점 측은 최대한 매장을 늘리고자 5층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견디지 못한 우성건설은 1989년에 아예 시공권을 삼풍건설산업에 넘겼다. 같은 계열사인 삼풍건설산업은 한정된 토지에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건물의 안정성을 무시한 채 건축 구조 전문가의 검토 없이 설계를 변경하여 1989년 삼풍백화점을 완공하였다. 이 결과로 바닥 철근과 기둥 철근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삼풍백화점은 애초에 태생부터 위태로운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어찌 됐든 지상 5층, 지하 4층으로 지어진 삼풍백화점은 개관한 지 5년 만에 매출액 1,646억 원을 기록하며 전국 백화점 순위 7위로 등극하였다.
매출에서는 전국 7위였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안정성에서는 전국 꼴찌였던 것 같다. 삼풍백화점 측은 애초에 부실하게 건설된 건물이 견딜 수 있는 무게를 고려하지 않고 백화점 층별 매장을 구성하였고, 5층에 식당가가 배치되면서 무거운 냉장고, 주방기기, 식기들이 들어와 붕괴 위험을 가중했다. 또한, 백화점 옥상에 있던 에어컨 냉각탑 이동이 매우 치명적인 역할을 했는데, 근처 아파트 주민들이 냉각탑의 소음에 민원을 제기하자, 삼풍백화점 측은 냉각탑을 옮겼다. 그런데 비용을 줄이겠다고 무거운 냉각탑을 크레인이 아니라 냉각탑 아래에 롤러를 장착하여 끌어 옮기는 정신 나간 짓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옥상 구조물과 건물 전체 기둥에 큰 충격을 가한 것이 붕괴의 주원인이었다. 이 밖에 백화점 개관 후에도 매장 확대를 위해 설계에 없던 구조변경이 계속되었는데, 이때마다 삼풍백화점 측은 담당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며 법적 제재를 피해 갔다.
이러한 건축물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붕괴의 전조 현상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전까지 명확하게 나타났다. 5층 천장에 금이 갔고, 균열이 생겼으며, 물이 새고, 바닥이 주저앉았다. 이렇게 붕괴의 전조가 되는 위험 신호를 발견하자마자 백화점 이용객들과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건물을 폐쇄하였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화점 안정성 문제가 눈에 띄자 삼풍백화점 측은 그제야 토목공학자들을 통해 건물의 안정성을 검사하였는데, 당연히 건물 붕괴 위험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삼풍백화점 경영진은 건물을 폐쇄하는 당연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위험을 숨기며 이익을 위해 백화점을 계속 운영하였다.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친 삼풍백화점은 붕괴 약 1시간 전부터 4층 천장이 가라앉기 시작하였는데, 애초에 바닥 철근과 기둥 철근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부실 건축물이었기에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며 대한민국 최악의 참사를 야기하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원인은 ‘설마 뭐 문제 있겠어’라는 안전불감증이었고, 그 안전불감증의 배후에는 안전을 담보로 최대의 이익을 얻고자 한 근대사회의 합리성이 있었다. 삼풍백화점 측은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불법으로 구조를 변경하였고, 영업을 중단하고 건물을 보수하는 것 자체가 백화점으로서는 큰 영업 손실이었기에 최대한의 비용을 절감하여 할 수 있는 만큼 영업을 이어온 것이다. 이를 제재하여 도시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시 공무원들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태만한 결과, 한 순간에 수많은 안타까운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결국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초대형 참사는 벡이 이야기한 근대성에서 나타난 위험을 공공과 기업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전에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1970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1995년)를 이미 겪었음에도 안전의 중요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위험 관리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던 정부는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러한 대참사는 결국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함께 시작된 근대 사회의 실적주의와 개발주의 등 근대적 진보의 추구와 결부되어 있다. 이 땅의 모든 사고에 경중이 어디 있겠냐만은 대한민국 최악의 규모인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로 인해 우리 사회는 위험 관리와 안전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사고대응체계를 마련하여 전문구조인력을 양성하는데 투자했고, 전국 건물들의 설계를 다시 살펴보았으며, 부실공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설계부터 비리 척결에 힘썼다. 안전 평가를 실시하자 충격적이게도 전국 건물 중 2%만이 안전한 상태였다...
그런데 성찰이 부족했던 것일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로 이익을 취하려는 현황들이 쉽게 포착된다. 한동안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순살 아파트. 대기업 건설사뿐만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연루된 순살 아파트 문제는 여전히 무책임한 정부와 기업의 행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아직도 위험을 불러오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을 기대하고 꿈을 꾸는 도시에서 또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그제야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하고 뒷북을 칠 것인가? 이미 충분한 사고와 참사를 통해 우리는 성찰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 그럼에도 미리 사고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삶은 더 풍요로워졌을지 모르겠지만 더 위험해진 우리 사회와 대참사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는 우리 도시를 향해 벡은 그의 위험사회 이론을 통해 새로운 근대사회의 핵심은 위험관리이고, 이를 위해 더 적극적인 성찰과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의 글은 故신해철의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가사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직도 세상을 보이는 대로 믿고 편안히 잠드는가
그래도 지금이 지난 시절 보단 나아졌다고 믿는가
무너진 백화점, 끊겨진 다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순 없다 우리 모두 공범일 뿐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아득한 옛날엔 TV는 없어도 살아갈 순 있었다
그나마 그때는 천장이 무너져 죽어가진 않았다"
울리히 벡은 1944년 독일 슈톨프(지금은 폴란드 스웁스크)에서 태어났다. 1966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사회학, 철학, 정치학을 공부하고, 1972년 뮌헨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뮌스터 대학과 밤베르크 대학을 거처 1992년 뮌헨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사회학연구소장을 맡게 되었다.
그를 대표하는 사회학 개념인 '위험사회'는 서구의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낳은 위험사회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성찰을 통해 낡은 근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근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벡의 위험사회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물론, 국내의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참사가 있을 때마다 소환되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현대 사회를 진단하는 데 벡의 이론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벡은 살아생전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와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벡은 2008년과 2014년에 두 번이나 방한하였는데, 당시 급속하게 근대화된 한국을 '아주 특별한'위험사회라 일컫기도 했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비판하며 위험을 야기하는 근대사회의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벡의 위험사회가 세상에 나온 지 40여 년, 그리고 벡이 타계한 지 이제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안전했는가? 눈 부신 발전과 부를 축적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안타깝지만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으로 새로운 사회를 열고자 했던 벡의 목소리가 여전히 메아리만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