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나의 세계 -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이 있다. 통신과 교통 기술의 발전으로 지구 위의 모든 사람은 쉽게 소통하고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마을이 되어 온 인류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세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김 씨는 국산이지만, 지금 김 씨가 마시고 있는 커피 원두는 에티오피아에서 왔고, 김 씨의 교복 같은 셔츠는 중국에서 만들어졌으며, 김 씨가 일하는 척하기 위해 켜 둔 컴퓨터의 반도체는 미국에서 설계되었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올림픽이나 월드컵 생중계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중동에서의 전쟁이 우리나라 석유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BTS가 전 세계의 트렌드가 되었다는 점 등 지구는 어느새 한 단위가 되었다. 우리는 그냥 한국이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짧은 시간 만에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의 4마리 용(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으로 떠오르면서 거대한 세계 질서에 등장하였다. 1988년 올림픽을 무사히 마치고, 최빈곤국에서 아시아 신흥 공업국이 된 우리나라는 그 위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시드니를 방문하며 국정방향을 세계화로 설정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김영상 대통령은 세계가 한국의 역량을 필요로 하고, 한국 역시 세계화를 토대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세계화는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이 세계 속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조정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국정 기조에 맞게 우리나라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의 29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그 이후 1997년 IMF를 맞으며 다른 의미(?)로 세계에서 유명해지긴 했는데, 어찌 됐든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반도체, 자동차, 핸드폰을 잘 만드는 굴지의 제조업 국가로 세계 속에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왜인지 2012년 갑자기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튜브를 타고 미국 방송을 비롯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싸이의 바통을 받아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이 세계를 주름잡고, 얼마 전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화적으로도 과거와 다른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위상과 함께 올라간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서울의 경쟁력이다. 올해 1분기만 해도 서울의 외국인 관광객이 340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국제적 위상과 서울의 경쟁력은 동반성장하여 서울은 세계 도시 순위에서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조사 기관에 따라 조금씩 상이하긴 하지만, 거주 적합성·인기도·번영도 등을 기준으로 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 Resonance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올해 '세계 최고의 100대 도시들' 중 10위를 차지하였다. 런던, 파리, 뉴욕, 도쿄 등 상위권 세계도시들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서울의 세계도시 순위는 굉장한 것이다. 서울 밑에 베를린, LA가 있다!
이렇듯 도시의 경쟁력은 그 도시를 품고 있는 국가의 위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 미국 같이 클라스가 다른 국가들과 그 국가들에 위치한 세계도시들은 과연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이 세계도시들은 지구촌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오늘의 사회학자의 렌즈를 빌려 세계도시의 탄생과 그 영향력을 한번 살펴보자.
오늘 만날 사회학자는 세계라는 하나의 판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가져온 이매뉴얼 월러스타인(Immanuel Wallerstein)이다. 월러스타인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석 단위인 사회, 국가의 단위를 넘어 세계라는 광범위한 분석 단위를 선택하였다. 우리 사회에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계급 갈등이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일종의 노동 분업 체계를 가진 하나의 경제적 단위라는 것이다. 세계체제론(world-system)은 이렇게 세계를 단일한 개체로 보며 세계적 규모에서 분업과 불평등 구조를 지속시키는 역사적·경제적 발전을 설명하는 거시적 이론이다. 월러스타인의 이러한 시각은 여러 권으로 집필된 그의 저작 근대세계체제(The Modern World-System)에 잘 집약되어 있다.
세계화가 태동하면서 1970년대 이전 사회과학자들은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의 차이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발전이 미진한 국가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을 좇아 자본주의적 기업, 산업화, 도시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그러나 월러스타인은 세계화와 세계적 불평등이 그렇게 단순하게 극복될 문제라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개발도상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의 저발전 배후에는 선진국의 착취와 지배와 있기 때문이다.
월러스타인에 따르면 꽤나 옛날부터 세계는 지금과 같이 자본주의적 경제를 통해 상호 연결된 근대 세계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 기원은 16~17세기 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같은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은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삼았고, 이를 통해 식민지 국가들의 노동력과 자원을 착취할 수 있었다. 서구 열강 국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하였다. 이들은 축적한 자본을 다시 경제에 투입하여 산업혁명을 이루었고, 생산력을 증대시키며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관계에 따라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 사이에는 우리 사회에서처럼 노동 분업과 착취 관계가 형성되었다. 특정 국가들은 세계 최강 선진국으로서 부와 군사력을 키울 수 있었던 반면, 착취받는 국가들은 계속 빈곤에 빠지며 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체제는 중심부(core), 주변부(periphery), 반주변부(semi-periphery)를 만들어 낸다. 먼저 중심부란 가장 발전되고 산업화된 부유하고 군사력이 강력한 국가들이다. 미국과 서유럽 강대국, 일본 등 세계경제체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보유한 기술과 주변부 국가들을 착취하여 얻은 노동력 및 자원으로 완성품을 생산하고 판매하여 이윤을 얻는다. 주변부는 농업이나 광업 등 원자재에 기반을 둔 협소한 경제적 토대를 가지며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한 국가들이다. 주로 남미나 아프리카에 위치한 빈국으로서 중심부의 다국적 기업을 위한 저임금 노동력과 완성품의 재료가 되는 원자재를 담당하며 착취의 대상이 되는 국가들이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는 반주변부가 있는데, 반주변부는 경제적 측면에서 중간 정도의 위치에 해당한다. 이들 국가는 중심부와 주변부를 매개하는 국가들로 중심부의 통제를 받지만 주변부를 착취하여 이윤을 얻는 브라질과 우리나라 같은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있다. 반주변부의 성장 모델은 주변부 국가들의 귀감이 되어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세계체제의 삼중 시스템은 분업과 착취 관계를 보여준다. 중심부는 주변부의 자원을 저가에 수입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가공해 되팔아 부를 축적한다. 반면 주변부는 노동력과 자원 착취로 중심 국가에 의존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어려운 상태에 빠진다. 반주변 국가는 이 사이를 매개하며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부가 자본가들에게 몰리듯, 세계체제에서 역시 부는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흘러들어 간다. 이에 기반하여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은 마르크스이론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왜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어려운지 설명하는데 기여하였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세계체제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체제는 느리더라도 변화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한때의 강대국들의 영원할 줄 알았던 경제적 권력은 다른 국가로 대체된다. 약 5세기 전에는 이탈리의 도시 국가 베네치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이었다면 그 바통을 네덜란드가 이어받았고, 이후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등극했다가, 이제 우리는 세계최강 미국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분업과 착취라는 불평등 구조를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마르크스를 다뤘을 때도 이야기했듯이, 자본주의의 팽창에는 한계가 있다. 물건을 아무리 잘 만들어 팔아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자본주의가 유지된다. 자본주의의 극치는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를 마른오징어에서 물기 짜듯 착취하여 저임금/고노동으로 경제의 선순환을 방해한다. 세계체제의 핵심인 세계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팽창의 한계를 맞이할 때 월러스타인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 체제가 새로운 세계 질서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 보았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체제가 번영하면 번영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자본주의의 위기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경제 체제를 토대로 세계가 한 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서 분업과 착취의 구조가 형성된다는 월러스타인의 주장처럼, 도시도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두에서 잠깐 이야기했던 일부의 세계도시는 전 세계의 부, 권력, 문화 등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세계도시하면 바로 생각나는 뉴욕으로 가보자. 미국이 세계체제에서 핵심 중심부로 떠오르면서 세계의 경제적 수도가 된 뉴욕의 영향력은 감히 측정하기도 어렵다.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금융 기업들이 월가에 모여 있다. 뉴욕이 처음부터 이러한 경제의 중심지였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처음 뉴욕은 네덜란드인들이 유럽에서 인기 있는 비버 모피를 수출하기 위해 개척한 식민지였던 뉴 암스테르담이었다. 즉, 금융의 중심지라기보다는 중개 무역을 담당하는 항구도시였던 것이다. 1664년에 영국이 네덜란드 해군을 물리치고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하며 이름을 뉴욕으로 바꾼다.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고 나서 1790년까지 뉴욕은 미국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뉴욕은 세계도시급 도시는 아니었다.
뉴욕이 본격적으로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된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금융이 약화되자,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중심도시인 뉴욕이 국제 금융의 허브로 부상했고,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뉴욕은 국제 자본과 외환 거래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1944년 미국 달러가 기축 통화가 지정되면서 뉴욕의 영향력은 더 강화되었다. 더불어, 1980년대부터 파생상품 시장의 발달로 금융 혁신을 이룬 금융 기업들이 밀집한 뉴욕의 월가에는 투자 은행, 자산 운용, 핀테크 기업들이 자리 잡으며 국제 금융 시장에서 지배력을 강화하였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현재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 거래소로서 세계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세계체제의 핵심 중심부가 되면서 세계 금융의 중심부인 세계도시 뉴욕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세계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는 뉴욕은 명실상부 중심부 도시이다. 전 세계에는 뉴욕을 위해 일해 줄 주변부 국가 시민들이 즐비하다. 뉴욕에는 초고소득자들의 서비스와 힘든 일(흔히 3D업종)을 담당하는 이민자 출신 노동자들이 유독 많다. 한편, 반주변부 국가는 중심부 국가들처럼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SKT, 쿠팡 같은 한국 기업과 TSMC 같은 대만 기업도 상장해 있다. 이렇게 뉴욕은 노동력과 자본을 빨아들이며, 이를 바탕으로 금융 및 투자 은행들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뉴욕도 흔들릴 때가 있는 법이고, 세계도시인만큼 그 흔들림으로 인해 전 세계가 흔들리기도 했다. 뉴욕 금융 기업들의 방만하고 해이한 경영으로 인해 촉발된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정말 세계 규모의 경제 위기였다. 대출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상관없이 서브프라임(Subprime), 즉 비우량 대출자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퍼 준 결과, 미국 주택 시장의 침체와 함께 다 같이 나락으로 갔는데, 대표적인 뉴욕 금융 기업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미국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엮인 전 세계 금융 기업과 은행들로 그 여파가 전달되어 세계 금융 시스템이 타격을 받았고, 글로벌 경기침체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제조업과 무역 감소로 미국에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 의존국들도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이 급등하였다.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자본이 유출되면서 브라질과 인도 같은 신흥국들도 뉴욕발 금융위기의 타격에서 비껴갈 수 없었다. 전 세계 50조 달러가 증발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제가 흔들리는 건 아닌가 했지만, 미국의 공적자금 투입과 대대적인 금융개혁 법안으로 회생한 뉴욕은 아직까지 세계체제의 중심 도시로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진원지였음에도 은행과 금융기관에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부은 미국 정부 덕분에 뉴욕은 몰락을 피했다. 금융체제가 다시 안정화되면서 뉴욕은 현재 위기를 극복하고 여전히 세계 경제의 심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뉴욕뿐만 아니라 꽤나 오랫동안 세계 경제의 중심지에 속한 런던과 도쿄 역시 여전히 그 영향력이 굳건하다. 과연 이 세계도시들은 영원히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세계도시들로 모인 부의 출처는 어디일까?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은 어떻게 부를 창출할까? 현재는 많이 개선되었겠지만, 1996년 미국 LIFE 잡지에 파키스탄 아동이 나이키의 축구공과 신발을 바느질하는 장면이 실리면서 초국적 기업의 제3세계 아동노동 착취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당시 130달러에 판매되는 나이키 농구화를 바느질하며 파키스탄 아동은 시급 6센트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도 뉴욕증권거래소에 속한 초국적 기업들은 비윤리적 노동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 것 같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쿠팡 역시 쿠팡맨 과로사 문제와 같은 윤리적 문제와 엮여 있다. 이렇게 본다면 뉴욕의 금융 시장은 초국적 기업들의 저개발국가 노동 착취 문제와 동 떨어진 문제는 아닐 것이다.
더불어, 뉴욕의 양극화 문제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뉴욕의 부유층들의 수백억 원 대의 고급 부동산 거래는 늘었지만, 주택 임차료의 상승으로 인해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은 매우 위태하다. 특히, 뉴욕의 온갖 3D 서비스업을 도맡고 있는 이민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러다 뉴욕이 부유층만 살 수 있는 도시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많다. 그렇게 될 때 뉴욕은 지속가능한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월러스타인은 자본주의의 세계적 팽창이 한계에 부딪칠 때 세계체제가 변동하며 자본주의가 위기를 겪을 것이라 보았다. 더 이상 착취할 노동력이 재생산되지 않을 때 세계질서는 과연 어떻게 바뀔까? 1980년대 이후 월러스타인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세계체제론을 토대로 전망해 왔다. 월러스타인은 자본주의 문명이 가을쯤 왔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화 시대와 세계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 이후 앞으로 오게 될 새로운 질서가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체제일지, 평등한 대안적 체일지 알 수 없지만, 월러스타인은 자본주의 위기의 분기점에서 더 나은 길로 향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집단적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바로 세계금융위기의 진앙지였던 뉴욕에서 발생한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처럼 말이다. 이는 도덕적 해이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금융회사들이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회생했음에도 아무 책임 없이 보너스 잔치를 일삼자, 분노한 시민들이 월가를 점거하며 발생한 대규모 군중시위였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과 구심점이 없었던 시위조직의 한계로 '월가를 점령하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고, 여전히 월가는 공고하게 서있다. 아직도 세계최강 미국의 금융 중심지 뉴욕 월가에 위치한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 동상의 고환은 부를 희망하는 관광객들의 손길로 인해 반질반질하게 빛나고 있다.
월러스타인은 1930년 미국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7년 콜롬비아대학에서 학업을 시작한 월러스타인은 1959년 박사학위를 얻었다. 모교에서 첫 교편을 잡은 월러스타인은 캐나다 맥길 대학을 거쳐 1976년 뉴욕주립대의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미국 뉴욕 태생으로 콜롬비아 대학에서 학문적 경력을 쌓았지만 월러스타인의 주 관심사는 미국이 아니라 비유럽 세계의 정치,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이었다. 그래서 월러스타인은 1960년대부터 아프리카 전문가로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관심사 덕분이었는지, 월러스타인은 1974년에 근대세계체제를 집필하였고,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은 역사적으로 근대가 세계체제를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였다. 물론 세계체제론이 경제적 차원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 변동을 설명하는 문화와 민족성의 역할을 경시하였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지경을 세계라는 공간단위로 넓힌 그의 기여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저 단순히 선진국을 따라가야 한다는 세계화 흐름에서 왜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처럼 될 수 없는지를 자본주의 중심 세계체제의 착취 구조에서 찾아내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전 지구적 불평등을 해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월러스타인의 접근법은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어 1995년부터 발행된 세계체제 연구 저널(The Journal of World-Systems Research)을 탄생시켰다. 이후 월러스타인은 2000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예일대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월러스타인은 1996년과 2006년에 방한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였는데, 2006년에는 마침 북한의 핵심험 날과 겹쳐서 동아시아의 미래 전망에 대해 예견하기도 하였다. 2019년에 타계한 월러스타인에 대해 국제학술단체인 경제사회학과 정치경제(ES/PE)는 ‘우뚝 솟은 지식인이자, 선구적이고 영감을 주는 사상가이며, 걸출한 사회학자’라고 추모하기도 하였다. 1998년부터 21년 간 논평을 써 온 월러스타인이 2019년 타계 전 마지막으로 남긴 500회 논평의 제목은 "이것은 끝이자 시작이다(This is the end; this is the beginning)"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