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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 오토바이, 그리고 속도

사회적 가속

by 김신혁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4일 오후 06_51_05.png

작품명: 야식, 오토바이, 그리고 속도

제작 시기: 야심한데 출출한 시각

재료: 따끈함이 가시지 않은 야식, 굉음 내는 오토바이, 사회적 가속

설명: 왠만해선 멈추지 않는 도시의 오토바이의 질주를 속도감 있게 표현


'이동과 리듬' 전시실에서 두 번째로 함께 볼 작품은 속도감을 잘 살린 <야식, 오토바이, 그리고 속도>입니다.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저 멀리서 질주하는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오는데, ‘멈추겠지, 에이 멈춰야지, 어?’ 하는 순간 간발의 차로 오토바이가 여러분 앞을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요. 순진한 여러분이 간과한 것은 ‘도시에서 오토바이는 왠만해선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액션영화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수많은 장애물을 피하며 질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크게 감흥이 없을 때가 있는데, 그건 아마 우리 도시에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 흔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더 박진감 넘치게 오토바이를 탑니다. 할리우드 감독들은 오토바이 씬 찍기 전에 한국에 와서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엉뚱한 소리는 여기서 그만하고, 늘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도시의 오토바이를 잘 묘사한 이 작품에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대(大)배달의 시대와 라이더의 등장


현대 사회에서 ‘속도’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lio, 1932~2018)는 아예 현대 사회를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여태껏 우리 사회는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죠. 오래 전부터 ‘빨리 빨리’ 문화가 DNA에 새겨져 있는 우리 한국인이라면 공감 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도 속도는 주요 관심사입니다. 도시에서 빨리 이동하는 것은 큰 메리트가 있습니다. 시속 180km로 달리는 GTX-A가 개통되고 나서 근처 집값이 꿈틀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땅 밑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땅 위에서는 안전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속도를 무한대로 높일 수는 없죠. 늦잠 자서 헐레벌떡 뛰어가는 학생도, 급한 생리현상에 일분일초가 위기 상황인 자동차 운전자도 결국에는 신호등 앞에서 멈춰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서 거침 없는 주행 기술로 질주를 멈추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늘 작품의 주제인 오토바이입니다. 오토바이는 도시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로, 골목길, 인도(물론 불법입니다)를 가리지 않죠. 어쩌다가 여러 대의 오토바이가 함께 달리는 장면을 목격하면 과거 돌격하는 기병대(?)가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오토바이의 질주가 이렇게 도시 속의 일상적인 풍경으로 들어오게 된 기점은 바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국면에서 '대(大)배달의 시대'가 열리고 나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이츠’로 대표되는 음식 배달 산업 규모는 2017년 2조 7,325억 원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에 17조 3,370억 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음식 배달 문화의 정착으로 인해 2024년에는 36조 9,891억 원까지 고공행진 중입니다. 아직 공식적인 통계 자료는 없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라이더 수 역시 계속 증가하여 현재까지 대략 42만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런 배달 라이더들이 하루 평균 무려 9.5시간 동안 일하면서 야심한 시각에도 쉼 없이 우리의 출출함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20250111174816781ntqh.jpg 라이더의 멋진 직업정신


사회적 가속


빠른 속도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오토바이의 질주는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 1965~)의 사회적 가속(social acceleration) 개념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장면입니다. 로자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빨라지며 가속화되고 있다고 보았는데, 이런 가속의 범주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기술의 가속이 있습니다. 기술의 가속은 교통, 통신, 생산 기술의 발전을 통한 속도의 향상으로 시공간 체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교통혁명’이 있습니다. 기존에 파주의 운정역에서 서울역까지 경의중앙선으로 46분이 걸렸다면, GTX라는 새로운 교통 수단의 등장으로 소요시간이 절반 준 것처럼 말이죠!

둘째는 사회 변화의 가속입니다. 이것은 관계, 제도, 문화적 트렌드, 행동 방식 등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인 패턴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유행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많이 먹던 탕후루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고, 올 겨울에는 롱패딩이 유행인지 숏패딩이 유행인지 헷갈립니다. 요즘엔 잠깐 사이에도 유행이 휙휙 바뀌니 참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셋째로는 생활속도의 가속이 있습니다. 생활속도의 가속은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려다보니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감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루에 우리는 해야할 일이 참 많습니다. 직장생활도 하고, 밥도 먹고, 쉬고, 인간관계도 유지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합니다. 슬프지만, 이 모든 걸 하려면 당연히 빨리 밥을 먹고, 덜 쉬고, 덜 대화하고, 덜 잘 수 밖에 없겠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속도는 좀 더 느긋해져야 할텐데, 오히려 빨라지니 참 아이러니 하네요.

도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이러한 가속화된 사회의 리듬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달 플랫폼은 손끝 터치 몇 번으로 주문-결재-조리-배달을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몇 분 뒤에 음식이 오는지까지 즉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가속으로 인해 주문에서 배달까지의 과정이 빨라진 것이죠.

한편으로 나가기도 귀찮고 뒷정리하기도 귀찮은 1인 가구의 배달 주문이 늘어나면서 식사 문화 자체도 즉흥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3-4인 가구가 일반적이었던 그 옛날에는 뭘 먹을지 의사결정하는 것부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요즘은 ‘아 짜장면 땡기는데?’하는 즉시 배달앱을 켭니다. 식사라는 행동 방식에서 사회 변화의 가속이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배달을 통한 식사가 가속화되는 동안, 몰려드는 배달 수요를 감당해야하는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생활속도도 빨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라이더들은 시간에 쫓기는 몸입니다. 따뜻한 음식을 제한된 시간에 가져다주지 않으면 뿔난 소비자의 컴플레인을 받게 되고, 음식점과도 갈등이 생길 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서 라이더 입장에서는 제한된 시간에 가능한 많은 배달을 할수록 이득입니다. 배달 건수가 곧 수입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도시라는 공간은 신호등으로 자꾸만 멈춰 세우고, 걸음이 느린 보행자와 육중한 자동차들로 가득합니다. 그렇기에 일부 라이더들은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을 하면서 그 틈을 비집고 속도를 높입니다.


image02.png 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천만한 순간


우리가 주문하는 건 야식이 아닌 가속


빨라지는 사회는 당연히 더 효율적이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원치 않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로자는 사회적 가속을 우리가 좋은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로 보았습니다.

분명 대배달의 시대와 함께 우리의 삶이 편해진 건 확실합니다. 야심한 시간에도 구애 받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할 수 있고, 재료부터 사서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것까지의 귀찮은 식사 과정을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며, 아무리 늦어도 30분 안에는 오는 배달로 밖에 나가는 수고 없이 시간을 절약하며 배를 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게 그런데 정말 좋은 삶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심야 시간 오토바이의 굉음은 깊이 잠들어 있는 누군가의 단잠을 깨웁니다. 늘어나는 배달용기로 인해 플라스틱 쓰레기도 쌓여가죠. 또 배달 시간에 맞추기 위해 과속하는 오토바이는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일부의 폭주운전하는 라이더들로 인해 배달이라는 서비스업 자체가 비하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플랫폼의 구조적 문제도 존재합니다. 낮은 배달료와 감당하기 어려운 배달 배차로 인해 신호와 안전속도를 다 지키면 소득이 5~12% 줄어든다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교통법규 위반은 당연히 해서는 안 되지만, 어찌보면 라이더들도 플랫폼에 가려진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속도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가속하는 사회의 부정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여기 OO동인데요, 배달 되나요?”부터 시작해서 현금을 준비한 채 배달 기사님을 기다리던 설렘과 짧은 순간이지만 “맛있게 드세요”하고 인사를 건내주던 정다운 과정은 이제 보기 어렵습니다. 플랫폼에 표시되는 시간에 맞게 배달이 오나 안 오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우리와 고객의 요청 사항에 따라 문 앞에 음식만 내려놓고 초조하게 또다시 다른 집으로 달려야 하는 오토바이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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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배달 문화 차이


<야식, 오토바이, 속도>는 더 빨라진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여유는 없는 우리 삶의 아이러니를 오토바이의 질주로 속도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쁘고 바쁜 도시의 리듬 속에서 우리가 주문하는 건 야식이 아니라 '가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2: 사회적 가속(social acceleration)


"나는 ‘전체주의’ 모양새를 지닌 사회적 가속이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심각하기 짝이 없는 사회적 소외를 낳으며, 바로 이런 사회적 소외가 후기 근대사회에서 ‘좋은 삶’이라는 근대적 관념을 실현하는 데 있어 주요 장애물이라고 주장한다."

- 하르트무트 로자, 《소외와 가속》, 2020 -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현대 사회를 ‘가속의 사회’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더 빨라지면서 삶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은 압축되고, 사회의 변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며,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짧은 시간 안에 해내려 애쓴다. 이렇게 기술, 사회 변화, 생활 세 가지 차원의 가속이 얽히고 섥히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열심히 살아도 뒤처지고 있는 듯한 불안을 경험한다. 이로 인해 로자는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공명(resonance)’, 즉 서로의 울림을 주고받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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