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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탄 사람들

시간지리학

by 김신혁

작품명: 버스 탄 사람들

제작 시기: 저녁노을이 저물어 가는 시간

재료: 다양한 삶을 연결하는 버스,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도시 사람들, 시간지리학

설명: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버스 안의 풍경을 원색적인 색채를 이용하여 표현했다.


‘이동과 리듬’ 전시실의 네 번째 작품은 <버스 탄 사람들>입니다. 도시를 오고 가는 이동수단 중에 버스는 참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처럼 빠르지 않고, 자동차처럼 자유롭지도 않지만, 버스 창가에 비치는 도시의 풍경과 덜컹덜컹하는 버스의 진동,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가지고 버스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어우러져 뭔가 따뜻한 체온이 느껴집니다.

<버스 탄 사람들>은 이런 버스 안의 인간적인 분위기를 다양한 삶의 모습을 한 승객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시면, 참 다양한 얼굴들이 있죠. 무거운 책가방을 맨 학생, 미처 확인 못한 연락들에 답장하는 직장인,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 한껏 멋을 낸 청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저녁거리가 든 장바구니를 꼭 쥔 아주머니, 그리고 아이의 재잘거림을 미소로 듣고 있는 어머니까지. 각자의 목적지는 다르지만, 버스 안의 공통된 시간과 공간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교차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버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우리 도시의 단면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버스


사회학자 루이스 워스(Louis Wirth, 1897~1952)는 도시를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사는 공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도시인 것입니다. 재밌게도 우리에게 친숙한 버스는 이런 도시의 정의와 참 잘 어울립니다. ‘버스(bus)’의 어원이 ‘모두를 위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omnibus’에서 유래된 만큼, 버스는 태생적으로 ‘모두를 위한’ 이동수단을 지향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노선버스의 형태는 1662년, 저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이 프랑스 파리에서 운영한 마차형 대중교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노선을 따라 여러 사람이 함께 타는 방식이었죠. 그래서 그만큼 저렴한 운임비로 탈 수 있었습니다.


파스칼이 운영한 노선버스 형태의 '옴니버스'


버스는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버스를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 외곽에서도 도심까지 통근할 수 있게 되면서, 도시의 생활권도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첫 시내버스는 1920년에 대구에서 등장했는데요, 그로부터 8년 뒤인 1928년에는 서울에도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버스는 도시철도가 개통된 뒤에도 여전히 대중교통 분담률 1위 자리를 자키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전체 대중교통 중에서 버스는 수도권에서 50%(시내버스+마을버스) 정도를, 도시철도 노선 수가 하나밖에 없는 대전의 경우에는 85.5%나 분담하고 있습니다.

버스의 일일 운행 거리 역시 엄청납니다. <2024년 대중교통 현황조사>에 따르면 전국 시내버스의 일일 운행거리는 평일에 약 864만 km입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만 5천 km이니 하루 동안 버스는 지구와 달 사이를 11번 왕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버스 정류장은 지하철역에 비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고, 지상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더 세밀하게 사람과 장소를 구석구석 연결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이 도시의 주요 거점을 빠르게 잇는 대동맥이라면, 버스는 학교, 병원, 마트, 교회, 공원, 주택가, 번화가, 직장 등 생활의 세부 단위를 섬세하게 연결하는 모세혈관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버스 안은 언제나 다채롭습니다. <버스 탄 사람들>을 보면 직장인의 서류가방, 학생의 책가방, 주부의 장바구니, 노인의 지팡이, 아이와 엄마의 꼭 쥔 손이 한 공간에 섞여 있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향하는 목적지도 다르지만 버스에 탄 순간만큼은 같은 시간 속에 공존하게 됩니다. 이렇듯 수많은 '삶의 궤적'을 실어 나르 버스는 우리의 생활에 더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어서인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시간지리학


본래 개인의 삶의 궤적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스웨덴의 지리학자 토르스텐 헤거스트란트(Torsten Hägerstrand, 1916~2004)는 이러한 관점에서 시간지리학(time-geography)을 정립했습니다. 그는 기존에 지리학계가 초점을 맞췄던 정적인 '공간'에 역동적인 '시간' 개념을 합성하여 인간의 일상생활이 구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헤거스트란트에 따르면 우리가 보내는 하루는 그저 공간 위에 점이 아니라, 시간을 따라 이어진 선입니다. 출근, 식사, 만남, 귀가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선으로 그려집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루 동안 이동하는 경로가 곧 우리의 생활 패턴인 것이죠.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입니다만, 우리 몸은 하나이기 때문에 오직 한 장소에만 존재할 수 있고, 이동할 때는 반드시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시간-공간의 한계로 인해서 우리의 일상이 패턴화 되는 것입니다.


집 - 식료품점 - 직장으로 가는 시공간 패턴


구체적으로 우리는 매일 어떤 시간-공간의 한계에 부딪힐까요? 헤거스트란트는 대표적으로 3가지 제약이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능력 제약(capability constraints)입니다. 인간이 생리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인데요, 걷거나 달리는 속도, 체력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둘째로는 결합 제약(coupling constraints)이 있습니다. 인간은 상호작용을 위해서 꼭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업무, 수업, 진료, 소비가 각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사람들과 이루어지죠. 마지막으로 권위 제약(authority constraints)입니다. 사회적 규칙, 제도, 혹은 권력에 따라 접근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죠. 주차비가 없으면 주차장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제약들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결국, 우리의 하루는 이 제약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펼쳐지게 됩니다. 이처럼 개인이 실제로 이동하고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헤거스트란트는 시간-공간 프리즘(time-space pr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한 사람이 주어진 시간 안에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노인은 체력의 한계 때문에 능력 제약의 영향을 크게 받겠죠? 직장인은 결합 제약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라는 공간에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은 권위 제약 때문에 유흥가와 같은 특정 시설에 접근할 수 없죠. 이처럼 제약의 강도에 따라 도시에서 개인의 프리즘은 제각기 다르게 형성되고, 이로 인해서 삶의 궤적도 다양해집니다.


도시의 다양한 삶을 합주하는 버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한 데 모으는 버스는 이 어려운 제약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버스는 세 가지 제약을 완화하고 조율하면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공간 프리즘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옆에 없는 사람의 시간-공간 프리즘도 넓혀주는 버스...


여러분, 언덕을 올라가거나 오래 걸으면 우리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버스의 바퀴는 후들(?) 거리지 않습니다! 정류장까지만 가면 버스는 인간의 체력과 속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밤늦게 퇴근하느라 지친 직장인의 무거운 발걸음을 대신 옮겨주고, 무릎이 불편한 어르신을 병원까지 데려다줍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생리적 차이를 보완해 주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능력의 평등을 실현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쁘고 바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매 시간마다 다른 공간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동이 필요한데, 버스는 시간표와 시간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대학생이 수업 갔다가 아르바이트로 가는 길, 직장인이 퇴근 후 북모임으로 가는 길, 어머니가 교회 갔다가 장 보러 가는 길 등 바쁜 하루 가운데 일정을 이어주는 것이죠. 버스는 이런 결합의 시간들을 부드럽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의 완충지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버스는 제도적, 경제적 경계의 벽을 낮춰 도시로의 접근성을 올려줍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지하철에 비해 버스는 도시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멀리 떨어진 주거지, 주차비가 비싼 병원, 차로 가기 어려운 골목 상권까지, 몇 번 갈아타야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버스로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즉, 역세권에 살지 않는 사람도,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도, 길을 찾기 어려운 외국인도 한 장의 교통카드만 있으면 도시의 거의 모든 공간을 경험할 수 있죠.

이렇듯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는 삶의 경로를 넓히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버스를 탑니다. 그리고 학생의 삶, 직장인의 삶, 노인의 삶, 주부의 삶, 청년의 삶이 그 안에서 교차합니다. 서로 다른 악기들이 하나의 곡 안에서 합주될 때 멋진 교향곡이 되듯, 우리의 삶도 버스 안에서 어우러져 다채로운 도시의 모습을 만들어 냅니다.

<버스 탄 사람들>에 그려진 승객들이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해 정류장에 내릴 때, 누군가는 집에 가서 쉬고, 누군가는 학원으로 가고, 누군가는 데이트하고, 누군가는 저녁을 준비하겠죠. 이렇게 또 다른 일상을 만들어내면서 한정된 도시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새로운 변주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버스는 단순히 사람을 실어 나르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도시의 시공간 속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도 버스는 도시 구석구석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엮으면서 도시만의 멋진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4: 시간지리학(time-geography)

"... 어떤 장소가 공간적 좌표뿐 아니라 시간적 좌표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 토르스텐 헤거스트란트, 《지역과학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1970 -


시간지리학(Time Geography)은 스웨덴의 지리학자 토르스텐 헤거스트란트(Torsten Hägerstrand)가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의 일상을 시간과 공간의 결합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각이다. 그는 인간의 하루를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선, 즉 삶의 경로(life-path)로 보았다. 사람은 동일한 시간에, 한 장소에만 존재할 수 있으며, 이동에는 언제나 시간이 소모된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인간의 활동은 일정한 시간–공간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헤거스트란트는 이런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요인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능력 제약(capability constraint)으로, 인간의 신체적 조건이나 이동 속도, 체력 등에서 비롯되는 생리적 한계이다. 둘째는 결합 제약(coupling constraint)으로, 타인이나 사회적 약속과 같은 외부적 관계가 정한 시간과 장소의 구속이다. 셋째는 권위 제약(authority constraint)으로, 법이나 규칙, 제도적 권력이 특정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제약이다. 이 세 가지 제약이 맞물린 결과, 한 개인이 주어진 조건 안에서 실제로 도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생기는데, 이를 헤거스트란트는 시간–공간 프리즘(time–space prism)이라 불렀다. 즉, 인간의 하루는 이 프리즘이 허락하는 영역 안에서 펼쳐지는 시간과 공간의 궤적이며, 이러한 궤적들이 모여 도시의 리듬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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