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테크닉
작품명: 시간에 쫓기는 도시의 보행자들
제작 시기: 신호등이 깜빡이기 시작할 때
재료: 보행자, 모자란 시간, 몸 테크닉
설명: 제 시간 안에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하는 보행자들의 걸음걸이로 도시의 빠른 리듬감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지금까지 지하철, 오토바이, 자동차, 버스까지 다양한 이동수단을 표현한 작품들을 함께 감상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이동수단을 아직 소개 못했습니다. 뭘까요? 여러분 앞에 보이는 작품 <시간에 쫓기는 도시의 보행자들>에 정답이 있습니다. 바로 ‘발’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걸으시나요? 저는 요즘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고 있는데, 회사에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위치가 좀 애매해서 대략 8,000보 정도 걷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도시를 걸으면서 여유로웠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계속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빨리 걷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아마 저만 그런 건 아닌 듯합니다. 도시의 곳곳에서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도시를 걷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감상하고 있는 작품처럼 파란 신호등이 켜지는 순간 횡단보도에서는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특히 몇 초 안 남은 신호등을 보면 모두가 우사인 볼트가 되죠!
이런 도시인 특유의 빠른 걸음걸이를 보면 가끔 “영화에서처럼 누군가를 미행하는 건 쉽지 않겠군”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이런 빠른 걸음걸이는 타고 난 걸까요, 아니면 도시생활 속에서 습득한 걸까요? 걷는 사람들을 통해 도시의 빠른 리듬감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도시의 보행자들>을 함께 더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Geffrey West, 1940~)의 저서 ≪스케일(Scale)≫을 보면, 도시의 인구와 보행 속도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평균적으로 거듭제곱의 법칙에 따라 인구가 커질 때 속도는 약 0.10 제곱 비례해서 빨라집니다. 계산해 보면, 인구가 50만 명인 대도시의 보행 속도는 규모가 10배 작은 5만 명의 소도시보다 10^0.10배, 즉 1.26배인 26% 더 빨라지는 겁니다. 물론 운동능력의 생물학적인 한계 때문에 보행 속도에 상한선은 있겠지만요.
더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연령, 성별 같은 도시의 인구 구조나 경사도, 날씨 같은 물리적 환경도 봐야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인구가 적은 도시보다는 인구가 많은 대도시의 보행 속도가 더 빠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LA도 인구가 거의 400만 명에 육박하는 대도시이지만, 보행 속도는 인구 800만 명이 넘는 뉴욕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뉴욕 사람들은 거의 날아다니거든요.
대도시에서 보행 속도가 빠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도시의 규모가 클수록 ‘시간’에 쫓기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의 거장 중 한 명인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베를린의 시곗바늘이 단 한 시간 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베를린 전체의 경제·사회적 관계가 틀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구가 많은 만큼 얽히고 수많은 사회적 활동이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기준의 시간을 정확히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도시의 거의 모든 것은 시간 준수를 기반으로 돌아갑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운행, 출퇴근, 등하교, 가게 개점과 폐점, 교통 신호, 상견례 같은 중요한 만남 등 우리 일상에는 지켜야 할 시간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견례에 늦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곤란해지겠습니까? 제가 늦어봐서 잘 압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도시 사람들은 늘 시간을 염두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 준수라는 목표를 가진 우리에게 '이동'은 늘 숙제가 되죠. 그런데 지하철이나 버스,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은 사실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회사에 지각할 것 같다고 버스 기사님을 협박해서 무정차로 운행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신호를 무시하고 도심에서 분노의 질주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의 두 다리는 각자의 생체 능력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이동수단입니다. 그렇기에 빠른 걸음걸이는 기본적으로 시간에 쫓기는 도시생활에 유리합니다.
표현을 바꿔보면 빠른 걸음걸이는 도시생활을 위한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걸음걸이가 테크닉이라니 좀 낯설게 들리네요. 프랑스의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는 일상적인 신체의 이용도 단순히 본능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서 형성된 기술, 즉 ‘몸 테크닉(techniques of the body)’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죠. 우리는 잠을 어떻게 잘까요? 누워서 이불 덮고 자는 게 자연스럽죠. 그런데 마사이족은 선 채로 잘 수 있고, 몽골인은 말 탄 상태에서 잘 수 있습니다. 또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으시면 한번 확인해 보세요. 남자와 여자가 주먹 쥐는 방법도 조금 다릅니다. 애초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자연스러운’ 몸짓은 없습니다. 모두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육, 관습, 유행, 모방으로 만들어진 테크닉입니다.
걸음걸이도 마찬가지입니다. 92년생인 저와 연식(?)이 비슷하신 분들은 아마 기억하실 텐데요.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좌측보행이 디폴트였습니다. 지금 학생들은 ‘엥?’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보행방향이 오늘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우측보행으로 바뀐 건 불과 2009년부터였습니다.
보행 속도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제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 드리면, 저는 걸음이 정말 무지하게 빠릅니다. 1.5km를 걸어서 15분에 주파하니까 제 보행 속도는 시속 6km 정도 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게, 저희부모님도 보행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저희 가족 문화에서 빠른 걸음은 일종의 '생산성 있는' 테크닉이라고 여겨졌거든요. 부모님에 의해서 걷는 기술이 전수된 셈이죠.
그런데 이렇게 빠른 속도로 걷는 저도 아내와 걸을 때는 아내의 걸음에 맞춰서 느리게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습관적으로 제가 앞서 나가면 제지(?) 당하기 때문이죠. 우리 문화에서 연인끼리는 걸음을 맞춰서 걷는 게 일반적이고,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행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죠.
이렇게 보면 빠른 걸음걸이 역시 시간에 쫓기는 도시 생활에서 정해진 시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몸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도시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한 명 한 명 모든 사람들을 고려해서 도시를 계획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보통 ‘평균’적인 특성에 맞게 도시가 계획되죠. 그래서 도시는 사람들의 평균에 맞춰진 리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15분 도시’는 도보 15분 내에 공공기관, 일자리, 여가시설, 학교, 정류장 등을 배치해서 생활편의를 높이고, 자동차 사용을 줄여 저탄소 생활을 유도하는 도시 모델입니다. 부산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많은 지자체에서는 통상 시속 4km를 평균 보행 속도로 상정해 15분 도시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작품 <시간에 쫓기는 도시의 보행자>들에 보이는 것처럼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신호 주기는 어떻게 정해질까요? 경찰청 매뉴얼에 따르면, 횡단보도 진입시간 7초에 횡단보도 길이 1m당 1초씩 계산해서 시간을 부여합니다. 즉, 횡단보도의 길이가 20m라면 총 27초 정도 파란불이 유지되는 것이죠. 안전하게 길을 건너려면 시속 3.6km의 보행 속도가 필요한 셈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도시의 리듬은 '평균'을 전제한 것입니다. 즉, 평균적인 보행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고령자, 아이, 임산부 같은 노약자들에게는 시속 3~4km의 보행 리듬이 빠르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횡단보도에서 뛰어야 하고, 고령자는 신호가 바뀌기까지 미처 길을 건너지 못해 아찔한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죠. 그나마 어린이보호구역이나 노인보호구역의 신호주기는 조금 더 여유 있게 설계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빠른 도시의 보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빠른 보행 속도는 시간을 걷는 우리 도시인들이 어쩔 수 없이 체득해야 하는 생존의 기술이지만, 때로는 마음 한 구석을 삭막하게 합니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않고 멈춰 선 사람을 보면 답답하고, 인파 속에서 느릿느릿 걷는 사람은 추월하고 싶어 집니다. 이때 도시를 걷는 경험은 빨리 해치워버려야 하는 숙제처럼 하기 싫게 되죠.
만약 우리의 도시 생활이 조금 더 여유로워진다면 우리의 걷는 테크닉도 변할 수 있을까요? 모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몸짓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리듬이 빠른 걸음걸이로 조율되긴 하지만, 사실 우리는 저마다의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규칙적인 박자 위에 엇박자가 얹히면 음악이 한층 생동감을 얻듯이, 서로 다른 걸음의 리듬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더 매력적인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도 누구나 자신의 속도로 즐겁게 걸을 수 있도록, 다양한 걸음 테크닉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만큼은 평소보다 조금 더 여유로우시길 바랍니다.
"걸을 때 팔과 손의 위치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특이성에 해당하는 것이지, 알 수 없는 순전히 심리적이며 개인적인 메커니즘의 산물이 아니다."
- 마르셀 모스, 《몸 테크닉》, 1935 -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몸 테크닉(techniques of the body)’은 인간의 몸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문화적으로 형성된 기술이라는 개념이다. 그는 사람들이 걷고, 먹고, 자고, 일하고, 싸우는 등 몸을 사용하는 방식 가운데 '자연스러운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단언했다. 몸의 움직임과 자세는 각 사회에서 교육, 관습, 유행, 모방으로 전수되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짓은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 그리고 사회구조의 단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스의 몸 테크닉 개념은 인간의 행동이 개인의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결정된다는 관점을 제시하며 현대 인류학과 사회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