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와 복종
작품명: 맛집의 탄생
제작 시기: 가게 문을 열기도 전 아침
재료: 맛집, 길게 늘어선 줄, 동조와 복종
설명: 맛집으로 알려진 가게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픈런하고 있는 모습을 고전적이고 절제된 느낌으로 표현했다.
사람과 각종 이동수단이 만들고 있는 도시의 리듬을 살펴본 1전시실을 지나, 이제 2전시실 '소비와 문화'로 가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저희가 함께 볼 작품은 <맛집의 탄생>입니다. 누가 봐도 맛집처럼 보이는 가게 앞에 모인 사람들을 고전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마 누구나 지도 어플에 별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실 겁니다. 제 경우는 좀 심한데, 지도 어플을 켜면 길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수많은 맛집들을 별로 도배해 두었습니다. 이쯤 되니 뭔가 '별자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만 보면,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건 날씨, 교통, 치안 이런 것보다 맛집인 것 같습니다. 이사를 가면 그 동네에 뭐가 맛있는지부터 찾고, 여행을 가더라도 관광지만큼 주변 맛집을 우선 검색합니다. "아, 거기 가면 그 집은 꼭 들렀다 와야지"하는 지인의 말은 법전에 실린 것도 아닌데, 꼭 해야 하는 느낌이죠.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맛집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요? '맛'집인 만큼 당연히 맛이 중요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많은 경우, 우리는 정작 맛도 보기 전에 맛집을 추천받고 찾아갑니다. 이런 맥락에서 어쩌면 맛집엔 맛만큼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맛집의 탄생>을 함께 보면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까요?
<맛집의 탄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가게를 열기도 전에 이미 길게 늘어선 줄입니다. 전문용어(?)로 '오픈런'이라고 하죠. 아무 생각 없이 도시를 걷다가도 처음 보는 가게 앞에 이렇게 줄이 잔뜩 서 있으면 본능적으로 궁금해집니다. "뭐 파는 집이길래...?" 그런데 반대로 찾아간 식당에 도착했는데, 가게 안이 썰렁할 때는 마음 한구석이 싸늘해지며 다른 옵션을 찾아 발길을 돌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가게의 첫인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가게를 찾는지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줄 서 있으면 왠지 맛있을 것 같고, 사람들이 없으면 왠지 맛없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나 맛집이오' 보여주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지도 어플의 평점과 리뷰, 가게 앞에 붙은 블루리본, 인플루언서의 추천 등등 맛집을 구별할 근거들이 충분합니다. 여러분 소개팅이 있으실 때 분위기 좋은 맛집 찾으시잖아요. 그때 평점과 리뷰를 꼼꼼히 보시지 않으세요? 또 방송을 탄 가게는 맛이 좋을 거란 믿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식당들은 '생생정보통', '맛있는 녀석들', 'VJ특공대' 등 10년이 지난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증거를 현수막으로 걸어 제시합니다. 방송도 방송이지만 요즘엔 먹방 유튜버가 다녀 간 것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실제 한국리서치의 맛집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한 조사를 보면, 외식할 음식점을 선택할 때 참고하는 정보 1순위는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2순위인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보다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습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내가 맛있다고 기억한 집보다 여러 사람이나 전문가, 방송이 인증해 주는 가게가 맛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맛은 굉장히 개인적이고 제각각인 감각입니다. 저와 제 와이프는 콩국수를 좋아하는 자칭 '콩물리에'입니다. 그런데 저는 크리미한 콩물을 좋아하는 반면에, 와이프는 담백하고 섬세한 콩물 본연의 맛을 중요시합니다.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먹더라도 맛을 느끼는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렇게 줄과 추천을 맛집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삼을까요?
이런 현상은 두 가지 갈래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동조(confomity)'와 복종(obedience)'입니다.
해볼 수 있습니다. 바로 동조와 복종입니다. 사회심리학에는 동조와 복종에 대한 중요한 실험이 있습니다. 설명 들으시면 아마 '아 그 실험!' 이런 반응을 보실 겁니다. 하나씩 한번 살펴볼게요.
먼저 1955년에 실시된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 1907~1996)의 동조실험(conformity experiment)입니다. 집단의 압력이 개인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한 아주 중요한 실험입니다.
실험의 방식은 이렇습니다. 먼저, 7~9명 정도의 피실험자를 모집합니다. 사실 한 명만 진짜 피실험자고 나머지는 모두 실험 협력자입니다. 그들에게 제시한 선과 같은 길이의 선을 찾아내도록 지시하는데, 누가 봐도 정답이 명확합니다. 이때 실험 협력자들은 의도적으로 틀린 답을 말하기 시작하고, 가장 나중에 응답하는 피실험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이죠.
에이 그래도 누가 봐도 정답이 있는데 그걸 틀릴까? 네. 놀랍게도 36.8%, 즉 1/3 정도가 오답을 이야기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집단의 선택을 개인이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죠. 우리도 회사에서 커피 시켜준다고 할 때, 모두가 아메리카노를 고르면 혼자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고르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모난 돌은 정 맞기 마련이니까요.
너무나도 센세이셔널한 실험이라 현대적으로 변형된 실험도 있는데요. 엘리베이터 타면 우리는 보통 어느 방향을 보고 서나요? 일반적으로 문을 바라보고 서죠.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는 실험 협력자들이 모두 문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서있으면, 피실험자도 어느새 그쪽으로 바라보고 서게 됩니다. 그만큼 다수의 행동에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번에는 복종에 관련된 실험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이 1961년에 실시한 권위에 대한 복종(obeience to authority) 실험입니다.
이 실험에서는 피실험자와 미리 섭외된 실험 협력자가 짝을 이뤄 문제를 내고 맞히는데, 실험 협력자의 답이 틀릴 때마다 피실험자더러 점점 더 강한 전기충격을 주도록 지시했습니다. 실제 전기충격은 가해지지 않으나 협력자들의 메소드 연기로 비명 소리는 들리죠. 당연히 전압이 높아질수록 많은 피실험자가 머뭇머뭇하게 되는데요, 이때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가 근엄한 목소리로 "계속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450v가 인체에 치명적인 걸 알지만, 피실험자의 65%가 그만큼의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권위 앞에서 복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TV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교수님이 이야기하면 다 맞는 이야기 같고, 사실 관계와 상관없이 은연중에 그 의견을 믿게 되는 경우가 많죠.
애쉬의 동조실험과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은 우리의 선택에 집단과 권위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도시의 맛집 앞에서 자주 보는 오픈런과 지도 어플의 높은 평점은 바로 이 두 실험과 교차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다는 것은 일종의 집단 압력이 되어 '여기가 맛집이구나' 동조하게 하고, 높은 평점과 권위 있는 유명인의 추천에 의해 맛집이 인증됩니다.
그런데 이야기했듯,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맛집은 결코 없습니다. 그래서 분명 맛집이라고 알고 간 집의 음식이 입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별로라고 느껴도 '내 입맛이 이상한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하죠.
그런데 만약 이렇게 실망한 사람들이 다수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상황이 반전됩니다. '에이, 거기 맛없는데 왜 가. 다른 데 가!'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왠지 그 가게는 가기 꺼려지죠.
도시의 핫플레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부터 갑자기 사람이 몰렸던 핫플레이스가 또 어느 날부터는 콜드(?)플레이스가 되어 조용히 잊혀지는 일이 흔합니다. 반대로 그동안 조용했던 동네가 '연예인 누가 다녀왔대', '요새 사람들 많이 간다고 sns에 올라오더라.'라는 이야기가 돌면, 한 순간에 핫플레이스가 되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유행과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잘못 조합되면 '홍철 없는 홍철팀'처럼 '맛' 없는 '맛집'이 탄생하는 기현상도 일어나는데요. 내가 맛있게 느끼는 것보다도 남이 맛있다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이런 점에서 <맛집의 탄생>은 마치 도시에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다수에 동조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우리 도시인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과 전문가가 맛있다고 하는 곳이 맛집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도시의 일상에서 재밌는 모험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만의 맛집을 찾는 것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내 혀가 '오케이'하는 곳이 진짜 맛집일 테니까요!
"우리 사회에서는 동조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해서 이성적이고 판단 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조차 흰 것을 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 애쉬, ≪의견과 사회적 압력≫, 1955 -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실험은 집단의 압력이 개인의 판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험이다. 정답이 명확해도 다수가 오답을 말하면 거스르기 어려워진다는 실험 결과를 통해 사람들이 논리나 지식보다 다수의 선택과 집단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음을 드러냈다. 이는 유행, 소비, 맛집 선택, 직장 내 의사표현을 비롯한 일상 속 의사결정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애쉬의 동조실험은 독립적인 사고의 중요성과 사회적 압력의 위험성을 일깨우는 의미 있는 연구로 평가된다.
"양심과 권위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딜레마는 사회의 본질 속에 내재한 것이고, 설령 나치 독일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우리와 함께했을 것이다."
-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 1975 -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은 권위자의 명령이 개인의 판단을 어떻게 압도하는지를 밝힌 실험이다.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는 실험 결과를 통해 평범한 사람도 권위적인 환경 속에서 얼마든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밀그램의 실험은 개인의 도덕적 판단은 상황적인 압력과 권위 앞에서 취약하다는 점을 일깨우며,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의 위험성을 사회에 경고한 중요한 연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