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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외국인들

이방인

by 김신혁

작품명: 도시의 외국인들

제작 시기: K-문화 열풍으로 한국이 우뚝 선 글로벌 시대

재료: 외국인, K-문화, 이방인

설명: 사람이 붐비는 서울의 명동 거리를 둘러보는 외국인의 시선을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려냈다.


자, 이제 우리는 <도시의 외국인들> 앞으로 왔습니다. ‘외국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는 따뜻한 기억 하나가 떠오르는데요. 90년대생인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을 마주하는 일이 지금처럼 흔치 않았습니다. 아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듯한데, 엄마 손을 잡고 배스킨라빈스에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멜론맛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는지 저는 엄마한테 ‘멜론! 멜론!’을 연신 외치고 있었죠. 그때 제 뒤에 서 있던 갈색 곱슬머리의 백인 아저씨 두 분이 제 모습을 귀엽게 여겼는지 저와 함께 ‘멜론! 멜론!’을 외쳐주었습니다. 아마 그분들이 제가 태어나서 처음 인지한 외국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 풍경은 그 시절과 사뭇 다릅니다. <도시의 외국인들>에 표현된 것처럼 어디서든지 외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관광객뿐 아니라 일자리, 유학, 결혼 등을 이유로 한국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아예 외국인 출연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프로그램도 등장할 만큼, 외국인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우리 도시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도시라는 공간을 그들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산(?)인 우리와 '이방인'이라 불리는 외국인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발생합니다.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멀고, 또 멀다고 생각하면서도 가까운 이 미묘한 관계 속에서 서로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도시의 외국인들>을 감상하며 도시에서 교차하는 이 관계를 차분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을 찾는 사람들


우리에게 주권이 없던 시절, 김구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이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길 원한다’고.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김구 선생님을 기리며, 감격스럽게 되뇝니다. “김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평일 외국인들로 붐비는 국립중앙박물관. 김구 선생님도 이 정도일 줄 아셨을까?


싸이? BTS? 오징어게임? 언제부터였을까요. 글로벌 시대에 한국이 명실상부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K-Pop, K-드라마, K-푸드, K-뷰티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 문화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검은 반도체(김)와 삼겹살 가격이 오를까 봐 걱정할 정도인데요. 이런 한국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2024년 작년에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무려 1,637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2019년 코로나 이후로 무려 94%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는 어디에나 외국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역에서 큰 여행가방을 끌고, 명동 거리를 돌아다니며, 광장시장에서 한국 음식을 맛보고, 남산에 올라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이렇게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들은 평균 6.7일 정도 체류하고 귀국합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한국을 충분히 보고, 듣고, 맛보는 경험을 하기에는 다소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죠.

한국에는 일시적으로 관광 온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와 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외국인들도 있습니다.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민자, 외국국적 동포처럼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들입니다. 2024년 외국인 주민 수는 역대 최고치인 258만 명을 기록했는데, 2006년에 54만 명 남짓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큰 변화입니다. 사람 중 5% 정도가 외국인인 시대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와 함께 도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능숙하게 복잡한 대중교통을 환승하고, 식당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모’를 부르며 음식을 주문합니다. 또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연타하는 빨리빨리 문화를 습득한 외국인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한외국인’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와 닮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방인


우리와 비슷한 일상을 공유한다고 해서, 외국인과 우리 사이의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기 때문이죠.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이방인(stranger)을 ‘오늘 와서 내일 가는 방랑자가 아니라,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그러한 방랑자’로 정의합니다. 곧바로 떠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 공간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 옆집에 미국인이 산다고 해도, 그는 제가 한국에 태어나면서부터 탑재된 made in Korea의 예의범절과는 다른 재질의 ‘매너’를 체득하고 있을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방인은 ‘가깝고도 먼’ 미묘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우리와 이방인은 분명 공통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 맞춰서 지하철을 타고, 화폐로 물건을 사는 건 같으니까요. 하지만, made in Korea가 아닌 이방인 고유의 특성은 우리에게 낯섦을 느끼게 합니다. 이방인이 우리와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편견이 없는 급식 아주머니


또한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같은 공간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살지만 완전히 흡수되기는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이방인은 소속과 비소속, 가까움과 낯섦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종종 ‘우리끼리’의 견고한 공동체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배제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22년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중 출신국가에 따라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58%나 됐습니다. 대체로 이런 차별은 상점이나 음식점, 일터, 거리, 동네 같은 일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외국인 주민에게 택시비를 부풀려 받으려는 사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체불 사건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요, 심지어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외국인도 버스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과거보다야 외국인이 익숙해진 지금, 이방인에게 더 열린 사회인 것은 맞지만, 여전히 넘어서야 벽 또한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관광객의 시선을 넘어, 이웃의 시선으로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고는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단일민족’이라는 정서가 강한 사회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사회는 새로운 이방인의 유형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로 ‘다문화 가족’이죠.

한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은 다문화 가정은 이제 44만 가구나 됩니다. 사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100%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방인이 아닙니다. 다만 부모님에 따라 외모가 조금 다를 뿐이죠. 2023년 조사에서 다문화 가족 자녀 중 4.7%는 또래 친구, 선생님 등에 의해 차별을 경험했다고 하는데요. 2021년에 비해 2.6% 증가한 수치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이방인처럼 알게 모르게 소외되고 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분명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의 한계를 넘어, K-문화의 열풍과 함께 맛있는 음식, 세련된 사람들, 전통과 기술이 조화를 이룬 멋진 도시의 풍경 등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이 화제가 되면서 글로벌 도시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아졌죠. <도시의 외국인들>에 나온 것처럼 명동 거리는 물론 서울 어디에나 외국인 관광객이 늘 붐빕니다.

이때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외국인 관광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도시는 지속적으로 관광 콘텐츠를 육성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며, 편의시설을 정비합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죠. 하지만 사회학자 존 어리(John Urry, 1946~2016)《관광객의 시선(The Tourist Gaze)》에서 지적했듯, 관광객의 시선만을 너무 의식하면 과잉된 이미지를 연출하는 도시가 되기 쉽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맞이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는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겠죠. 관광객 수가 도시 경쟁력의 척도로 쓰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 주변의 외국인이 관광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광객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주목 벋지 못하는 이방인 주민들을 우리의 진정한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관광객의 시선과는 또 다른 시선이 필요합니다.

짐멜은 이방인이 지닌 '가깝고도 먼' 독특한 거리감이 우리 사회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와서 내일 떠나는' 관광객의 시선도 중요하겠지만, <도시의 외국인들> 작품 속 어딘가에 있을 '오늘 와서 내일도 머무는' 이방인 이웃들의 시선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들의 시선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은연중에 스며 있을지도 모르는 배제와 차별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으로 <도시의 외국인들>이었습니다.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 8: 이방인(stranger)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이방인은 오히려 – 마치 보편적인 성격을 띠는 인간적 동일성을 토대로 구축된 관계가 그런 것처럼 – 가까이 있으면서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다."

- 게오르크 짐멜, ≪이방인≫, 1908 -


게오르크 짐멜의 ‘이방인(Stranger)’ 개념은 공동체 안에 존재하지만, 그 내부의 역사·정서·관습과는 얽힘이 약한 독특한 사회적 위치를 설명한다. 이방인은 오늘 와서 내일 떠나는 단순한 방랑자가 아니라, 오늘 와서 내일도 머무는 사람으로서 공동체와 지속적으로 접촉하지만, 그와 동시에 감정적·문화적 거리감은 유지한다. 이 때문에 이방인은 구성원과 같은 일상을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우리’가 되지 못하는 모순적 존재이며, 가까움과 낯섦, 소속과 비소속이 공존하는 경계적 위치에 놓인다. 이러한 거리감은 이방인에게 특정한 객관성을 부여해 새로운 시각과 판단을 가능한다. 즉, 이방인은 단순한 외부인이 아니라, 사회적 거리와 관계의 형식 그 자체를 드러내는 사회적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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