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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간판, 빨강 간판, 파랑 간판

기호학

by 김신혁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8일 오후 06_23_54.png

작품명: 노랑 간판, 빨강 간판, 파랑 간판

제작 시기: 낮이나 밤이나

재료: 형형색색의 어지러운 간판들, 외국어, 기호학

설명: 도시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간판들을 노랑, 빨강, 파랑 원색을 이용해 기하학적으로 표현했다.


여러분, 혹시 어릴 때 글자만 보이면 어떻게든 읽어 보려고 달려들던 시절이 기억나시나요? 저는 아버지 차를 탈 때마다 지나가는 간판들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떠듬떠듬 소리 내어 읽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의 수많은 간판들로 이루어진 도시는 마치 거대한 한글 학습지 같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간판들은 도시를 학습지가 아니라 시력 검사표로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잘 읽히지도 않습니다. 간판들이 서로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참 미스터리한 일도 경험합니다. 분명히 지도 앱은 찾고 있던 가게 근처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도시를 뒤덮고 있어 그 가게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마치 해수욕장에서 모래알 찾는 듯한 느낌이죠.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노랑 간판, 빨강 간판, 파랑 간판>은 이런 어지러운 간판들을 통해 조화롭지 않고, 섞이지 못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날 좀 보시오! 간판들의 아우성


‘간판’이라는 것은 본래 회사, 상점, 상품이나 서비스업종을 표시한 옥외 광고물입니다. "저는 누구고요, 이런 걸 팔아요" 말하고 있는 간판은 마치 가게의 ‘자기소개’ 같은 거죠. 이런 간판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고대 이집트인과 로마인도 간판을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간판이 가게의 자기소개라면 우리 가게 이름이 무엇이고 뭘 하는 곳인지 명확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게 중요하겠죠? 예를 들면, 거대한 척추 그림과 ‘척추탄탄 정형외과’이라는 글자가 쓰인 간판을 보면 ‘아, 척추를 잘 진료하는 정형외과’겠구나 하는 느낌이 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도시에는 그 정형외과만 있는 게 아니죠. 옷가게도 있고, 카페도 있고, 식당도 있고 여러 가게들이 있습니다. 아예 업종이 같은 가게도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가게들은 저마다 눈에 띄기 위해서 상호를 더 화려하게, 더 크게, 더 많이 도시에 새겨 넣습니다.

여러 사람이 자기소개를 큰 소리로 동시에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정확한 정보 전달은 하나도 안 들리고, 그냥 시끄럽기만 할 것입니다. 우리 도시도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각자 ‘날 좀 보시오!’ 하는 듯이 저마다 뽐내고 있으니 눈이 피로할 지경입니다. <노랑 간판, 빨강 간판, 파랑 간판>에 표현된 것처럼 더 강렬한 색, 더 굵은 글자, 화려한 LED 조명이 만들어내는 채도 높은 색의 충돌은 도시에 '시각 공해’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노랑 간판, 빨강 간판, 파랑 간판>에서 묘사된 것처럼 이런 간판의 글자가 아예 한글이 아닐 때도 많습니다. 일식집은 일어로, 중국집은 한자로, 베이커리나 카페는 영어로 표기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죠. 특히 젊은 세대가 자주 가는 핫플레이스는 이런 외국어 간판으로 가득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간판 중 21.2%가 외국어로만 적혀 있고, 18.6%는 한글과 외국어가 병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순수 한글 간판은 60.2%에 불과한 것이죠. 아무래도 외국어가 현지 감성이나 세련된 분위기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겨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구난방으로 외국어가 뒤섞인 간판들은 도시의 전체적인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도시가 혼잡하다고 느껴지게 만듭니다.

한국 도시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간판이 건물,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도시 공간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간판들이 빼곡하게 건물의 한 면을 다 가려버리면 건물 특유의 디자인이 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디자인과 크기, 색, 조명, 폰트 이 모든 게 너무나도 자유로운 나머지 우리 도시의 간판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스위스 풍경에 한국식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면 어떨까요? 간판은 어찌 보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도시의 피부이고, 도시의 감각, 분위기,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금 우리의 도시는 노랑, 빨강, 파랑 형광 바디페인팅으로 뒤엎여 본래 피부색이 뭔지 모르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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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간판 문제들



기호학


지금까지 한국 도시의 간판들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결과,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도시의 조화를 해친다는 점을 이야기했는데요. 우리는 이런 간판의 문제를 기호학(semiotics)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기호학은 말 그대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기호의 구조, 기능, 해석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는 이런 기호학의 토대를 닦은 선구자인데요, 그는 기호가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표는 기호를 표현하는 것으로 ‘의미를 운반’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기의는 기호의 내용인데, 다시 말해 기표가 담고 있는 의미죠.

예를 들면, ‘나무’라는 문자를 보면 머릿속에 뭘 떠올리시나요? 땅에 뿌리박고 자라는 초록 이파리를 가진 길쭉한 식물이 생각나지 않나요? 여기서 ‘나무’라는 문자가 바로 기표이고, 추상적으로 떠올리는 나무의 의미가 바로 기의인 것입니다. 사실 문자만 기표의 역할을 하는 건 아닙니다. 초가 꽂혀 있는 케이크가 여러분 눈앞에 있다면, ‘아, 누구 생일인가 보다’ 하겠죠? 이때는 케이크가 기표이고 생일이 기의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기표는 현실적이고 기의는 추상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L0wKSDbUWZP1tQo4qkXRAdk2zm4.png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인 관계


소쉬르는 여기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사실상 ‘나무’라는 글자와 우리가 떠올리는 나무의 의미가 태생적으로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죠. 영국 사람들은 ‘tree’라는 글자로, 프랑스 사람들은 'arbre'라는 글자로 그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저 한국에 사는 우리는 우연히 ‘나무’라는 글자를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초록 이파리를 가진 식물’을 가리키자고 약속했을 뿐입니다. 즉, 중요한 건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는 결국 사회적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렇게 사회적으로 약속한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왜곡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표를 보고도 기의가 제대로 떠오르지 않겠죠? 본래 케이크에 초가 꽂혀 있으면 생일을 의미하기로 했는데, 초 대신 향초를 꽂으면 ‘이게 뭔가’ 싶을 겁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태가 바로 우리 도시에서 간판들로 인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표는 많은데 기의가 안 보입니다.



지금은 평양냉면 같은 간판이 필요할 때


일단 우리가 흔히 도시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간판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서로 자극적인 색, 큰 글자, 더 강한 빛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런 간판들이 뒤섞이며 기표는 다닥다닥 붙어 있죠. 케이크에 향초를 꽂은 것처럼 서로 다른 기표가 엉켜 있으니 기의를 떠올리기 어렵고, 그저 눈에 보이는 과장된 이미지만 남는 것입니다.

한 술 더 떠서, 의미 불명의 외국어로만 된 간판은 애초에 한국인들에게 사회적으로 약속된 기표가 아닙니다. ‘phở’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그 간판만 보고 절대 쌀국수를 떠올릴 수 없습니다. ‘phở’라는 기표와 ‘쌀국수’라는 기의를 아는 사람들만 그 가게를 찾겠죠. 우리가 읽을 수 없는 기표가 많아질수록 도시는 낯설게 느껴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리고 아까 형형색색 제각각인 간판들이 건물의 디자인과 도시의 정체성을 해친다고 했는데요. 모두가 눈에 띄려고 하면 역설적으로 그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똑같이 튀는 방식을 택하면 오히려 관계와 구분이 명확하지 않거든요. ‘뜨겁다’는 단어는 ‘차갑다’는 단어와 대비될 때 의미가 생기는 법입니다. 빨간색도 초록색과 함께 있을 때 ‘정지’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고요.

소쉬르는 기호에도 동일한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체계가 있고, 기호의 의미는 이런 기호의 체계 내 관계를 통해 생산된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주장만 강하고 공간과 어울릴 줄 모르는 간판은 제대로 된 의미를 떠올리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봐도 모르겠는’ 간판들은 도시의 전반적인 가독성을 떨어뜨립니다.

대체로 자극적인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라탕도 먹고, 라면도 먹고, 두바이 초콜릿도 먹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자극적인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어느 순간 슴슴한 음식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평양냉면 같이 담백한데 자꾸 생각나는 음식이 분명 있습니다. 자극적인 음식은 금방 질리지만, 절제된 맛은 오래갑니다.

우리 도시의 간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노랑, 빨강, 파랑 강렬한 색을 섞어 만든 간판보다 절제된 간판이, 화려하지만 도시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간판보다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간판이, 이국적인 느낌은 주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간판보다 정보 전달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간판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서울시는 도시의 가독성을 높이고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좋은 간판’을 선정하는데요, 수상작들 하나하나를 보면 진정한 간판이 뭔지 알 수 있습니다. 정갈하게 보이는 간판(기표)을 보면 저절로 의미(기의)가 바로 떠오릅니다.

OpxzfDfoXxqMxMFKjMURMDXGqf.jpg 2014년 서울시 좋은 간판 공모전 수상작


우리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수많은 기호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중 간판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 빼놓을 수 없는 기호이죠. <노랑 간판, 빨강 간판, 파랑 간판>은 자극적인 기표의 홍수 속에서 기의(의미)가 시라지는 도시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지럽고 자극적인 간판이 아니라 평양냉면처럼 담담하게 자기 교유의 맛을 가진 간판입니다. 그런 간판이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도시를 '본다'라는 것의 의미를 되찾고, 도시라는 공간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 9: 기호학(semiotics)


"기호학은 사회적 삶 속의 한복판에서 기호들의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1916 -


기호학은 기호(sign)가 어떻게 의미를 만들고, 어떤 사회·문화적 규칙 속에서 해석되며, 그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작동하는지를 분석한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기호학을 '사회적 삶 속의 한복판에서 기호들의 생명을 연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언어의 구조를 토대로 기호(sign)의 작동 원리를 탐구했다. 그는 모든 기호가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는데, 기표는 우리가 실제로 보거나 듣는 형태(문자, 소리, 그림)이고, 기의는 그 기표를 통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미나 개념이다. 중요한 점은 이 둘의 연결이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이지 않고, 사회적 약속에 의해 임의적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소쉬르는 기호의 의미가 내재적인 특성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동일 사회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호의 체계 안에서 다른 기호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그는 언어를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조직된 기호 체계로 이해하며 현대 기호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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